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알고도 모른 척할 때 우리는 흔히 ‘시치미를 뗀다’고 한다. 여기서 시치미는 무엇을 뜻하는 걸까? 옛날 매사냥꾼은 매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매의 꽁지나 발목에 흰색 깃털 모양의 주인 이름표를 달았다. 매의 신분증 같은 이 징표가 바로 시치미다.
훈련이 덜 된 매는 꿩 사냥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을 놓치고 이집 저집 날아드는 경우가 있었다. 매도 주인을 잃게 되지만 주인 역시 매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먹이로 남의 귀한 매를 유인하기도 했다. 그래놓고 매에 부착된 시치미를 떼고 본인 이름표를 붙인 뒤 주인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상황이 속담화돼 오늘날까지 ‘시치미 뗀다’고 한다.
지역 공동체의 연대와 단합 도모
‘시치미 뗀다’는 표현의 유구한 세월처럼 매사냥은 오래 전 한반도에 뿌리내렸다. 사전적으로 매사냥은 ‘매나 기타 맹금을 길들여서 야생에 있는 사냥감을 잡는 전통 사냥’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수렵술인 매사냥은 아시아 초원지대에서 생겨나 교역로를 거쳐 유럽과 북아프리카, 동아시아 등 다른 지역으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 우리나라와 독일, 사우디아라비아, 오스트리아 등 18개 국가의 매사냥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공동 등재된 데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깔렸다.
매사냥은 애초 인간이 식량 확보를 목적으로 시작한 활동이지만 역사가 흐르면서 지역 공동체의 연대와 단합을 도모하는 문화와 전통으로 발달했다. 오늘날 매사냥의 전통이 남아 있는 전 세계 80여 나라에서 매 훈련법과 사냥법, 사용 도구, 의상 등이 다른 이유다. 매사냥의 보편성이 유지되면서도 지역에 따라 그 고유성이 살아 움직이는 점에 유네스코도 높은 점수를 줬다.
한민족 반만년 역사와 호흡을 같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매사냥을 우리 선조는 주로 겨울철 농한기에 수렵 활동으로 즐겼다. 일종의 겨울 스포츠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왜 겨울에 매사냥에 나섰던 것일까? 동물 중 가장 시력이 좋은 것으로 알려진 매의 시력은 인간의 7~8배로 멀리까지 정확하게 물체를 탐지할 수 있다. 맹수처럼 두 눈이 전진 배치되는 등 먹잇감을 노리기에 최적화한 방향으로 진화한 포식자의 안면 구조를 갖추고 있다. 예부터 날카롭게 잘 꿰뚫어 보는 사람을 가리켜 ‘매의 눈’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통상 매는 농한기에 북쪽에서 한반도로 내려와 받았다. 전문가 사이에서 매는 ‘잡는다’고 하지 않고 ‘받는다’고 한다. 원래 전통 매사냥에서는 이렇게 받은 매를 2~3개월 훈련해 농한기에 사냥에 이용하고는 농번기에는 자유롭게 풀어줬다. 여름철은 매가 털갈이를 하고 번식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매는 수리과에 속하는 참매와 매과에 딸린 송골매다. 참매는 물불 안 가리는 용맹하고 사나운 성질을 갖고 있다. 활동력도 왕성해 사냥매로는 최고로 친다. 어린 참매를 보라매라고 하는데 공군사관학교의 상징이기도 하다. 낯익은 지명인 보라매공원도 공군사관학교가 떠난 자리에 들어서서 붙은 이름이다.
매사냥은 인간과 매의 상호작용으로 완성
송골매는 시속 300㎞가 넘는 속도로 넓은 평원을 가로지르며 사냥 능력을 발휘하는데 사냥꾼처럼 한 번에 사냥감의 숨통을 끊어놓는 습성도 지녀 속도와 정확성으로 하늘을 지배한다. 한국항공대의 상징 동물이기도 한 송골매는 같은 학교 출신인 인기 라디오 진행자 배철수 씨가 과거 만든 록밴드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매사냥의 흔적은 옛 기록에 여럿 남아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 고려시대 야생 매를 포획해 훈련하는 내용 등 매 관련 연구서인 응골방, 조선시대 매사냥 애호가 태종이 일주일 연속 매사냥을 했다는 내용 등이 담긴 태종실록 등이 대표적이다. 매사냥은 고려시대 가장 활발히 이뤄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매사냥은 인간과 매의 상호작용으로 완성된다. 어느 한쪽만 존재하는 매사냥은 세상에 없다. 매사냥꾼은 한자로 매를 뜻하는 응(鷹)과 스승 사(師)를 합쳐 ‘응사’라고 부른다. 고도로 숙련된 응사는 한 달 안에 매를 받아 길들일 수 있다고 한다. 이때는 응사가 하루 24시간 매와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한다.
매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냄새가 아니라 눈으로 주인을 알아본다. 먹이를 미끼로 반복된 훈련을 거치며 주인을 눈으로 알아채는 것이다. 매사냥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체험 행사들이 지역 곳곳에 있으니 맹금류인 매와 사람이 교감하는 신비로운 하늘 무대가 궁금하다면 한번 참여 신청을 해보길 권장한다.
김정필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