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4일 오후 4시 경기 수원화성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어두워지기 전에 5743m 길이의 화성 둘레를 걸으려는 시민들과 추억을 만들기 위해 찾아온 관광객들이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수원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수원화성은 우리나라 성곽 유적의 백미 중 하나다.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화성은 정조 18년(1794) 2월에 시작해 2년 6개월 만에 완공했다. 당대의 최신 건축술이 총동원된 공사였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수원화성은 전통문화의 중심지로 조금씩 탈바꿈하고 있다. 한옥과 전통공예 전시 시설도 눈에 띄게 늘었다. 오랜 역사에서 시작된 문화의 힘은 현 세대 작가들에게 다양한 창작 욕구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공예인들이 화성으로 모여들고 있다.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공예인들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 자연스럽게 옛 느낌이 묻어나는 곳
수원화성은 옛것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에요. 화성에 위치한 나혜석 생가 터를 찍으면서 자연스럽게 이곳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화성 축조 과정에서 정조 대왕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도 공부했죠. 좋은 문화콘텐츠를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마음에서 촬영하고 있어요. 제 사진을 보고 이곳을 방문하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고, 이미 몇 번 방문했는데도 미처 몰랐던 문화유산이 있다는 것을 알고 다시 찾겠다는 사람도 있어요. 인근에서 쑥떡전문점을 하고 있는데, 시간이 날 때마다 지역 문화유산을 알리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구석완(52) 지역 사진작가
◀ 한국적 정서로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져야
바느질을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어요. 어머니가 재봉틀로 옷을 만들고 집을 꾸미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명인이 되고 싶다는 로망을 갖게 되었죠. 요즘은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재봉틀을 이용해 작업해요. 퀼트, 계량한복 등을 만드는데 마음속 한국적 정서를 표현하려 노력 중이에요. 서양의 화려한 섬유 못지않게 전통한지가 갖고 있는 매력이 있는데, 이러한 한국적 느낌을 살리려고 해요. 공예라는 것이 전통도 있지만, 전통과 현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분들이 이곳에 와서 함께 누리고 발전시키면 좋겠어요.
조태경(46) 섬유작가
▼ 한복의 ‘편안함’이 전통의 느낌
우연히 화성에 들렀다가 여러 명인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름다운 길과 한옥마을을 보고 이곳에서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어린 시절부터 바느질을 좋아했어요. 바늘만 잡으면 마음이 편해졌거든요. 한복은 그 자체로 ‘편안함’입니다. 한복을 갖춰 입으면 자세가 달라져요. 여유로워지고요. 끈으로 접어서 입는 사폭바지를 떠올려보면, 얼마나 한복이 편한지 알 수 있어요. 전통이 발전하려면 지원을 해줘야 해요. 공예인들이 부담 없이 창작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들의 장기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요.
이채휴(58) 한복 전통복식 작가
▲ 화성에서 세계적 명품 나와야
그 옛날 정조대왕이 백성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느끼고 있어요. 남원 사람으로 전주한옥마을을 보면서 자라서 그런지 화성이 주는 매력에 자연스럽게 이끌려서 5년 전에 이곳에 터를 잡았어요. 정조대왕의 그림과 글씨에 자수를 놓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옛날에는 시집갈 때 병풍 같은 자수 작품을 가져갔잖아요. 여인들의 미적 감각이 녹아 있는 예술이 자수입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자수를 자연스럽게 익히고 사용했어요. 세계적인 명품이 이곳 화성에서 태어나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일합니다.
유숙자(61) 전통자수 명인
▲ 다양한 장르가 융합해야 공예 발전
이곳 토박이로, 수원화성까지 걸어올 수 있는 곳에 살았죠. 쉐도우박스는 16세기 종이를 오려 붙여서 가구나 작은 소품 등을 장식하는 ‘데쿠파주(decoupage)’에서 시작했어요. 주로 귀족들의 취미였죠. 종이로 2~3차원의 작품을 만드는 것인데, 수원화성의 모습을 이러한 기법으로 구현해보려고 해요. 전통을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장르를 융합하는 것이죠. 공예 장르가 많이 침체돼 있어요. 명맥 유지를 걱정할 정도죠. 계속 발전할 수 있도록 저부터 노력할 생각입니다.
이성범(30) 쉐도우박스 지도사범
▼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도자’ 공예
요즘은 도자가 장신구로서도 생활 깊숙히 자리 잡고 있어요. 5년 전부터 이곳을 기웃거리다, 수원의 인사동 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작업실을 찾았어요. 경주를 가보면 누구나 문화적 힘을 몸으로 느껴요. 그런 힘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작품활동에 집중하게 되죠. 수원화성은 이러한 힘이 있어요. 요즘 카페가 늘고 있는데, 이러다 월세가 너무 오르지 않을까 걱정스러워요. 문화적 토양이 있어야 사람들이 많이 찾는데, 경제적 문제로 작가들이 떠나면 조성된 문화가 사라져버려요.
김경희(47) 도자 장신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