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비행기는 몇 번 타 봤지만 비행기를 타보고 하늘을 날았다고 얘기하는 건, 배를 타보고 수영을 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그래서 오늘은 마음 단단히 먹고 출발했다. 목적지는 충북 단양의 두산활공장이다.
더없이 맑은 하늘과 살랑거리는 바람. 비행하기에 딱 좋은 날씨다. 아니 그럴 것 같다. 사실 패러글라이딩을 체험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기대가 크다. 몇 주 전, 딸들 성화에 못 이겨 탔던 바이킹의 악몽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단양은 패러글라이딩의 메카로 통하는 곳이다. 왜? 일단 풍광이 일품이다. 산과 강이 어우러지고 평야가 융단처럼 펼쳐진 풍경은 ‘천혜의 비경’이라는 표현이 딱 맞아떨어질 만큼 아름답다. 한데 그 모든 걸 발아래 두고 하늘을 날다니,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단양 두산활공장은 단양 일대가 한눈에 담기는 봉우등 정상에 있다. 태백에서 시작한 남한강이 영월에서 평창강을 받아들여 단양 땅을 ‘S’자로 휘감아 도는 지점이다. 봉우등 발목을 적신 남한강은 단양의 명물 도담삼봉을 지나 내륙의 바다, 충주호로 쉼 없이 흘러간다.
두산활공장 입구를 알리는 이정표에서 활공장까지는 제법 가파른 길을 올라야 한다. 차 두 대가 교행하기도 쉽지 않은 좁은 비탈길을 부지런히 오르면 한순간 활짝 열린 하늘 아래 널찍한 공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활공장이다. 길은 그곳에서 끝이 난다. 더 이상 오를 길이 없으니, 이제는 내려갈 일만 남은 셈이다.
▶패러글라이더가 하강과 상승을 반복하는 사이 눈앞에는 아름다운 황금들판과 자연이 펼쳐진다.
탁트인 활공장에 서니 잠시 잊고 있던 두려움이 다시 스멀스멀 살아난다. 가을바람에 힘없이 흔들리는 갈대처럼 두려움과 설렘이 마음속에서 종잡을 수 없이 일렁인다. 눈맛 좋은 풍경에 잠깐 팔렸던 정신은 간헐적으로 들리는 비명(?) 소리에 얼른 제자리로 돌아온다. 고장 난 나침반마냥 빙글빙글 극과 극을 오가는 기분을 다잡아보려 심호흡을 해봐도 효과는 별로다.
"78번 손님!" 마침내 내 차례다. 대기석에서 활공장까지 걸어가는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다. 아니 비행복을 입고, 헬멧을 쓰고, 거대한 하니스(안전벨트)를 어깨에 짊어질 때까지도 도대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왜 안 그렇겠는가. 이곳은 해발 600m가 넘는 봉우등 정상이고, 몇 분 뒤에 나는 활공장을 힘껏 달려 허공 속으로 몸을 던질 텐데. ‘초등학생들도 잘 탄다’거나 ‘비행 경력 10년’이라는 교관의 말도 별로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패러글라이딩 체험비행은 2인 1조로 이뤄진다. 메인 파일럿인 교관이 뒤에, 체험자가 앞에 자리해 함께 비행을 한다. 두 사람의 하니스는 카라비너(쇠고리)로 단단히 고정하기 때문에 교관의 지시만 잘 따르면 전혀 위험하지 않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하니스와 캐노피(낙하산의 바람받이)가 분리된다면? 그래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꿀벌의 엉덩이처럼 불룩한 하니스에는 착륙 시 충격을 줄여주는 완충장치 외에도 보조 낙하산이 들어 있으니까. 이중 삼중으로 안전장치가 마련된 패러글라이딩은 그래서 그 어떤 항공 레포츠보다 안전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교관들 역시 국가에서 인증하는 자격증을 취득한 전문 패러글라이더들이다.
"몸을 앞으로 숙이고 계속 달리세요. 멈추면 안 됩니다."
몸을 숙인다. 멈추면 안 된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몸 따로 머리 따로 논다는 건 아마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달린다고 달리는데도 몸이 전혀 앞으로 나아가질 않으니 말이다. 말 그대로 아등바등. 캐노피가 제자리를 잡을수록 몸은 되레 뒤로 밀리기까지 한다. 바람의 저항이 커질수록 교관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진다. 패러글라이딩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바로 지금이다. 10여m에 이르는 거리를 달려 이륙을 하는 이 순간 말이다. 이때 체험자가 겁을 먹고 제대로 뛰지 않거나, 이륙 전에 무릎을 구부리면 중심이 낮아져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교관의 호통(?)에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크게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짧은 순간, 몸이 아래로 쑥 빨려드는가 싶더니 바로 둥실 솟아오른다. 떨어짐과 솟구침이 교차하는 그 찰나의 시간, ‘앗’ 하는, 어금니 깨물고 참았던 비명이 결국 터져 나오고 말았다.
그렇게 내 첫 비행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시작됐다. 이제 눈앞에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뿐이다. 그리고 세상이 내 발아래 있다. 정말 내 발아래에 들판이, 산이, 강물이, 그리고 성냥갑보다 작은 자동차와 집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하늘을 나는 건 이처럼 세상을 내 발아래 두는 황홀한 경험을 온몸으로 느껴보는 것이리라. 기류에 따라 하강과 상승을 반복하던 패러글라이더는 10여 분 만에 ‘쿵’ 하는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땅으로 내려섰다. 두 발로 다시 땅을 딛고 일어서서 돌아본 봉우등 활공장이 아득하게 멀다. 그랬다. 10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분명 하늘을 날았고, 또 세상을 품었다. 비행기도 놀이기구도 아닌, 온전히 바람에 실려 꿈을 꾸듯 그렇게 말이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얼굴이 있다더니, 하늘에서 본 풍경들이 그새 그립다. 끝없이 펼쳐진 황금들판이, 한 마리 용처럼 굽이굽이 산허리를 타고 돌던 남한강의 모습이, 땅을 딛고 일어서는 그 순간부터 그리워질 줄은 정말 몰랐다.
단양 두산활공장
•주소 충북 단양군 가곡면 두산길 254-6
•문의 010-4105-2677, www.dydsp.kr
글·사진 정철훈(여행작가) 2016.09.12
가을 레포츠 BEST 4
신나게 짜릿하게 온몸으로 가을 만끽
창공을 가르며 즐기는 짜릿한 비행 패러글라이딩
여름에 래프팅, 겨울에 스키가 대표적인 레포츠라면 가을엔 단연 패러글라이딩을 꼽는다. 가을의 청명한 하늘 아래 오색 단풍을 감상할 수 있을뿐더러, 적당한 상승기류가 발생해 패러글라이딩을 즐기기 가장 적합한 날씨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가을철이면 패러글라이딩 체험장에는 마니아나 일반 체험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패러글라이딩은 파라슈트(낙하산)와 행글라이딩의 합성어로 1980년대 프랑스 등산가가 등정 후 신속한 하산을 위해 고안했다. 낙하산 원리에 행글라이딩의 비행술을 융합한 것으로 방향 조작이 우수하고 상승과 하강이 가능하며 전문성이 요구되는 비행기구다. 초속 1∼5m의 바람에 몸을 실어 활공과 체공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특히 상승기류를 타면 상공 1000m 이상도 올라갈 수 있으며,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꾸고 빙빙 도는 스파이어럴은 재미를 더한다. 고성능 카메라를 통해 비행자의 이륙 순간부터 착륙까지 생생한 모습을 담아보는 것도 해볼 만하다.
충남 보령의 옥마산 옥마봉(620m)에 위치한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은 내륙지역의 패러글라이딩 활공장과 달리 서해안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이용하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하다. 또한 이륙하기 적당한 경사면을 갖추고 있고 주변에 장애물이 없어 초보자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이곳의 패러글라이딩 비행 체험은 전문가와 함께하는 2인승 비행(탠덤)으로 별도의 기초교육 없이 일반비행, 곡예비행, 특별비행 등 체험자의 연령과 신체 상태에 따라 다양한 비행을 해볼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초보자도 쉽게 즐길 수 있는 패러글라이딩
충북 단양 양방산(664m)에 위치한 단양패러글라이딩 활공장도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등에 수차례 소개된 인기 활공장 중 하나다. 1993년 국내 최초로 조성된 활공장으로, 정상에는 5개 활공장과 활공 연습장, 초경량 항공기 활주로를 갖췄다. 4세부터 80세 미만까지 간단한 교육만 받으면 누구나 연습 없이 비행 체험이 가능하다. 해마다 단양군수배 전국 행글라이딩 & 패러글라이딩 대회를 비롯한 각종 국내외 대회가 이곳에서 펼쳐진다.
추천 장소 단양패러글라이딩활공장(043-422-3675), 보령패러글라이딩체험장(041-934-7892)
산과 하나가 되는 ‘난이도 상’ 레포츠 클라이밍
본격적인 산행의 계절, 가을을 맞아 ‘클라이밍족’도 늘고 있다. 클라이밍은 일반적인 산행과 달리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오르는 등반을 말한다. 난이도가 높은 자연 암벽을 오르기 전, 인공암장에서 스포츠클라이밍으로 첫발을 떼는 것도 좋다.
▶자연 암벽을 오르는 산악레포츠 클라이밍.
암벽 등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안전이다. 안전장비와 안전수칙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스포츠클라이밍에서 필요한 암벽화와 초크백 이외에 안전벨트, 헬멧, 하강기와 퀵드로 등 많은 장비가 필요한데, 해당 장비에 대한 사용법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장비는 모두 갖췄지만 8자 매듭이나 클로브히치 매듭 등 기본적인 매듭법을 모른다면 무용지물이다.
충분한 교육이 필요하다 보니 등산학교가 따로 있다. 한국등산학교(02-3677-8520)와 코오롱등산학교(02-2207-2525)가 대표적인데, 정규반을 졸업하면 기본적인 등반이 가능하다.
추천 장소 전북 고창 선운산, 강원 원주 간현암, 응봉산인공암벽등반공원(02-2286-6061), 뚝섬한강공원인공암벽장(02-3780-0521)
단풍길 따라 쌩쌩 달려요 산악자전거(MTV)
자전거로 즐기는 가을 산행도 인기다. 특히 일반 자전거보다는 비포장도로에 특화된 산악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바퀴 폭이 넓은 산악자전거는 쉽게 미끄러지거나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거친 노면에서 발생하는 충격을 완화해주는 서스펜션 포크가 탑재돼 좀 더 안전하게 단풍 감상을 할 수 있다.
▶자연을 즐기며 산길을 달리는 산악자전거(MTV).
전남 담양에서 전북 순창으로 이어지는 24번 국도에는 메타세쿼이아가 길게 늘어선 가로수길이 있다. 이곳의 메타세쿼이아는 1974년 가로수 조성사업 때 심어졌으며 현재는 높이 30~40m에 이르는 나무로 자랐다. 담양에서 순창까지 24번 국도 8.5km 구간에 심어져 있는데, 이 가운데 2.1km 구간이 산책이나 자전거를 즐길 수 있는 전용 숲길로 조성됐다.
추천 장소 전남 담양 메타세쿼이아길, 강원 화천 산소100리길, 서울 올림픽공원, 울산 영남알프스 등
오토바이보다 안전… 자전거보다 스릴 산악오토바이크(ATV)
모든 지형을 주파할 수 있는 이동 수단이라는 이름(All Terrain Vehicle)처럼 강변길과 산악지형을 스피디하게 즐길 수 있는 산악오토바이크도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가을에 인기다.
▶안정감 있고 스릴도 있어 가족단위 관광객 이 많이 찾는 산악오토바이크 (ATV).
바퀴가 네 개라 이륜 오토바이보다 안정감이 있고 자전거보다 더 짜릿한 스릴을 즐길 수 있어 가족 단위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비교적 대중화된 산악레포츠로 전국 유명 관광지 내 곳곳에 산악오토바이크 체험장이 마련돼 있다.
추천 장소 용문산산악오토바이체험장(010-5359-6956), 석모도퍼니랜드(032-932-4621)
글· 김가영(위클리 공감 기자) / 사진·동아DB 2016.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