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나눔 장기기증이 존중받는 사회로”
손선영 장기이식코디네이터새벽의 정적을 가르며 전화벨이 울린다. 뇌사추정자가 발생했다는 신호다. 누군가에게는 가장 슬픈 상실의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간절한 희망의 순간이 된다. 망설일 여유는 없다. 수십 개의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빠르면 네 시간, 한 생명의 마지막 선택이 또 다른 생명의 시작으로 이어지기까지 모든 타이밍이 맞물려야 한다. 손선영 강남세브란스병원 장기이식코디네이터(대한장기이식코디네이터협회장)는 아이스박스를 챙겨 곧장 구급차에 오른다. 기증된 장기가 제시간에 수술실에 도착할 수 있도록, 장기기증과 이식에 필요한 절차 전반을 현장에서 책임지는 일은 그의 몫이다. 장기이식코디네이터는 1999년 제정된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식 의료기관에 배치가 의무화됐다. 법은 장기 등의 적출이식을 위한 상담연락 업무 등을 담당하는 전담 간호사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장기 하나가 이식되기까지는 구득팀(장기를 확보하고 이식 병원까지 전달하는 팀)과 응급실, 검사실, 마취과, 간호부, 이식 의사 등 약 8개 팀이 동시에 움직인다. 여기에 법적행정 절차가 더해지는 만큼 이를 총괄해 조율하는 장기이식코디네이터의 역할이 필요하다. 기증자의 유가족을 만나 상실의 시간을 함께 견디는 일 또한 이들의 몫이다. 정부가 제1차 장기등 기증 및 이식에 관한 종합계획(2026~2030)에서 기증자와 유가족에 대한 사회적 예우 강화를 세부과제로 내건 것도 이러한 현장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손 코디네이터가 현장에서 다투는 것은 골든타임만이 아니다. 매번 뇌사 진단을 둘러싼 가족의 혼란과 슬픔,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 한가운데에 선다. 그 경계에서 기증자의 마지막 선택이 왜곡되지 않도록, 또 수혜자의 생존이 누군가의 죽음을 전제로 소비되지 않도록 균형을 지켜왔다. 2007년부터 장기이식 현장을 지켜온 그는 충분한 인력 확보와 명확한 역할 분리, 기증자와 유가족을 끝까지 책임지는 제도적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부가 장기기증이식 전반을 포괄하는 첫 종합대책을 내놓은 지금, 현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해온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장기이식코디네이터는 어떤 일을 하나요?이식대기자의 평소 건강 상태를 관리하고 장기가 배정되면 기증부터 이송, 수술까지 모든 과정을 연결합니다. 장기기증과 이식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법적행정적 절차를 조정하는 역할이죠. 장기기증에는 뇌사 기증과 사후 기증, 살아 있는 사람 간의 기증이 있는데 장기이식코디네이터는 이 모든 유형을 다룹니다. 병원마다 역할의 범위는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핵심은 같습니다. 여러 팀과 절차가 한 번에 움직이는 현장에서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장기구득코디네이터도 있다고요.장기구득코디네이터는 한국장기조직기증원(KODA)에 소속돼 뇌사기증자와 그 가족을 전담합니다. 장기이식코디네이터는 주로 이식 의료기관(병원) 소속으로 이식대기자를 관리하고요. 일부 병원은 뇌사판정대상자관리전문기관(HOPO)으로 지정돼 한 명의 코디네이터가 뇌사자 관리와 대기자 관리를 함께 맡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만 기증자와 수혜자를 동시에 담당할 경우 이해충돌 우려가 있어 현재는 HOPO 병원에서도 두 역할을 분리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의학 드라마에서는 장기이식이 촌각을 다투는 현장으로 그려지는데 실제로 어떤가요?더 숨 가쁘게 돌아갑니다. 장기를 적출하는 순간부터 혈액 공급이 끊기면서 허혈 시간이 시작되는데 이 구간을 얼마나 줄이느냐가 예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뇌사자가 발생하면 곧바로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KONOS)을 통한 장기 배분 절차가 시작되고, 장기가 병원에 배정되는 순간부터 7~8개 팀이 동시에 가동됩니다. 코디네이터는 허혈을 최소화하도록 동선을 설계하고 전체 과정을 분 단위, 때로는 초 단위로 맞춰야 합니다. 장기를 구득하러 가야 하는 곳이 멀면 항공편을 확보하거나 다른 이동수단을 찾아야 하고요. 불가항력적인 상황도 있을 것 같은데요.그래도 해내야 합니다. 우리 사전에 안 된다는 없어요. 장기마다 허용되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도 많지 않습니다. 심장은 4시간, 폐는 6~8시간, 간은 12시간, 신장은 하루 정도가 한계입니다. 심장이나 폐 구득팀은 시간 여유가 없어 헬기를 띄우는 상황도 종종 생깁니다. 이 일을 시작하고 5년 정도는 전화벨만 울려도 가슴이 철렁했어요. 내가 이 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까,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죠. 경험이 쌓이면서 이제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는 마음으로 움직입니다. 24시간 365일 콜센터처럼요. 뇌사자 가족에게 장기기증 이야기를 꺼내는 일도 쉽지 않겠습니다.보호자가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돼 있는지부터 먼저 살핍니다. 지금이 정보를 들을 수 있는 상태인지, 충분히 생각할 여유가 있는지, 가족 관계는 어땠는지 확인합니다. 가능하다면 최대한 시간을 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장기기증에 대한 정보를 들어보실 의향이 있는지를 묻고 원하지 않으면 그걸로 멈춥니다. 마음이 바뀌거나 더 알고 싶어지면 언제든 이야기해 달라 하고요. 실제로 보호자와 일주일 가까이 면담을 이어가며 결정을 기다린 적도 있습니다. 처음 보호자 반응은 대체로 싫다거나 살아나지 않을까요?예요. 하지만 환자가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해두었거나 가족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눈 경우에는 분위기가 확실히 다릅니다. 보호자가 먼저 기증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부가 기증희망등록기관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본인이 희망등록을 했더라도 실제 기증 상황이 오면 가족의 동의가 필수라고요.법적으로는 선순위 가족 1인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도 희망등록을 해두면 가족이 반대하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기증희망등록이 중요한 이유죠. 반대로 희망등록이 없는 상태에서 가족 동의를 받아 진행하는 것을 추정 동의라고 합니다. 윤리적으로 보면 내 몸에 대한 결정은 본인이 하는 게 맞지만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상태에서는 가족이 그 뜻을 대변할 수 있다고 법은 보고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그만큼 환자의 의사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로 선순위 가족 동의를 인정하는 겁니다. 종합계획에 연명의료 중단자의 순환정지 후 장기기증(DCD) 법제화도 담겼습니다. DCD는 어떤 방식인가요?뇌사기증은 심장은 뛰고 있지만 뇌 기능이 완전히 멈춘 상태에서 이뤄집니다. 뇌가 더 이상 몸을 조절하지 못해 결국 사망에 이르는 상태죠. DCD는 조금 다릅니다. 연명치료를 받지 않기로 결정해 사망이 임박한 환자가 장기기증에 동의한 경우입니다. 인공호흡기나 약물 같은 연명장치를 중단한 뒤 심장박동과 호흡이 일정 시간 동안 돌아오지 않으면 사망이 선언되고 그 이후에 장기를 기증하는 방식입니다. 전 세계 장기이식 환우들이 모여 이식 이후의 건강한 삶을 확인하고 교류하는 세계이식인체육대회가 2년마다 열린다. 기증자와 유가족을 기리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공인을 받은 이 대회에 손 코디네이터는 두 차례 참석했다. 그는 2017년 스페인 말라가에서 열린 대회에서 목격한 장면을 잊지 못한다. 미국에서 날아온 유가족이 우리 아이는 일곱 명을 살렸다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환하게 웃으며 걷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이런 캠페인이 열리는 시기에는 장기기증 희망등록도 함께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그는 가족이 장기기증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자부심으로 말할 수 있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증자와 유가족에 대한 사회적 예우는 왜 중요한가요?우리나라에서는 장기기증을 하면 장제비 지원이 있는데 이게 오히려 오해를 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유가족이 돈 받고 판 것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하죠. 하지만 장제비는 거래의 대가가 아닙니다. 위로금이나 부의금과 비슷한 성격이에요. 이런 왜곡된 시선이 존재하는 한 유가족은 또 다른 상처를 감당해야 합니다. 교통사고로 딸을 잃고 장기기증을 결정한 한 아버지는 기증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딸의 선택이 누군가의 삶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그분을 붙들어줬다는 겁니다. 지금은 생명의소리합창단(기증자 유가족, 이식 수혜자, 기증희망 서약자가 함께 노래하는 모임)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계세요. 사회가 기증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유가족의 슬픔은 고립이 될 수도, 의미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기증자 가족과 수혜자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이 일은 윤리관이 정말 명확해야 합니다. 이해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고, 때로는 제가 두 얼굴을 가진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유가족과 함께 울다가 다른 한쪽에서는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라는 말을 전해야 하는 순간이 오거든요. 그럴수록 단어 하나, 표현 하나에도 더 신중해집니다. 이식이 단순히 기쁜 소식으로만 전달되지 않도록 그 이면에 담긴 무게까지 함께 전하는 것 또한 저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요?사회 전체의 인식이 함께 바뀌어야 합니다. 예전에는 내가 누군가를 도우면 언젠가 그 도움이 돌아올 수 있다는 사회적 믿음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 믿음이 점점 약해지고 있어요. 제도는 길을 만들어줄 뿐, 길을 실제로 걷게 하는 건 국민 인식입니다. 장기기증의 의미를 사회가 함께 이해하고 존중하도록 만드는 지속적인 대국민 인식 개선 캠페인이 필요합니다. 이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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