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몰아쉬던 가쁜 숨을 잠시 고를 때다. 청량한 공기를 벗 삼아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다가올 새 여정을 준비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도심 한복판 오롯이 흙이 들려주는 담백한 선율에 귀를 기울여보자. 숨 쉬듯 편안한 음색에 한결 평온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오카리나 연주의 대가 소지로가 십수 년 만에 단독 내한공연을 갖는다. 그간 발표곡 중 대표작 위주로 국내 관람객을 찾을 예정이다. ⓒ실버트레인
오카리나 연주의 대가 노무라 소지로(野村宗次?·63)가 십수 년 만에 단독 내한공연을 갖는다. 손바닥만 한 도제(陶製) 피리가 뱉어낼 희로애락에 기대감이 커진다. 도제 피리를 대표하는 오카리나는 이탈리어로 ‘작은 거위’를 뜻한다. 북이탈리아 작은 마을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당시 마치 새끼 거위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물과 흙, 소박한 재료가 만들어낸 악기여서일까. 그 음색 또한 소박함과 친근감을 자랑한다. 결코 얕기만 한 소리는 아니다. 깊이 있는 편안함이 건네는 아름다움은 오카리나만의 매력이다. 양손으로 감싸 쥐고 쓰다듬듯 연주하는 연주자의 마음까지 전해온다.
소지로는 1986년 일본 NHK 다큐멘터리 ‘대황하’에서 배경음악 연주가로 인기를 얻기 시작해 국내에까지 알려졌다. 담백하지만 탄탄한 그의 연주 소리는 이미 여러 차례 국내 공연을 통해 유명세를 입증한 바 있다.
▶ 내한공연 포스터 ⓒ실버트레인
▶ 소지로가 직접 제작한 오카리나 ⓒ실버트레인
이번 공연은 소지로가 지난 33년 동안 발표한 곡 중 ‘숲으로 돌아가다’, ‘메아리가 바람 되어’, ‘천공의 오리온’, ‘별밤의 언덕’ 등 대표작 위주로 펼쳐진다. 자신의 연주가 관객들의 마음을 한껏 훔칠 수 있도록 연주하고 싶다는 소지로의 소망이 담긴 선곡이다. 일본 실력파 연주 그룹(퍼커션, 기타, 피아노 등)·300인조 한국오카리나오케스트라·하늘소리 오카리나앙상블과 소지로의 협연은 이번 공연의 묘미 중 하나다. 홀로 연주하던 오카리나가 다른 악기와 더해졌을 때 선사하는 소리는 다르다.
NHK 다큐 ‘대황하’ 배경음악으로 큰 인기
“단독으로 연주할 때는 제 자신의 감각대로 강약, 속도 등을 자유롭게 표현합니다. 반면 다른 악기와 함께할 때는 평화로운 음악을 목표로 해요.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하나 되는 것이 음악이니까요. 우리는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연주를 통해 대화합니다. 동반 내한하는 음악가들은 저마다 작곡자, 편곡자이자 기량이 뛰어난 연주가들입니다.”
소지로는 오카리나 음색을 ‘깨끗한 지하수’에 빗댄다. 계곡을 따라 울려 퍼지던 오카리나의 맑은 선율을 처음 귀에 담았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해서다. 40여 년 전 일본 도치기 현의 산골짜기 작은 마을에서 들려온 연주 소리에 매료된 이후 그는 날마다 동틀 무렵까지 산을 향해 오카리나를 불었다고 한다. 폐자재로 지은 조그만 집을 가득 채우던 소리를 또렷이 기억한다. 눈 내리는 날이면 눈이 주변 잡음을 삼킨 덕에 정적을 대신하는 오카리나 소리는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그는 자신이 느꼈던 오카리나 특유의 힘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길 바란다.
“오카리나는 부드럽고 소박한 음색으로 전달되는 경향이 있지만 공연장에서 직접 듣는 연주는 또 다른 느낌을 줍니다. 앙상블 속에서도 본연의 음색을 제대로 전할 수 있는 악기거든요. 그 점을 염두에 두고 감상해주세요. 그렇다고 특정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소지로의 연주가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직접 구워낸 오카리나로 연주하는 그만의 음색을 내기 때문이다. 소지로는 벽돌을 쌓아올려 가마를 손수 완성했고, 구할 수 있는 점토라면 무엇이든 구워냈다. 13시간 정도 구워 만든 오카리나를 꺼내 그슬리고 연마하고 조율하기까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1985년까지 제작된 오카리나는 1만 개. 그중 엄선된 10여 개가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소지로의 소리가 그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음악인 것도 이 때문이다.
본래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는 그에게 노랫말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소지로의 말을 빌리면 음악은 평화로운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며 오카리나는 공기를 갈아 일구는 것이다.
“오카리나가 갈아 만든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폐로 들이닥치는 숲의 소리를 느껴보세요. 한국의 많은 오카리나 애호가를 비롯해 오카리나를 처음 접하는 관객들도 음색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공연이 됐으면 합니다.”
이근하|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