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어요. 그토록 가보고 싶은 나라 한국에 오다니 너무 좋아요!"
"엑소(남성 아이돌 그룹 EXO) 너무 좋아요! 기회만 되면 한국에서 연기를 배울 거예요!"
"한국 드라마는 정말 흥미로워요. 여기 오니까 마치 한국 드라마 세트장에 온 것 같아요!"
▷10월 20일 서울 코엑스 SM타운을 찾은 ‘토크 토크 코리아’ 공모전 1등 수상자들. 큐브라(터키), 엘리자베스(푸에르토리코), 팜(베트남), 루지아나(인도네시아), 디미트리나(불가리아). 아벨(콜롬비아), 가브리엘라(불가리아), 딜리아나(불가리아)(왼쪽부터)
서울 덕수궁 왕궁 수문장 교대식 준비 현장. 싱그러움이 묻어나는 불가리아 여고생 디미트리나(18), 가브리엘라(18), 딜리아나(18)가 참새 떼처럼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었다. 15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전날(10월 19일) 입국해 피곤할 법도 한데 모두들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두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며 "한국에 온 것이 꿈만 같다"는 이들은 서울의 공기를 힘껏 들이마셨다.
외국인 대상 글로벌 콘텐츠 공모전 '토크 토크 코리아 2015'는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과 외교부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한국방송공사 월드가 주관한 공모전으로, 143개국에서 1만5911개의 작품이 모였다. 산술적으로만 봐도 10월 19일부터 24일까지 한국 문화 체험 기회를 얻은 1등 수상자(6팀, 8명)는 0.05%의 확률에 속한 행운의 주인공이다.
불가리아 여고생 3명
한국 체험 위해 시장 지원 받아내
불가리아에서 온 소녀들은 트리플크라운(Triple Crown)팀의 팀원으로 동영상 일반 부문에서 1등을 받았다. 주최 측에서 팀마다 1명에게 한국 체험 기회를 제공했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트루도벳(Trudovets)시의 시장을 만나 자금을 후원받아 팀 전원이 한국을 찾았다.
왕궁 수문장 교대식은 1996년부터 재현되는 한국의 대표적인 관광 상품이다. 조선시대에는 궁궐 문을 책임지는 수문장청(관청의 한 종류)이 설치돼 종6품의 수문장(책임자)을 비롯해 참하, 수문군이 궁궐 안팎을 지켰다. 교대식은 이런 역사를 배경으로 만든 행사로, 관람객 2명은 매일 오후 2시 교대식에 직접 수문장으로 출연할 수 있다.
오늘의 수문장은 동영상 아리랑 부문 1등 수상자인 아벨(34, 콜롬비아)과 캘리그래피 1등 수상자인 루지아나(24, 인도네시아). 이들은 교대식을 위해 1시간여 동안 교육을 받으면서 근엄한 표정으로 교대식 대원들과 발맞추기를 하느라 바빴다.
교대식에 참가하지 않은 나머지 6명은 덕수궁 앞에서 한복 입기 체험을 하며 또 다른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그 무리에 속한 불가리아 소녀들은 한복을 입고선 함박웃음을 터뜨렸는데, 응모작을 만들 때 한복을 입고 연기를 해서인지 한복이 어색하지 않은 눈치였다.
"저희 동네에서 1시간 정도 차를 타면 소피아(수도)에 갈 수 있어요. 소피아에 있는 한국대사관에서 한국 문화 행사가 열려 자주 가죠. 소피아에 단 하나밖에 없는 한국 식당에 가는 게 저희의 큰 즐거움이에요.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떡볶이예요!"(딜리아나, 가브리엘라)
"유튜브에서 공모전 공고를 보고 도전했는데, 해외에서 상을 받긴 처음이에요. 학교에서 동영상 제작 과제를 많이 하고, 이런 걸 만드는 게 저희 취미인데요. 이번 여행도 기록해 동영상으로 만들 거예요. 제발 많은 K-팝 스타들이 불가리아에 왔으면 좋겠어요!"(디미트리나)
▷공모전 수상자들이 10월 22일 부산시 재한유엔기념공원을 찾아 6·25전쟁에서 희생된 유엔군 참전용사를 위해 묵념을 했다.
일행 가운데 한 명은 한복 입기 체험에 동참하지 않았다. 터키에서 온 큐브라(23)는 한복을 직접 만들어 입고 있었기에 구태여 체험을 할 필요가 없었다. 사진 부문에서 1등상을 받은 그는 한복 디자이너로 스니커즈를 신고 히잡을 쓰고 있었다. 수상작에서도 큐브라는 친구들과 이렇듯 한복을 자신의 문화에 맞게 멋들어지게 소화했다. 서툰 한국말로 큐브라가 말했다.
"한국 드라마 '대장금'을 봤다. 한복 그때 좋아졌다. 사진 보고 한복 만들었다. 터키 트라브존 한국문화의집 선생님이 한복 줬다. 빌려줬다. 그때 처음 한복을 봤다. 2012년 한복 만들었다. 한복 패션쇼 했다. 두 번 했다. 한복 터키에서 만든다. 터키 천으로 한다."
그러고 보니 그가 입은 한복의 소매나 깃은 흔히 구할 수 있는 부직포로 만들어졌다. 그 많은 전통의상 가운데 한복이 좋은 이유를 묻자 "편하다. 귀엽다. 예쁘다"고 답했다. 한복 디자이너로 성장하고 싶다는 큐브라는 '한복을 세계인이 예쁘고 편하게 입도록 다양한 스타일로 만들어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왕궁 수문장 교대식에서
외국인 수상자 2명 수문장으로 변신
그 옆에 어색하게 서 있던 팜(26, 베트남)은 한복 체험을 하고 기념 촬영을 하며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영어 통·번역가인 그는 한국 여행을 준비하다 KBS월드 채널에서 공모전 소식을 보곤 한국의 아름다운 면면을 서정적인 웹툰으로 표현했다.
"한국에 가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그렸어요. 당시에는 한국에 가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었는데 어느새 현실이 됐네요. 수상자들과 함께한 여행이 끝나면 홀로 한국을 좀 더 여행하려고 해요. 이번에 부산 오륙도 스카이워크만큼은 꼭 가보고 싶어요."
얼떨떨하기는 푸에르토리코에서 온 엘리자베스(27)도 마찬가지다. 대학에서 사회과학과 생물학을 전공하는 그는 취미 삼아 그린 그림을 제출해 엽서 부문에서 1등을 받았다. "사찰에서 한국의 고유한 멋이 전해져 불국사를 그렸다"는 그는 "한복이 불편하지만 예쁘다"고 말하며 수줍게 웃었다.
▷공모전 1등 수상자들이 10월 20일 수문장 으로 변신한 아벨(오른쪽 네 번째)과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마침내 오늘의 하이라이트, 수문장 교대식이 진행됐다. 수문장을 맡은 아벨과 루지아나는 진짜 수문장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잘해냈다. 30여 분간 지속된 교대식에서 두 수문장은 승정원 주서가 전달하는 암호를 받고, 교대를 위해 패를 인계하며 궁궐의 경비를 통솔했다. 이들이 의복을 벗고 돌아오자 다른 수상자들이 물개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수문장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다음 일정을 위해 서둘러 관광버스로 향하던 아벨이 엄지를 세우며 말했다.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글 · 이혜민 (위클리 공감 기자) 2015.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