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일, 전 세계의 시선이 싱가포르에 쏠렸다. 북한과 미국의 첫 정상회담을 지켜보기 위해서다. 말 그대로 ‘세기의 이벤트’였다. 북미의 갈등은 70년간 켜켜이 쌓여왔고 북핵 위기가 촉발된 30년간 평행선을 달려왔다. 몇 달 전만 해도 서로를 향한 위협은 최고조에 달했던 터였다. 그런데 180도 태세 전환을 취하며 대화를 한다니. 북미의 적대관계 종식은 냉전의 마지막 변곡점을 의미하기도 했다.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양측은 수개월간 실무회담을 진행하며 역사적인 만남에 대비해왔다. 회담 장소로 지정된 싱가포르는 즉각 환영의사를 밝혔고 회담을 위해 161억 원을 부담했다. 회담장 일대는 3000여 명의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만남은 12초의 악수로 시작됐다. 70년 세월의 해묵은 갈등을 청산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맞잡은 서로의 손이었다. ⓒ연합
한반도 비핵화·북한 안전보장 등 합의
오전 9시 4분(현지 시간), 마침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모습을 나타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장 차림에 붉은 넥타이를 맸고 김 위원장은 인민복 차림으로 등장했다. 국제무대에 등장 경험이 적은 김 위원장은 다소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두 정상은 곧바로 악수를 나눴다. 12초간의 악수가 70년의 갈등을 녹이는 첫 불씨로 작용했다. 그 뒤로는 성조기와 인공기가 여섯 개씩 나란히 걸려 북미의 6월 12일 만남을 기념했다.
북미 정상은 바로 단독회담에 돌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이 성공적일 것”이며 “훌륭한 관계를 맺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호의를 나타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여기까지 오는 길이 쉽지 않았다”며 “우리의 발목을 잡은 과거가 있었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고 진솔하게 화답했다. 두 정상은 통역만 대동한 채 38분간 대화를 이어갔다. 굳어 있던 표정은 한결 자연스러워졌고 확대회담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어깨, 등에 손을 올리는 등 가벼운 스킨십도 건넸다.
확대회담에는 북미 정상 외에 실무진이 함께했다. 미국 측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켈리 비서실장이, 북한 측은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리수용 국제부장, 리용호 외무상이 배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는데 함께 협력해 성공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훌륭한 출발을 한 오늘을 기회로 해서 함께 거대한 사업을 시작해볼 결심은 서 있다”며 각오를 내비쳤다.
▶ 북미 정상이 업무 오찬을 마친 뒤 통역없이 호텔 내 정원을 산책하며 둘만의 시간을 갖고 있다. ⓒ연합
▶ 단독회담에 앞서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의 발목을 잡은 과거가 있었고 또 그릇된 편견과 관행이 때로는 눈과 귀를 가리기도 했는데 우리는 모든 것을 이겨내고이 자리까지 왔다”고 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엄지척’을 해보였다. ⓒ연합
▶ 업무 오찬은 서양식, 현지식, 한식이 조화된 메뉴가 제공됐다. ⓒ연합
북미 정상은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기로 뜻을 모으고 공동성명을 작성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문서는 굉장히 포괄적 문서”라고 소개하며 “양국 모두가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 문건에 서명하게 된다”며 “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두 정상은 악수를 나누고 서명했다. 북미 정상이 공동성명을 발표하기까지 70년이 걸렸다. 반목의 세월 동안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별한 관계가 오늘 시작됐다. 누가 기대하고 예측했던 것보다 좋은 만남과 결과가 이어질 것”이라면서 김 위원장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공동성명 전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안전보장을 제공하기로 약속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명시했다. 북미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판문점 선언에 입각한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노력 ▲6·25전쟁 전사자 유해 수습·송환 등 4개 항에 합의했다. 고위급 관리의 후속 협상도 이른 시일에 개최하기로 했다.
공식 회담 일정이 끝난 후 트럼프 대통령은 단독 기자회견을 가졌다. 회견에 앞서 “소수의 사람만이 역사를 바꾸는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4분 30초 분량의 영상이 상영됐다. 4·27 남북정상회담 장면, 아름다운 한반도 풍경, 발전된 경제 도시 등과 미사일 발사 모습, 비무장지대 모습이 교차로 나타나며 변화한 북한의 미래를 암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영상을 김 위원장에 직접 보여줬는데 아주 좋은 반응이었다”라고 전했다.
“완전한 비핵화, 더 이상 명확할 수 없다”
기자회견은 한 시간 남짓 진행됐다. 가장 큰 관심사는 북한의 비핵화 실천의지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더 이상 명확하게 말할 순 없다. 서로 안전보장에 대해 대화를 나눴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문안에 포함시켰다”고 했다. 또 “(김 위원장을) 신뢰하지 않았다면 서명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북한이 이미 유일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했고 공동성명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쇄도 약속했다”고 북한의 약속 이행을 기대했다. 핵문제의 진전을 이룰 때까지 경제 제재가 지속될 것이란 입장도 더했다. 평화협정과 관련해서는 “한국과 중국이 참여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질문에서 “한미연합훈련(워게임)을 중단할 것”이라며 “그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비용을 줄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현재 북미 간 논의에 포함돼 있지 않으나 어느 시점에 그렇게 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소 대 한반도 안보 비용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여기에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질 경우 한미연합훈련 중단 문제도 검토할 수 있다는 중장기적 계획을 밝힌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 여하에 따라 미국도 그에 상응하는 단계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동안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지난 5월 16일 예정됐던 남북고위급회담을 연기한 것도 한미연합훈련 반발에 따른 것이었다.
이와 관련 문재인 대통령은 6월 14일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북한이 진정성 있게 비핵화 조치를 실천하고 적대관계 해소를 위한 남북 간, 북미 간 성실한 대화가 지속된다면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상호 신뢰구축 정신에 따라 대북 군사적 압박에 유연한 변화가 필요하며 한미연합훈련에 대해서도 신중한 검토를 하겠다”고 밝혔다.
2차 북미정상회담 가능성도 제기됐다. 북미는 이제 평화 여정의 첫발을 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는 과정’이며 정상회담을 수차례 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공동성명을 포괄적 합의라고 칭한 것도 추가 회담을 진행하며 의견을 조율하고 실질적인 결과를 이뤄가려는 의중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정 시점, 적절한 시기에 (평양에) 갈 것”이라며 “나 역시 적절한 시기에 김 위원장을 백악관에 초청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김 위원장도 (초청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한편 한미 실무진 사이의 접촉도 신속히 이뤄졌다. 북미정상회담이 공식 종료된 직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통화했다.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북미정상회담의 주요 결과를 전하고 향후 한미 협력방안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 강 장관은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축하하고 정상회담 종료 직후 회담 결과를 신속하게 공유해준 데에 사의를 표했다. 양국 장관은 북미정상회담 성과를 바탕으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 진전을 위해 한미 외교당국 간 긴밀한 공조와 소통을 더욱 강화해나가기로 했으며 6월 14일에는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을 진행했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을 갖고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뉴시스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
도널드 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첫 역사적인 회담을 개최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과 북한의 새로운 관계 수립과 한반도의 항구적이고 견고한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한 사안들을 주제로 포괄적이고 심층적이며 진지한 방식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안전보장을 제공하기로 약속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약속을 재확인했다.
새로운 북미관계를 수립하는 것이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 번영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고, 상호 신뢰 구축이 한반도 비핵화를 증진할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아래와 같은 합의사항을 선언한다.
1. 미국과 북한은 평화와 번영을 위한 양국 국민의 바람에 맞춰 미국과 북한의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로 약속한다.
2. 양국은 한반도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
3.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며, 북한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
4. 미국과 북한은 신원이 이미 확인된 전쟁포로·전쟁실종자들의 유해를 즉각 송환하는 것을 포함해 전쟁포로·전쟁실종자들의 유해 수습을 약속한다.
역사상 처음으로 이뤄진 북미정상회담이 거대한 중요성을 지닌 획기적인 사건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북미 간 수십 년의 긴장과 적대행위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공동성명에 적시된 사항들을 완전하고 신속하게 이행하기로 했다. 미국과 북한은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를 이행하기 위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관련한 북한 고위급 관리가 주도하는 후속 협상을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하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미관계의 발전,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 번영, 안전을 위해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서
※미국 측 발표문 번역
선수현│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