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감자탕집 오픈런·빵지순례… '보는 관광’에서 ‘체험하는 관광’으로
영하의 찬 공기가 거리를 감싼 1월 말, 얼굴을 파고드는 칼바람 속에서도 서울 성수동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지하철 2호선 성수역 4번 출구를 나서자 기다란 대기행렬이 눈에 들어왔다. 성수동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한 감자탕집 앞이었다. 두툼한 패딩과 목도리로 중무장한 사람들 속 외국인이 눈에 많이 띄었다.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소문난 감자탕집을 찾은 외국인들의 동선을 따라가 보았다. 외국인 관광객이 들르는 곳은 대체로 비슷했다. 누리소통망(SNS)에서 자주 언급되는 식당, 유명 디저트 카페, 팝업스토어, 드러그스토어가 주요 목적지였다. 한곳에 오래 머무르기보다 잠시 들렀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식이었다. 휴대전화 화면을 확인하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다. 성수동을 누비며 지도 애플리케이션과 SNS에 저장해둔 장소를 도장깨기 하듯 찾아다니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주변 직장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한국인의 일상 한복판에서 함께 섞여 바쁘게 이동했다. 관광객이 밀집한 골목 안쪽에 K-팝 스타를 모델로 내세운 향수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방문객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으로 보였다. 대부분 손에는 같은 가게를 들렀다 온 듯 똑같은 도넛 브랜드의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모든 상점이 붐비는 것은 아니었다.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은 주로 화장품 매장, 대형 플래그십 스토어로 향했다. 성수역 인근에 최근 문을 연 뷰티 특화 약국도 외국인 방문객으로 북적였다. 매장 안에는 영어일본어중국어 안내 문구가 빼곡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는 두바이쫀득쿠키도 쌓여 있었다. 화장품 진열대 앞에는 외국인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20대 일본인 여성이 주저 없이 화장품을 집어 들고는 한국 아이돌이 쓰는 제품이라 궁금했다며 유튜브에서 자주 봐서 금방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통 관광지 아닌 한국인 일상에 스며든 외국인 성수동이 K-뷰티 중심의 취향 소비 무대라면 명동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K-푸드의 성지다. 외국인 관광객은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간식을 쇼핑 바구니에 쓸어 담기 바빴다. 특히 아몬드와 땅콩 스낵으로 알려진 대형 브랜드 과자점은 관광객으로 북새통이었다. 명동 거리를 점령한 푸드 리어카 앞에도 장사진이었다. 붕어빵과 호떡 노점 앞에는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줄을 섰고 떡볶이와 어묵 꼬치를 손에 든 외국인도 자주 눈에 띄었다. K-마켓도 필수 코스. 관광객 필수 쇼핑템으로 꼽히는 바나나맛 우유가 종류별로 쌓여 있었다. 중국인 커플은 막걸리 진열대 앞에서 막걸리를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K-뷰티 플랫폼 올리브영 매장은 한국인지 외국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영어로 인사를 건넸고 손님도 외국인 비율이 훨씬 많아 보였다. 한쪽에 마련된 K-트렌드 존에서는 외국인 관광객이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한국식 화장법을 따라 해보고 있었다. 제품 판매를 넘어 K-뷰티 트렌드를 직접 경험하는 창구로 보였다. K-팝을 전면에 내세운 매장도 눈에 띄게 늘었다. K-팝 팬들 사이에서 성지로 통하는 굿즈숍 위드뮤에는 아이돌 그룹 응원봉이 줄지어 진열돼 있고 그 앞에서 외국인들이 기념사진을 남기느라 바빴다. 고가품 대신 실속취향 소비를성수동명동에서 관찰된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 풍경은 공식 데이터에서도 확인된다. 이들 지역은 외국인 관광객 선호도가 높은 대표 상권이다. 2025년 외래관광객조사 결과를 보면 홍대경복궁강남과 함께 1~3분기 기준 가장 좋았던 방문지 상위 5위권에 포함된 곳이다. 한국관광데이터랩이 2025년 글로벌 소셜 데이터를 기반으로 방한 여행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스테디 관심 지역으로 꼽혔다. 이들 지역의 공통점은 고가 소비보다 작고 반복적인 소비가 이어진다는 점이다. 한국관광데이터랩의 외국인 신용카드 결제 데이터(2018년~2025년 9월)에 따르면 방한 외래객의 쇼핑 방식은 2019년과 비교해 뚜렷한 변화를 보였다. 쇼핑 업종에서 건당 평균 지출액은 15만 원에서 12만 원으로 줄었지만 1인당 총 소비금액은 오히려 83% 급증했다. 단가가 낮아졌음에도 전체 지출이 증가한 배경으로는 구매 횟수 증가가 있다. 가성비 높은 중저가 상품을 여러 차례 나누어 사는 방식이 새로운 K-쇼핑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변화는 품목별 소비에서도 드러난다. 작고 가벼운 K-라이프 스타일 소품 소비가 빠르게 늘었다. 2025년 1~9월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뽑기(가챠)샵(142.0%), 문구(48.7%), 서점(39.9%) 소비가 큰폭으로 증가했다. 한국 문구 브랜드의 대표주자인 아트박스는 영종도(550.0%), 노량진(120.0%), 이수(325.0%) 등 공항과 교통 요충지, 로컬 상권을 가리지 않고 고른 성장세를 보였다. 인테리어 소품과 공예 분야에서도 종로 키네틱 아트(1000%), 서교동 뜨개용품(300.0%), 가회동 도자기(250.0%) 등 소비가 늘며 한국의 미적 취향과 수공예 감성을 체험하려는 수요가 확대됐다. 뷰티건강 제품 소비는 수년째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2018~2024년 연평균 19.1% 증가한 데 이어 2025년에는 40.4% 성장하며 K-뷰티와 K-헬스가 방한 여행의 핵심 소비 분야로 자리 잡았다. 주요 품목인 화장품(35%), 약국(67%), 건강식품(75%)이 모두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올리브영 역시 명동강남 같은 전통 상권뿐 아니라 성수연방(381%), 경복궁역(425%) 등 다양한 지역에서 외국인 소비가 빠르게 늘었다. 이에 대해 한국관광공사 김성은 관광데이터실장은 외국인의 쇼핑 소비가 일상 활용성과 개인 취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된 것은 관광 소비 구조에 중요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여행 목적 다양해지고 방한 경험 넓어졌다 이 같은 소비 변화는 방한 여행의 목적 자체가 다양해졌음을 보여준다. 한국관광데이터랩이 2024년 12월부터 2025년 11월까지 22개국의 소셜 데이터를 토대로 한국 여행 트렌드를 분석한 결과, 컬처푸드뷰티 등 다양한 형태의 K-콘텐츠가 방한 여행과 연관돼 나타났다. 한국 여행의 이유가 특정 콘텐츠에 한정되지 않고 일상취향경험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유튜브에서 조회수가 가장 높았던 여행 관련 콘텐츠는 K-컬처 체험이었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배경이 된 서울의 인기 스폿 공유, 한국에서 유행하는 셀카 촬영법, 한국 여행 중 K-뷰티 체험 영상 등이 상위에 올랐다. 방한 트렌드가 보는 여행에서 체험하는 여행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의 동기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좋아하는 한국 스타가 있는 나라를 찾는 것이 주요 계기였다면, 최근에는 콘서트 관람과 음악 페스티벌, 팬미팅 등 참여형 활동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축제이벤트 참여, 트렌디한 거리 탐방, DMZ 관광 등이 검색어 상위권에 오른 것도 같은 흐름이다. 특히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장면의 영향으로 한방의료센터 방문, 노래방 체험처럼 일상 밀착형 경험 수요도 함께 증가했다. K-푸드 역시 단순한 시식을 넘어 로컬 기반의 미식 경험으로 확장하고 있다. 길거리 음식, 빵지순례, 한국 간식 체험 같은 키워드가 검색 상위권에 오르며 음식 자체보다 현지의 일상과 문화를 함께 체험하려는 수요가 두드러진다. 국내 최초 미식관광 전문여행사 온고푸드의 최지아 대표는 과거에는 2박 3일 정도의 단기 체류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일주일 이상 중장기 체류가 확연히 늘고 재방문객도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뿐 아니라 속초설악산안동부산 등 지역 관광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며 자국에서 한식당 창업을 준비하거나 일상식으로 한식을 즐기기 위해 한식 쿠킹 클래스에 참여하는 외국인도 부쩍 많아졌다고 전했다. 미용실 방문, 네일 케어 같은 검색어가 꾸준히 상위권에 오르는 점은 K-뷰티에 대한 관심이 맞춤형 경험 소비로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뷰티 소비의 확산은 약국 소비 증가로 이어졌지만 목적은 치료보다 피부영양관리 등 일상형 웰니스에 가깝다. 의료 관광 확대와 소셜미디어를 통한 정보 확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관광 현장에서 포착된 변화는 정부가 제시한 2030년 방한 관광객 3000만 조기 달성 목표와도 맞닿아 있다. 관광은 수출과 내수를 동시에 견인하는 국가경제의 핵심 동력인 만큼 디지털 전환과 관광 수요 변화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요구된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2025년 12월 말 열린 관광의 날 기념식에서 영상 축사를 통해 K-컬처가 세계를 흔들고 있는 지금 성장의 흐름을 이어가면서 관광의 깊이를 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근하 기자 2025년 방한 외래관광객 수 1.68초마다 한 명씩, 1870만 명 넘어2025년 한국을 찾은 외래관광객 수는 역대 최다였던 2019년보다 120만 명 늘어난 187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시간으로 환산하면 약 1.68초마다 한 명꼴로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을 방문한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이 같은 성과는 주요 방한 시장의 특성과 소비 성향을 반영한 맞춤형 전략이 효과를 거둔 것으로 풀이된다. 방한 관광 부동의 1위 시장인 중국은 핵심 소비층인 20~40대 여성을 겨냥한 일상형 여행 홍보를 강화하고, 인센티브 단체관광과 중국 대학생 대상 배움여행 상품을 확대한 것이 주효했다. 그 결과 7~8월 방문객 수가 크게 늘었다. 대만 시장은 부산대구 등 지역 관광상품을 전면에 내세우고 K-푸드와 K-야구를 포함한 전방위 K-컬처 마케팅을 전개한 결과 전년 대비 27% 성장하며 역대 최다 방한객 수를 기록했다. 일본 시장에서는 20~30대 여성을 중심으로 재방문 수요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 그 결과 13년 만에 가장 많은(361만 명) 일본인 관광객이 한국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중동 시장은 K-컬처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바탕으로 국가별 선호 콘텐츠를 세분화해 공략했다. 현지 여행사와 글로벌 온라인여행사(OTA)의 협업 마케팅을 통해 전년 대비 11.8% 성장세를 보였다. 구미주대양주 시장은 신규 취항과 증편 노선을 적극 활용해 원거리 시장의 한계를 보완하며 14% 성장했다.
소셜 속 K-공감
K-공감 속의 이야기,
SNS에서 더 가까이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