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도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보통 사람들과 같다. 특히 어려운 순간에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은 더욱 빛을 발한다. 역사 속 인물들이 남긴 편지를 통해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을 살펴봤다.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매조도는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시집가는 딸에게 남긴 것이다. 부인 홍씨가 보내준 비단치마폭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게 된 연유를 밝혔다. ‘치마를 가위로 잘라 네 개의 첩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물려주고 남은 것은 작은 족자로 만들어 딸아이에게 물려준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뉴시스
조선 후기 실학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무려 18년 동안 전남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정약용이 유배를 떠난 1801년 당시는 천주교가 박해를 받던 시기였다. 천주교와 관련된 혐의로 유배를 당한 그는 1818년까지 강진에 있는 초가에서 지내야 했다. 정약용은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학술 활동에 매진하면서도 떠나온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두 아들과 형님을 걱정한 정약용은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전했다.
정약용은 아버지 없이 지내는 두 아들에게 편지로 가르침을 전했다. 정약용이 두 아들에게 늘 강조했던 것은 효제(孝弟)였다.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을 먼저 챙겨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효제를 실천해야 학문에 뜻을 둘 수 있고, 그다음 독서를 할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아들은 아버지가 유배를 떠난 마당에 오롯이 학문에 뜻을 두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두 아들이 학문을 닦는 데 게으름을 보이면 정약용은 편지로 엄히 나무랐다. 오히려 폐족이 되었기 때문에 학문에만 정진하기 쉽다고 역설했다. 정약용은 편지로 두 아들을 엄하게 가르쳤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독서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등 마치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세세한 내용을 편지에 담았다.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아들이 행여나 잘못된 행동으로 화를 입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 정약용도 막내아들이 죽었을 때는 비통한 심경을 숨기지 않았다. 정약용의 자녀는 아들 둘과 딸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아버지보다 빨리 생을 마감했다. 막내아들을 특히 사랑했던 정약용은 아들의 죽음에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 슬픔이 몸을 관통하는 것만 같은 순간에도 정약용은 아내를 먼저 살폈다. 두 아들에게 어머니를 몸과 마음을 다해 정성껏 모시라고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는 자신이 없는 동안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아들들을 강하게 키우려는 뜻이 담겨 있다.
폐족이 되어 글도 못하고
예절도 갖추지 못한다면
어찌 되겠느냐.
보통 집안 사람들보다 백 배
열심히 노력해야만 겨우 사람 축에
낄 수 있지 않겠느냐. 내 귀양살이
고생이 몹시 크긴하다만 너희들이
독서에 정진하고 몸가짐을 올바르게
하고 있다는 소식만 들리면
근심이 없겠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창비) 중에서
이중섭 <아내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이중섭은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는 모두 일본어로 썼다. 편지 옆에는 항상 가족이 함께 모여 있는 그림을 그렸다. 편지에는 아내에게 부탁할 내용이나 아내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주로 적었다. ⓒ뉴시스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이중섭(1916~1956)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림솜씨에 견줘도 손색없을 만큼 대단했다.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한 1952년, 이중섭은 사랑하는 가족을 일본으로 보내고 홀로 남았다. 이중섭은 헤어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편지로 달랬다. 이중섭은 화가답게 편지에 항상 그림을 함께 그렸다. 그가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화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소’의 힘찬 붓질 대신 그림 곳곳에 아기자기한 소품을 그려 넣어 가족을 그리는 마음이 잘 묻어난다. 이중섭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화에는 네 가족이 꼭 껴안고 있는 그림, 다시 만난 가족이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그림, 과수원에 모여 과일을 따먹는 그림 등 가족이 함께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린 그림이 많다. 지금은 서로 떨어져 살지만 언젠가는 다시 같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족에게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중섭이 쓴 편지 내용에도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흘러넘친다.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감 없이 써 내려간 편지를 읽다 보면 이중섭이 열정으로 가득한 낭만주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편지 곳곳에 달콤한 구애와 애교가 구구절절 적혀 있다. 심지어 답장을 늦게 보낸 아내에게 섭섭한 마음을 토로하는 편지를 보면 이중섭이 얼마나 아내를 사랑하는지가 잘 느껴진다. 이중섭은 편지에 ‘남덕 군’, ‘발가락 군’ 같은 애칭으로 아내를 불렀다. 그중 발가락 군은 아담한 체형에 비해 유난히 크고 못생긴 아내의 발에 붙인 애칭이다. 아내의 콤플렉스를 애칭으로 만들어 부를 정도로 이중섭은 아내를 끔찍이 사랑했다.
아이들에게 전하는 편지에도 애정이 가득하다. 아이들의 건강을 살뜰히 챙기기도 하고 형제가 사이좋게 지내는지, 학교생활은 재미있는지, 숙제는 꼬박꼬박 잘해 가는지 등 아이들의 전반적인 생활을 묻는 편지에는 이중섭이 멀리 떨어져 사는 아버지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만큼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묻어 있다.
이중섭은 편지를 통해 언제나 자신이 가족을 생각하고 있음을 표현했다. 가족과 떨어져 있을 때, 이중섭은 하루에 한 끼조차 먹기 힘든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어렵사리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하지만 가족에게 쓰는 편지에는 자신이 겪는 생활고에 대한 내용보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표현한 내용이 훨씬 많다. 가족을 생각하며 어려움을 참고 견디다 끝내 세상을 떠난 이중섭의 편지를 읽으면 그저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를 꿈꾸는 평범한 한 가장의 마음이 진하게 느껴진다.
다음에 만나면 당신에게 답례로
별들이 눈을 감고 숨을 죽일 때까지 깊고
긴긴 키스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해드리지요. 지금 나는 당신을 얼마만큼 정신없이 사랑하고 있는가, 어떻게 글을 쓰면 나의 마음을 당신의 마음에 전할 수 있을까, 내가 얼마나 훌륭한 그림을 그려야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나의 귀엽고 너무나도 귀여운 선생님,
제발 가르쳐주시오.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다빈치) 중에서
장가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