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2일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의 글로브라이프파크에서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와 텍사스의 야구경기가 열렸다. 추신수(36·텍사스)가 마지막 타석에서 야수선택으로 1루를 밟고 대주자 라이언 루아와 교체돼 더그아웃으로 돌아오자 동료들이 하나둘씩 그의 곁에 다가와 한마디씩 건넸다. 제프 배니스터 감독까지 직접 추신수가 앉아 있는 자리로 발걸음을 옮겨 그간의 ‘노고’를 치하했다. 52경기 연속 출루 대장정을 마친 추신수는 기록 행진 동안 큰 도움을 준 팀 동료에게 감사의 뜻을 건넸다. 추신수는 기록 중단 후 인터뷰에서 “나 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진심으로 팀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건넨다”며 한솥밥을 먹는 팀 식구들에게 사의를 표했다. 배니스터 감독은 “올스타이자 대단한 선수가 이룬 믿기 어려운 위업이다. 52경기 연속 출루를 평가하고 감독으로서 그 기록의 일부가 될 수 있어 놀라웠다”며 추신수를 격려했다. 추신수는 “타석마다 그리고 더그아웃에 들어올 때마다 동료들이 내 옆에 앉아 관심을 보이고 마음을 써줬다”면서 재차 동료들에게 머리 숙여 고마움을 표했다. 추신수는 또 “가족과 한국에 있는 팬들이 연속 경기 출루 기록을 함께 즐겨준 것에 감사드린다”면서 “오늘 밤 많은 팬이 슬퍼하겠지만, 난 내일 다시 출루를 시작하겠다”고 새롭게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그다음 날인 7월 23일 볼넷, 24일에도 4사구 2개로 멀티출루에 성공한 ‘추추트레인’은 약속대로 다시 철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 2018 메이저리그(MLB) 방문경기에서 1회초 솔로홈런을 뽑아낸 뒤 더그아웃으로 돌아가고 있다. ⓒ연합
150년 전설들 사이에 이름 올린 ‘choo(추)’
아쉽게 기록 행진은 멈췄지만, 추신수는 아시아 출신 선수 최다 연속 출루(스즈키 이치로 43경기), 텍사스 구단 단일시즌 기록(훌리오 프랑코 46경기), 현역 선수 최다 연속 기록(앨버트 푸홀스·조이 보토 48경기)을 모두 갈아치웠다. 덕분에 지난 7월 18일 열린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 역대 한국인 빅리거로는 박찬호(2001년), 김병현(2002년)에 이어 세 번째이자 야수로는 최초로 초청을 받았고 별들의 무대에서도 안타로 출루해 ‘출루 기계’의 명성을 뽐냈다.
2005년 빅리그에 데뷔한 추신수의 올스타전 출전은 13년 만에 처음이다. 가족과 함께 참가해 최고의 날을 보낸 추신수는 후반기 첫 경기인 7월 21일 클리블랜드전에서는 52경기 연속 출루를 기록, 1923년 51경기 연속 출루를 했던 ‘전설’ 베이브 루스(뉴욕 양키스)까지 넘어섰다. 52경기 연속 출루는 2006년 올랜도 카브레라(LA 에인절스)의 63경기 연속 출루 이후 메이저리그 최장 기록이다. 또 메이저리그 역대 공동 17위 기록으로 2002년 게리 셰필드(애틀랜타) 이후 16년 만에 처음 나왔다.
추신수는 52경기 연속 출루를 하는 동안 안타 67개를 치고 볼넷 48개를 얻었다. 이 기간 타율은 0.337, 장타율은 0.588, 출루율은 0.468에 달했다. 안타 중 2루타는 11개, 홈런은 13개였다. 타점 29개와 32득점을 올렸고, 기록 시작 전 0.239에 불과하던 시즌 타율은 2할9푼대로 치솟았다.
그를 바라보는 구단의 시선도 완전히 달라졌다. 추신수는 2013년 시즌 후 신시내티에서 텍사스로 이적할 때 7년간 1억 3000만 달러(당시 약 1379억 원) 초대형 계약을 맺어 큰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이적 전보다 확연히 낮은 기록을 남겨 실망을 안겼다. 때문에 현지 언론에서는 실패한 자유계약선수(FA) 명단에 해마다 추신수의 이름을 올려놓고는 했다.
절치부심한 추신수는 마지막 열정을 불살랐다. 올 시즌을 앞두고 타격 시 다리를 살짝 드는 ‘레그킥’을 장착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어려운 시도였고, 시즌 초반엔 고전을 면치 못했다. 5월 13일까지의 성적은 0.239의 타율과 0.710의 OPS(출루율+장타율)에 그쳤다. 장기이던 출루율 역시 0.316에 그쳤다. 선구안까지 흔들리며 39경기에서 15개의 볼넷을 얻어내는 동안 무려 40개의 삼진을 당했다. 고심한 추신수는 상대와 상황에 따라 발을 들어 올리는 정도의 변화를 주기로 했다. 파워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장점인 정확도와 선구안을 되찾기 위한 포석이었다. 결국 끊임없는 노력과 타고난 야구 센스는 타격을 되살렸다. 5월 14일 휴스턴전에서 멀티 안타를 기록한 추신수는 19일 화이트삭스전에서 8년 만에 만루홈런을 때려내며 반전의 서막을 열었다.
연속 출루 행진 속에 완전히 살아난 추신수는 3할을 바라보는 시즌 타율, 4할대 출루율, 9할에 가까운 OPS(출루율+장타율) 등 클리블랜드에서 뛰던 약 10년 전 전성기 시절에 가까운 성적을 올리고 있다. 특히 시즌 18홈런, 통산 186홈런으로 마쓰이 히데키(175홈런·일본)를 훌쩍 넘어 아시아 선수 최다 홈런 기록도 세워나가고 있다.
대망의 1000볼넷ㆍ2000안타
현재(이하 성적 24일 기준) 추신수는 749개의 볼넷으로 이 부문 아시아 선수 1위를 달리고 있다. 이치로의 경우 커리어가 길어서 2위(646개)를 달리고 있지만, 워낙 타격에 적극적인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안타에 비해 볼넷이 적었다. 페이스를 감안하면 추신수는 내년 초반에 800개를 넘어 2020년 시즌까지 1000개에 육박하는 볼넷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추신수는 또 메이저리그 통산 1452개의 안타를 기록 중으로 2000안타까지 548개가 남아 있다. 추신수가 가장 많은 안타를 기록한 시즌이 2009년 175안타인데, 추신수가 20홈런-20도루를 동시 달성한 시기에는 시즌 160안타 이상을 기록한 적도 있었다. 텍사스로 이적한 후에도 2015년과 2017년에는 각각 153안타와 142안타를 기록했다. 향후 연평균 150안타를 기록할 경우 2020년이면 1800안타 고지까지는 밟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불혹에 다가서는 나이가 걸림돌이지만 지금과 같은 활약상과 메이저리그의 주목도라면 텍사스와 계약 만료 이후에도 그를 품에 안을 팀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추신수는 또 통산 827득점을 기록 중이다. 볼넷이 많아 출루율이 좋기 때문에 통산 타점(688개)보다 득점이 상당히 많다. 80득점 이상을 기록한 시즌이 다섯 번이나 된다. 2013년(107득점)과 2015년(94득점), 그리고 2017년(96득점) 등 3시즌에는 평균 100득점에 가까운 생산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올 시즌에는 현재 55득점으로 빈약한 타선 때문에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이르면 2020년 전반기에 1000득점을 돌파할 수 있다. 통산 타점 역시 2020년 후반기에 800타점 돌파가 유력하다. 통산 200홈런은 내년 전반기에도 가능한 페이스다.
성환희│한국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