프로야구가 긴 겨울잠을 깨고 기지개를 켰다. 1982년 출범 후 서른일곱 살이 된 KBO리그는 평창동계올림픽의 열기를 이어 받아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의 명성에 걸맞은 새 시즌을 자신하고 있다. 한 달여의 해외 스프링캠프를 마치고 돌아온 10개 구단은 3월 13일부터 시범경기에 돌입했다. 1989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27차례 시범경기(양대 리그 제외)에서 시범경기 1위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것은 다섯 번(1992년 롯데, 1993년 해태, 1998년 현대, 2002년 삼성, 2007년 SK)밖에 없어 시범경기에서의 성적은 큰 의미가 없다. 올 시즌엔 8월에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이 열려 정규시즌 개막(3월 24일)이 빨라지고 시범경기도 팀당 8경기로 축소됐지만 볼거리는 풍성하다.
돌아온 빅 리거 3인방 박병호·김현수·황재균
가장 큰 이슈는 박병호(넥센)와 김현수(LG), 황재균(kt) 등 돌아온 빅 리거 3인방의 활약상이다. 미국 진출 전 4년(2012∼2015) 연속 홈런왕과 타점왕을 독식했던 박병호는 최정(SK)과 에릭 테임즈(밀워키)가 양분했던 홈런왕 판도를 뒤흔들 1순위로 꼽힌다. 박병호는 3월 13일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한화와의 시범경기 개막전부터 복귀 첫 홈런을 터뜨려 화끈한 신고식을 치렀다. 김현수는 볼티모어와 필라델피아를 거쳐 친정 두산이 아닌 옆집 라이벌 LG로 옮겨 더 관심이 모아진다. 이번 스프링캠프 연습경기에서 7경기 모두 출전해 타율 3할5푼3리(17타수 6안타)에 2홈런, 4타점을 올리며 건재를 과시했다. 황재균도 롯데가 아닌 kt 유니폼을 입고 제2의 한국 생활을 시작한다. 3년 연속 최하위에 그친 kt는 황재균에게 창단 이후 가장 많은 비용(4년 88억 원)을 투자해 탈꼴찌에 도전한다.
2년 연속 9위에 머물며 체면을 구긴 삼성도 롯데에서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린 강민호를 영입했다. 지난 시즌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KIA는 큰 전력 누수 없이 올 시즌을 맞는다. 에이스 양현종과 재계약했고, 내부 FA 김주찬도 붙잡았다. LG에서 방출된 정성훈까지 데려가 2연패 도전의 기틀을 다졌다. 두산은 롯데로 떠난 민병헌의 자리를 메울 새로운 톱타자를 찾아야 한다. 롯데는 강민호를 대체할 ‘안방마님’ 발굴이 급선무다. NC 역시 김태군이 경찰 야구단에 입단하면서 주전 포수 자리가 고민이다. SK는 김광현이 팔꿈치 부상에서 확실히 복귀하느냐가 관심사다.
사령탑을 교체한 팀들의 변화에도 관심이 쏠린다. LG는 양상문 전 감독을 단장으로 발탁하면서 ‘삼성맨’ 류중일 감독에게 국내 최고 대우(3년 21억 원)로 지휘봉을 맡겼다. 김현수와 차우찬을 영입했지만 구단이 베테랑 선수들을 대거 정리하면서 류 감독이 LG에 어떤 색깔을 입힐지 관심사다. 2008년부터 10년째 가을 잔치에 나가지 못한 한화는 한용덕 감독을 앉혔고, 장종훈과 송진우 코치도 복귀시켜 프랜차이즈 레전드 코칭스태프에 대한 팬들의 기대가 크다.
올 시즌 KBO리그에서 뛸 30명의 외국인선수 중 새 얼굴은 13명이다. 그중 KBO리그 사상 첫 대만 용병인 NC의 좌완 투수 왕웨이중은 스프링캠프 기간 세 차례 실전 등판에서 총 7이닝 7피안타 9탈삼진 1실점을 기록했다. SK의 새 외국인 투수 앙헬 산체스도 최고 154㎞ 강속구를 뿌리며 5이닝 무실점으로 합격점을 받았다. 메이저리그 통산 31승의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롯데의 펠릭스 듀브론트는 13일 LG와 시범경기 개막전에서 4이닝 노히트노런의 인상적인 투구로 활약을 예고했다.
KBO리그 최장수 외국인 선수 더스틴 니퍼트(kt)와 2015시즌 한화에서 뛴 에스밀 로저스(넥센)의 새 팀에서의 활약 여부도 궁금하다. ‘한국의 오타니’로 불린 kt의 대형 고졸 신인 강백호가 지난 시즌의 이정후(넥센)를 능가할지 여부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 이 밖에도 스프링캠프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한동희(롯데), 양창섭(삼성), 곽빈(두산) 등 특급 고졸 신인들의 올 시즌 신인왕 경쟁도 볼만하다.
▶ 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박병호(넥센ㆍ위쪽부터), 황재균(kt), 김현수(LG)가 3월 13일 열린 시범경기에서 타격하고 있다. ⓒ연합
1000만 관중 시대의 교두보는 ‘스피드 업’
‘젊은 피’들은 소속팀 감독뿐 아니라 선동열 감독에게도 눈도장을 받아야 한다. 8월에 열리는 아시안게임은 2020년 도쿄올림픽 금메달을 겨냥한 시험대다. 2020년 최전성기를 구가할 선수들을 염두에 두고 뽑아 대표팀 연령은 낮아질 공산이 크다. 지난해 11월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에서 김하성(넥센), 박민우·장현식(NC) 등 어린 선수들을 중용한 선 감독의 눈에 들기 위해선 올 시즌 전반기 성적이 절대적이다.
올 시즌엔 새로 부임한 정운찬 KBO 총재의 의지에 따라 ‘스피드 업’이 더욱 강화된다. 가장 큰 변화는 자동 고의4구 제도 도입이다. 올해부터 감독이 심판에게 고의 볼넷 의사를 전달하면 투수가 공을 던지지 않더라도 심판이 고의4구로 인정하기로 했다. 메이저리그는 지난해 이 제도를 도입했고, 일본 프로야구도 우리처럼 올해부터 시행한다.
경기 중 포수가 투수 마운드에 올라가는 횟수도 줄였다. 지난 시즌까진 연장전을 포함해 포수는 경기당 3회까지 마운드에 갈 수 있었지만, 올해부턴 정규 이닝 기준으로 한 경기에 두 차례만 허용된다. 단 경기가 연장으로 이어지면 한 번 더 갈 수 있다.
투수의 이닝 교대와 투수 교체 시 횟수를 제한했던 준비 투구 수는 이닝 교대 시간(2분)과 투수 교체 시간(2분 20초)에 한해 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고, 해당 제한시간 안에 반드시 준비 투구를 마치도록 했다. 또 KBO는 ‘12초 룰’을 위반하면 벌금을 내도록 규정을 강화했다. 기존 ‘12초 룰’에선 주자가 없을 때 투수가 12초 이내에 투구하지 않으면 주심은 첫 번째로 경고를 하고, 두 번째 위반부턴 볼로 판정했다. KBO는 첫 번째 위반 시 경고를 유지하되 두 번째 위반부턴 볼 판정과 함께 벌금 20만 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타자들도 배트가 부러질 경우를 대비해 준비 타석에 2개의 배트를 미리 준비하도록 규정을 보완했다.
비디오 판독 제도도 손질해 올 시즌부터는 감독이 그라운드에 나가지 않고 더그아웃에서도 판독 신청을 할 수 있다. 판독 시간은 최대 5분을 넘을 수 없다. 지난해 수차례 오독 사태로 논란이 된 비디오 판독은 여러모로 강화됐다. 판독센터가 서울 상암동 SPOTV 사옥에서 도곡동 KBO 야구회관으로 이전했고, 판독센터에서 5개 구장 모니터를 보며 비디오 판독을 돕는 엔지니어 인원이 종전 세 명에서 네 명으로 늘었다. 여기에 KBO는 비디오 판독 화면을 구장 전광판에 띄우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관중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복잡한 상황이 발생하면 일본 프로야구처럼 심판이 마이크를 잡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성환희│한국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