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시즌 타이어뱅크 KBO 리그가 KIA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의 한국시리즈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프로야구 2017 시즌은 역대 최다인 840만 관중을 돌파하며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던 순위 싸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벌써 다음 시즌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올 시즌은 어느 때보다 뜨거운 순위 싸움이 벌어졌다. 사상 처음으로 1~4위 팀의 순위가 정규시즌 마지막 날 가려졌다. 정규시즌 우승은 결국 kt 위즈와 시즌 최종전에서 승리한 KIA의 몫이었고, 시즌 막판까지 KIA를 긴장시켰던 두산은 2위로 만족해야 했다. 후반기 최강팀으로 ‘구도’ 부산을 들끓게 했던 롯데 자이언츠가 3위로 5년 만에 가을 잔치에 나갔고, 4위는 NC 다이노스, 5위 막차 티켓은 SK 와이번스가 차지했다. NC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SK를, 준플레이오프에서도 롯데를 3승 2패로 꺾었지만 플레이오프에선 두산의 강타선에 무릎을 꿇었다.
최형우를 영입해 두산의 대항마로 꼽힌 KIA는 4월 12일 1위에 올라선 후 한 번도 선두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역대 최장 기간 1위 자리를 수성한 정규시즌 우승팀이다. 그 중심엔 ‘20승 듀오’ 양현종(20승 6패)과 헥터 노에시(20승 5패)가 있었다. 한 팀에서 동반 20승 투수를 배출한 건 1985년 삼성 라이온즈의 김시진(25승)과 김일융(25승) 이후 무려 32년 만이었다. 양현종은 토종 투수로는 1995년 LG 트윈스 이상훈(현 LG 코치) 이후 22년 만에 선발 20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김선빈은 사상 첫 9번 타자 타격왕(0.370)을 차지했고, 올해 한국 무대에 진출한 로저 버나디나는 타율 3할2푼에 27홈런, 111타점, 118득점으로 맹활약했다.
▶ 10월 30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 KIA 타이거즈 대 두산 베어스 경기.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한 KIA 양현종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
뜨거웠던 타이틀 경쟁, 몸값 증명한 FA
후반기 두산의 페이스는 무서웠다. 8월부터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무려 33승(1무 16패)을 쓸어 담았다. 전반기에 KIA와 13경기나 차이가 났지만 공동 1위까지 추격하며 KIA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후반기 승률이 무려 7할(42승 2무 18패)이었다. 더스틴 니퍼트와 장원준은 나란히 14승을 올렸고, 유희관은 11승을 올리는 등 마이클 보우덴을 제외한 ‘판타스틱 4’는 그런대로 건재했다. 박건우-김재환-오재일로 이어지는 두산의 중심 타선은 포스트시즌에서 더욱 가공할 파괴력을 선보였다.
▶ 10월 30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KBO 한국시리즈 5차전 KIA 타이거즈 대 두산 베어스 경기에서 KIA 선발 헥터가 역투하고 있다. ⓒ뉴시스
롯데 역시 8월과 9월에만 32승을 쓸어 담아 가을 잔치에 안착했고, 이를 바탕으로 조원우 롯데 감독은 3년 재계약에 성공했다. SK는 방망이가 뜨거웠다. 올해 234개의 홈런포를 터뜨리며 한 시즌 구단 최다 홈런 신기록을 작성했다.
반면 LG는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6위에 그치며 양상문 감독을 단장으로 바꾸고, 류중일 감독을 새로 영입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팀 평균자책점 1위(4.30)의 역대 두 번째 포스트시즌 탈락이었다. 장정석 감독이 새 지휘봉을 잡고 출발한 넥센 히어로즈는 후반기에 급전직하하며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됐다. 한화 이글스는 5월 김성근 감독을 경질하는 홍역 속에 8위에 그쳤고, 9위 삼성도 은퇴한 이승엽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 과제로 떠올랐다. 김진욱 감독 체제로 출발한 kt는 시범경기 1위로 돌풍을 일으키며 시작했지만 전력의 한계로 3년 연속 최하위에 그쳤다.
지난겨울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는 사상 첫 100억대 선수가 등장하는 등 무려 703억 원이 오가는 ‘돈 잔치’가 열렸다. KIA와 4년 총액 100억 원에 계약해 FA 시장에 ‘100억 시대’를 열어젖힌 최형우는 타율 3할4푼2리(514타수 176안타)에 26홈런, 120타점을 기록하며 ‘모범 FA’로 KIA의 정규시즌 우승에 앞장섰다. 미국 진출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이례적으로 KIA와 1년 계약을 맺은 양현종도 22억 5000만 원이라는 고액을 받았는데 몸값을 하고도 남았다. 이대호(롯데)는 지난겨울 친정팀 롯데로 복귀하면서 4년 총액 150억 원의 ‘초대박’을 터뜨렸다. 최형우의 역대 최고액 기록을 단숨에 깼다. 이대호는 타율 3할2푼(540타수 173안타)에 34홈런, 111타점을 기록하며 4번 타자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이대호의 영입은 부산 팬들을 끌어모았다. 올 시즌 롯데는 2012년 이후 5년 만에 홈 관중 100만 명을 돌파했다. 부산 최고의 스타 이대호가 복귀하자 개점휴업 중이던 ‘사직 노래방’도 다시 문을 열었다. 투수 FA 사상 최고액인 4년 총액 95억 원을 받고 LG로 이적한 차우찬도 비록 팀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지만 10승(7패)을 올리며 정상급 좌완 투수의 면모를 과시했다. 최형우, 이대호, 차우찬 등 ‘빅 3’가 FA 거품 논란을 잠재우면서 예비 FA 손아섭(롯데)을 비롯해 국내 복귀를 선언한 황재균과 복귀설이 흘러나오는 김현수의 주가도 치솟을 것으로 보인다.
개인 타이틀에서도 순위 싸움만큼 뜨거운 경쟁이 펼쳐졌다. 헥터와 최정(SK)만이 2관왕을 차지했을 뿐 춘추전국 양상이었다. SK의 간판타자 최정은 46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지난해 40홈런으로 NC 에릭 테임즈(현 밀워키)와 공동 홈런왕에 오른 데 이어 2년 연속 홈런왕에 등극했다. 최정은 장타율(0.684)까지 2관왕에 올랐다. 타격왕 김선빈은 9번 타자 타격왕뿐아니라 1994년 해태 이종범(0.393) 이후 23년 만에 유격수 타격왕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또 KIA가 타격왕을 배출한 건 2007년 이현곤(0.338) 이후 10년 만이다. 도루왕은 박해민(삼성)이 3연패에 성공했는데 올 시즌 40개의 도루를 성공해 역대 다섯 번째로 3년 연속 40도루를 달성했다. 타점과 득점 1위는 시즌 중 반전을 만들어낸 외국인 타자들에게 돌아갔다. 삼성의 다린 러프는 5월부터 확 달라진 모습을 자랑하더니 타점 1위(124개)에 올랐다. 버나디나 역시 4월까지 부진했지만, 환골탈태해 118득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손아섭은 193개의 안타를 때려내 4년 만에 이 부문 정상에 복귀했다.
국내 선수들의 약진 속에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의 향배도 3년 만에 토종 선수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는 22승을 거둔 니퍼트, 2015년에는 40홈런-40도루 클럽을 개설한 테임즈가 MVP였다. 올 시즌엔 양현종과 최정이 강력한 후보다.
신인왕은 ‘바람의 손자’ 이정후(넥센)가 따놓은 당상이다. 올해 KBO 리그 최고의 발견인 이정후는 이종범 MBC SPORTS+ 해설위원의 장남으로 휘문고를 졸업하고 넥센 유니폼을 입자마자 한국 야구에 돌풍을 일으켰다. 고졸 루키 이정후의 활약은 역대 어느 신인 타자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데뷔 시즌 144경기에 출전하며 올 시즌 전 경기에 출전한 다섯 명 중 한 명이다. 고졸 신인 타자가 첫해부터 주전 자리를 꿰차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인데 체력 문제 우려를 씻고 역대 신인 최초로 전 경기 출전의 위업을 달성했다. 성적 또한 타율 3할2푼4리(13위), 179안타(공동 3위), 111득점(3위)으로 대단했다. 신인 타자가 3할 이상의 타율로 시즌을 마친 것은 1998년 삼성 강동우(0.300) 이후 18년 만이다. 1994년 LG 서용빈(전 LG 코치)이 갖고 있던 역대 신인 최다안타(157개)를 가볍게 뛰어넘었고, 같은 해 LG 유지현(현 LG 코치)이 세운 신인 최다득점(109개)도 갈아치웠다. 2006년 두산 임태훈(은퇴) 이후 10년 만에 순수 신인상 수상이 확실한 가운데 1996년 현대 박재홍(현 MBC SPORTS + 해설위원) 이후 만장일치 수상 여부가 관심사다.
성환희 | 한국일보 스포츠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