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10대의 현실엔 흉흉한 일들이 많다. 앞뒤로는 입시에 치이고, 좌우로는 관계에 고립된 아이들을 보면 이들의 앞날과 나라의 미래가 함께 염려된다. 하지만 알려진 일들이 전부는 아니다. 서로 돕고 함께 웃으며 활기찬 한때를 보내는 아이들도 있다.
경기 남양주에 있는 동화고등학교에 들어서면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는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 1교시가 시작되기 전인 이른 아침에는 창밖으로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동화고는 2015년부터 청소년 단원으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활동 중이다. 처음에는 동아리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예술중점교육을 받는 ‘음악중점학급’으로 성장했다.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김상래·장성환·서경화·박성수 음악교사는 “얼마나 멋지게 연주하느냐보다 중요한 건 서로 신뢰하고 단합하는 일”이라고 했다. 입시에 치우친 교육이 아니라 인성을 다듬는 교육을 향한 바람을 오케스트라에 담았다.
▼ 청소년 희망이 있습니다
음악이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아이들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오케스트라를 통해 화합과 존중을 배운 아이들은 태도가 달라집니다. 꿈이 없던 아이가 오케스트라를 하면서 ‘음악 전공’을 꿈꾸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학습성취도만큼 중요한 게 인성이라고 믿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좋은 그릇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케스트라를 하면서 악기를 처음 접해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악기를 기증 받아서 아이들이 배우는 데 어려움이 장애가 없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의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예술 분야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을 위한 공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런 교육을 통해 ‘예술’이 예고생이나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알아가길 바랍니다. 실제로 오케스트라로 음악의 즐거움을 알게 된 아이들은 재능기부를 통해 다문화 가정의 더 어린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청소년의 일탈이나 사고 소식에만 집중하지 않고, 아이들이 보여주는 밝고 희망찬 모습에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이승구 교장
◀ 다양한 예체능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 많았으면
신입생 환영음악회에서 선배들이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는 걸 보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어릴 때 바이올린을 했는데, 크면서 마음을 접었거든요. 오케스트라를 시작하면서 꿈을 되찾은 기분이에요. 가을음악회에서는 함께 합주를 하고 박수를 받는데 전율을 느꼈어요. 친구들과 ‘같이하는 즐거움’이 뭔지도 알게 됐고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입시가 고민되었어요. 오케스트라를 시작하면서는 ‘시간을 뺏기지 않을까’ 고민도 했고요. 지금은 공부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악기를 연주하거나 음악을 들어요. 음악의 순기능을 분명히 느껴요. 입시 중심의 교육을 받느라 음악 쪽은 아예 접해보지도 못하는 제 또래 친구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진로를 정하기 전에 다양한 예체능을 경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윤수연(18) 바이올린
◀ 예술에 대한 선입견이 깨졌으면 좋겠어요
제 연주를 보고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걸 봤을 때 제일 뿌듯했어요. 그래서 연습하는 게 힘들기보다는 행복해요. 원하는 걸 하고 있다는 기쁨이 있거든요. 사실 처음엔 습관을 고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저희에게 악기를 가르쳐주시는 선생님들도 재능기부로 강의를 해주시는데 선생님 말씀을 듣고 하나씩 고쳐나가다 보니 소리가 더 좋아지더라고요. 오케스트라를 하면 다른 친구들이 하는 것도 듣게 되는데, 들으면서 소리를 고치고 맞춰가는 것도 재미있어요. 고등학교에 들어오기 전의 저처럼 음악이나 예술이 멀게 느껴지는 친구들도 있을 텐데, 그런 친구들도 예술 분야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선입견을 깰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해요.
이의현(18) 트롬본/바순
▲ ‘공동체’가 뭔지를 배웠어요
클라리넷은 불기가 쉽지 않아요. 하지만 저음부터 고음까지 풍성한 소리를 낼 수 있어서 좋아요. 다 같이 연주하는 건데, 틀리고 싶지 않아서 혼자 연습을 정말 많이 했어요. 오케스트라를 하면서는 ‘공동체’가 뭔지를 배울 수 있었어요. 저는 실용음악 쪽에 관심이 많아서 보컬 전공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오케스트라 활동이 제 전공 공부에도 도움이 돼요. 실용음악만 공부하다 보면, 클래식 쪽은 배울 기회가 없거든요. 전공 공부를 하다가 받는 스트레스도 오케스트라를 통해서 풀 수 있고요. 저처럼 음악을 전공하려는 친구들은 음악에 대해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싶은데, 과외나 사교육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전문적인 지식을 배울 수 있는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이 생기면 좋겠어요.
이향서(18) 클라리넷
▲ 멘탈과 감성을 보듬을 수 있는 곳이 필요해요
처음에 악보를 받으면 ‘우리가 이걸 해낼 수 있을까’ 싶어요. 그런데 같이 연습하고 합주를 하다 보면 어느새 하나의 음악으로 조화를 이루어갑니다. 혼자서 연습할 때는 느낄 수 없는 감동이 있어요. 그러다 관객 앞에서 연주를 하게 되면 다 같이 뭔가를 해낸 느낌이 들죠. 오케스트라를 하면서 배운 점도 많아요. 호른은 흔히 접해볼 수 있는 악기가 아니라서 다른 악기를 배울 때와는 다른 보람이 있어요. 사춘기엔 감수성이 예민한데 그런 스트레스나 감정의 기복을 악기로 풀어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요. 멘탈이나 감성에는 음악이 도움이 많이 돼요. 좋은 공연을 보고 싶은 생각도 드는데, 접해볼 기회가 많지 않아요. 청소년기부터 다양한 음악을 경험해볼 수 있도록 청소년을 위한 관람 프로그램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해요.
윤명원(18) 호른/바이올린
▼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를 하고 나면 다 함께 뒤풀이에 가요. 고기뷔페에서 무한리필로 고기를 먹는데 그 시간이 행복해요. 함께 합주를 끝냈다는 보람도 있고, 그전에 하지 못했던 속 이야기도 나눌 수 있거든요.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끼리 이야기를 하다 보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중학교 때도 오케스트라 활동을 했어요. 그때 바순이라는 악기를 접하게 됐고요. 중저음의 매력이 있으면서 때로는 통통 튀는 소리도 낼 수 있어서 부는 재미가 있어요. 저는 오케스트라를 통해 음악이라는 ‘꿈’을 갖게 됐지만, 아직 꿈을 정하지 못한 친구들도 많아요. 그런 친구들이 하루빨리 꿈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뭘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알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이 필요해요. 진로를 찾기 위해 다방면의 체험을 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 말이에요.
이성재(18) 바순
◀ 다문화 가정 아이들도 악기를 마음껏 배울 수 있게 해주세요
처음에는 바이올린으로 시작했는데, 선배의 권유로 트럼펫을 하게 됐어요. 현악기를 다뤄보고 관악기도 다룰 수 있게 되니 음악을 하는 게 더 재미있어지더라고요. 1년에 네 번 음악회를 하는데 그때마다 실력이 느는 느낌이 들어요. 부모님도 제가 음악 하는 걸 좋아하세요. 방학에는 여름캠프로 다문화 가정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쳐주고 함께 연주했어요. 제가 배운 걸 다시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었어요. 한 번만 만나는 게 아니라 매년 만나기로 약속했어요. 아이들이 마음껏 음악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음악을 하다 보니 관심이 더 커져요. 학교에서뿐 아니라 음악에 대한 전문지식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송하늘(18) 트럼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