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 선수들이 2016년 11월 3일(한국 시각) 2016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누르고 우승을 확정 지으며 ‘염소의 저주’에서 벗어난 기쁨을 나누고 있다.│연합
‘가을야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KBO 리그뿐 아니라 미국 메이저리그도 ‘가을의 전설’이라 불리는 포스트시즌 열기로 가득하다. 하지만 전설은 ‘저주’를 동반한다. 메이저리그에선 밤비노의 저주와 블랙삭스의 저주가 무려 86년, 88년 만에 ‘한’을 풀었다.
밤비노의 저주는 보스턴 레드삭스가 1920년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에 헐값(12만 5000달러)에 트레이드한 뒤 86년이나 이어진 징크스다. 레드삭스는 1901년 창단해 1903년부터 1918년까지 5번이나 우승하면서 메이저리그 명문구단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루스를 트레이드한 뒤 2004년 우승까지 86년 동안 정상에 오르지 못했고, 월드시리즈에서 4차례나 마지막 7차전에서 쓴잔을 마셨다. 반면 양키스는 그 후 27차례나 우승하며 명문구단이 됐다.
저주를 풀기 위한 노력도 눈물겨웠다. 2002년 2월에는 레드삭스의 열성 팬들이 보스턴 근교 윌리스 연못에서 루스가 보스턴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으로 뛰었던 1918년에 빠뜨린 것으로 알려진 피아노 인양 작업을 벌였다. 이 피아노를 다시 연주하면 저주가 풀릴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레드삭스는 마침내 2004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양키스에 3패 뒤 기적 같은 4연승을 거두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했고, 내친김에 월드시리즈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4전 전승을 거두고 86년 만에 지긋지긋한 저주에서 벗어났다. 당시 레드삭스 에이스 커트 실링의 피로 물든 ‘빨간 양말’이 화제를 낳았다. 오른쪽 발목 힘줄을 고정하는 수술을 받고 마운드에 오른 실링은 호투를 거듭하면서 양말이 피로 붉게 물들었다.
바꾼 캐릭터 인종차별 논란 불러
블랙삭스의 저주는 밤비노의 저주보다 2년 더 길었다. ‘블랙삭스 스캔들’로도 불리는 이 저주는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1919년 신시내티 레즈와 월드시리즈에서 당대 최고 스타 조 잭슨 등 주전 선수 8명이 도박사들과 짜고 일부러 져주기 경기를 한 역대 최악의 승부조작 사건이다.
화이트삭스는 그 후 오랜 세월 동안 부진의 늪에 빠졌고 1959년 간신히 월드시리즈에 올랐지만 LA 다저스에 2승 4패로 지며 ‘저주’를 푸는 데 실패했다. 미국프로농구(NBA) 명문 시카고 불스를 함께 소유하고 있던 제리 레인스도프 구단주는 “시카고 불스의 우승컵 6개를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1개와 바꾸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답답해했다. 화이트삭스도 마침내 2005년 월드시리즈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4전 전승을 거두고 무려 88년 만에 저주에서 벗어났다.
2016년 월드시리즈에선 ‘염소의 저주’ 시카고 컵스와 ‘와후 추장의 저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맞붙어 눈길을 끌었다.
염소의 저주는 컵스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던 1945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월드시리즈 4차전 때 홈구장인 리글리 필드에 염소를 데리고 입장하려던 샘 지아니스라는 관중이 입장을 거부당하자 “다시는 이곳에서 월드시리즈가 열리지 못할 것”이라고 독설을 퍼부은 데서 비롯됐다. 컵스는 당시 3승 4패로 우승이 좌절됐고, 2015년까지 월드시리즈 무대조차 밟지 못했다.
특히 2003년에는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플로리다 말린스에 3승 1패로 앞서다 3승 4패로 거짓말 같은 역전패를 당하며 땅을 쳤다. 특히 6차전 3-0으로 앞선 8회 1사 2루에서 컵스의 좌익수 모이세스 알루가 잡을 수 있었던 파울 타구를 관중이 먼저 낚아챘고, 컵스는 이후 무엇에 홀린 듯 8점을 주고 믿기지 않는 역전패를 당했다.
와후 추장의 저주는 와후 추장 캐릭터를 친근하게 만들기 위해 1951년 캐릭터의 피부색을 노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꾸고 표정도 익살스럽게 바꾸면서 비롯됐다. 바뀐 캐릭터는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고, 이후 인디언스 팬들은 와후 추장의 노여움 탓에 월드시리즈 정상에 오르지 못한다고 믿고 있다. 클리블랜드는 2014년부터 클리블랜드의 첫 글자 ‘C’를 딴 로고를 사용하고 와후 추장 캐릭터는 보조 로고로 사용했는데, 그 덕분인지 2016년 마침내 월드시리즈에 올랐다.
▶LA 다저스의 류현진이 2018년 10월 20일 내셔널리그 우승을 확정한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
1승 3패 벼랑에서 7차전 연장 8-7
한 팀의 저주는 풀릴 수밖에 없던 2016년 월드시리즈는 팬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컵스는 원정 1차전을 0-6으로 내줬지만 2차전을 5-1로 잡으며 1승 1패를 거둔 뒤 3차전 홈구장으로 돌아왔다. 2016년 10월 28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리글리 필드에서 지아니스의 독설 이후 무려 71년 만에 월드시리즈가 열린 것이다. 컵스는 3차전(0-1 패)과 4차전(2-7 패)을 내리 지며 1승 3패로 벼랑 끝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5차전에서 3-2로 이겨 리글리 필드에서 71년 만에 월드시리즈 승리를 맛본 뒤 원정 6차전도 잡아 3승 3패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7차전에서 그것도 연장 승부 끝에 8-7로 이겨 극적으로 염소의 저주에서 벗어났다. 컵스는 순종 2년이던 1908년 이후 무려 108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그런데 당시 컵스가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던 연장 10회 말 클리블랜드 홈구장 프로그레시브 필드에 난데없이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컵스에는 축복의 비였고, 인디언스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저주의 비였다.
인디언스는 올 시즌부터 모든 유니폼과 모자에서 와후 추장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올 시즌 치열한 와일드카드 경쟁 끝에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다.
올해 가장 주목받는 팀은 류현진의 소속팀 LA 다저스다. 다저스는 특별한 ‘저주’는 없지만 내셔널리그 최고 명문구단이면서도 31년 전인 1988년 우승이 마지막이다. 최근 2년 연속 월드시리즈에 나섰지만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에 잇따라 정상을 내줬다. 다저스는 올 시즌 내셔널리그 전체 승률 1위로 월드시리즈 진출 가능성이 충분하다. 류현진이 있기에 한국 팬들에겐 더 기대되는 ‘가을의 전설’이다.
김동훈_ <한겨레>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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