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내현, ‘노점’, 1956, 종이에 채색, 267×210cm, MMCA│국립현대미술관
두 사람 이름 사이에 놓인 표시 하나로 이들의 관계 설정이 좌우될 때가 있다. ‘vs(versus)’와 ‘&(and)’가 그런 예다. 어떤 예술가 이름 사이에 vs가 있느냐, &가 있느냐에 따라 해석은 180도 달라진다. vs는 대결과 경쟁이라는 라이벌 의식을 풍긴다. 반면 &는 동등한 관계의 동반자라는 긍정적 분위기다. vs는 대립을 조장하지만 &는 상생과 협력을 드러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술계에 경쟁자의 예는 무수히 많다. 마찬가지로 훌륭한 동반자 관계도 많았다. 그럼에도 후대 호사가들은 동반자보다 경쟁자에 방점을 찍어 입방아에 올리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런 경쟁자 관계가 남녀 사이, 특히 부부라면 사정은 더욱 심각해진다. 흥밋거리로 조장된 경쟁자 관계의 승자(?)는 늘 남성이고,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는 쪽은 여성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럴 때 작품에 대한 평가 역시 객관적이지 못한 사례가 허다하다. 미술 분야에선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 오귀스트 로댕과 카미유 클로델, 그리고 앨프리드 스티글리츠(사진가)와 조지아 오키프 등이 대표적이다. 음악에선 슈만과 클라라 부부와 브람스의 관계가 그렇다.
대립과 경쟁 구도에선 어느 한쪽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기 마련이다. 세상이 조금씩 바뀌어가곤 있다지만 예술 분야에서 역사 서술은 여전히 공평치 못하다. 아직도 ‘서양/백인/남성 중심’의 관점에서 판단이 이뤄지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예술 작품에 대한 가치판단은 성별에 따라 우열이 정해지고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창작이나 감상 모든 면에서 다양성이 존중되고 자율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미술계에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긴 부부 작가 운보 김기창(1913~2001)과 우향 박내현(1920~1976)의 관계에서도 여전히 왜곡된 징후가 남아 있다.
▶박내현, ‘잊혀진 역사 속에서’, 1963, 종이에 채색, 150.5×135.5cm, 개인 소장
▶박내현, ‘영광’, 1966~67, 종이에 채색, 134×168cm, MMCA│국립현대미술관
운보 못지않게 한국화단 중심 작가로
박내현은 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활동한 선구적인 화가다. 한국화에 추상 기법을 도입하며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확립했지만 늘 남편 운보의 그늘에 가려졌다. 가부장제 시대, ‘청각장애를 지닌 천재화가 운보 김기창의 아내’라는 수식어가 족쇄처럼 그를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이런 선입견 때문에 박내현의 예술성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었다.
이 자리에서 우향이 운보보다 뛰어났다거나 더 좋은 작가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운보의 아내’라는 꼬리표를 떼어놓고 객관적으로 박내현의 예술을 재평가하자는 얘기다. 장애가 있는 남편의 아내, 네 자녀의 어머니, 그리고 작가로서 1인 3역을 충실히 수행한 박내현의 삶과 예술은 더 늦기 전에 재조명되어야 한다.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전통 일본화를 배운 박내현은 해방 후 한국적이고 현대적인 회화 방식을 모색했다. 그 노력의 성과는 1956년 대한미협전에 출품한 ‘이른 아침’과 국전 출품작 ‘노점’이 연이어 대통령상을 받으며 증명되었다. 박내현은 당시 동양화단의 주류 경향에서 벗어난 과감한 추상 형상으로 주목받으며, 운보 못지않게 한국 화단의 중심 작가로 입지를 굳혔다. 1967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여한 박내현은 이를 계기로 중남미 여러 나라를 여행한 뒤 홀로 뉴욕에 정착했다. 이때 큰딸이 프랫 대학원으로 유학 왔고, 박내현도 프랫 그래픽 아트센터에서 판화 공부를 시작했다.
▶박내현, ‘시간의 회상’, 1970~73, 종이에 에칭, 61×46cm, MMCA│국립현대미술관
‘삼중통역자’ 박내현의 삶과 예술
1974년 김기창과 유럽, 아프리카를 여행한 후 7년 만에 서울로 돌아온 박내현은 귀국과 동시에 ‘판화 개인전’을 열었다. 추상 동양화를 뛰어넘는 현대적이고 세계적인 감각의 판화 작품은 당시 한국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간암이 발병했고, 1976년 1월 5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그의 작품 세계가 더 널리 대중적으로 알려질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2020년은 박내현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때맞춰 그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에서 <박내현, 삼중통역자>가 2021년 1월 3일까지 열린다. 전시 제목 ‘삼중통역자’는 박내현이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일컫는 말이다. 미국 여행에서 박내현은 가이드의 영어 설명을 한국어로 해석해 다시 수화(手話)로 김기창에게 설명해주었는데, 그는 여행에 동행한 소설가 모윤숙에게 영어, 한국어, 수화를 넘나들며 언어 통역을 하는 자신을 ‘삼중통역자’ 같다고 말했다.
덕수궁 석조전 1~2층 네 개 전시장에 작품 130여 점과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전시된다. 관람을 위해선 국립현대미술관 누리집에서 온라인으로 예약해야 한다. 관람료는 무료지만 1000원(성인)짜리 덕수궁 입장표를 구입해야 한다. 이 전시는 2021년 1월 26일부터 5월 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순회 개최될 예정이다.
이준희_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겸임교수. 미술대학을 졸업했지만 창작에서 전향해 몇 년간 큐레이터로 일했고 미술 전문지 <월간미술> 기자로 입사해 편집장까지 맡아 18년 8개월 동안 근무했다. ‘저널리스트’로 불리는 것보다 여전히 아티스트에 가까운 ‘미술인’으로 불리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