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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는 일주일에 한 번, 월요일에 학교에 간다. 5월 말에 처음 등교했을 때는 한 반의 친구들이 모두 한 교실에 모여 수업했는데 몇 주 지나지 않아 홀수 번호와 짝수 번호로 나뉘어 각각 다른 요일에 등교하게 되었다.
짝꿍 없이 한 줄로, 번호 순서대로 앉아 수업하는 교실에서 아이는 뒷자리 친구(짝수 번호)와 겨우 몇 마디 나누며 우정을 만들어가던 중이었는데 짝수 번호 친구와 이별하게 된 것이다. 그 상황을 차근히 풀어 설명했을 때 아이는 “왜?”라고 여러 번 물어봤고 울상이 된 채 “학교가 더 재미없어졌다”고 했다. “그럼 ○○이는 학교 안 와?” 하고 물어서 “이제 ○○이는 화요일에 학교 가는 거야”라고 하자 “너무하네, 나쁘다” 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친구와 웃고 떠들고 소리 지르며 뛰어놀아야 할 나이에 아이는 대체로 집에서 혼자 지낸다. 그러다 보니 엄마나 아빠에게 놀아달라고 하거나 심심하다고 온몸을 비틀며 집 안을 배회하는 일이 많다. 마스크를 쓰고 동네 놀이터에 가기도 하고 근린공원에서 자전거도 타지만 어디에 가도 친구와 노는 일은 드물어서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의 나날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다. 나도 아이와 놀아주는 일에 한계를 느끼기도 하고 저 나이 때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아야 하는데 싶어서 안타깝다.
그런 생활이 몇 달째 이어지자 아이도 나름대로 혼자 노는 방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시끄러워서 방문을 열어보면 장난감 칼을 들고 무술 연습을 한다며 땀을 뻘뻘 흘리고 혼자서 가상의 상대와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수업 준비 때문에 식탁에 앉아 자료를 보고 있는데 조용해서 거실 쪽을 보니 색종이를 이어 붙인 뒤 그 위에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무얼 만드는지 궁금해서 묻고 싶었지만 방해가 될 것 같아 그대로 두었다. 나중에 슬쩍 보니 ‘캐릭터 설명서’라는 책을 만들고 있었다. 물론 몇 장 그리고 쓰다가 말았지만 아이는 무언가를 자꾸 시도해보았다.
어느 오후에는 무어라 말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 내다보니 아이가 장난감 기타를 어깨에 둘러멘 채 거실을 어슬렁거리며 말도 안 되는 자작곡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자작곡이라기보다는 자기가 아는 노래에서 시작해 아무렇게나 이어 붙인 노래로 넘어가는 식이었다. 연주에 심취한 얼굴로 기타 치는 흉내를 냈고 고개를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가사를 바꾸기도 하고 멜로디도 변형해가면서 난나나, 랄랄라, 뚜뚜루 같은 후렴구를 만들어 반복해서 불렀다.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나는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집에 텔레비전도 없는데 아이는 어디에서 기타 치는 보컬리스트의 모습을 보았을까.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 상상을 하며 노래를 부르는 걸까. 그 일에 얼마나 푹 빠졌는지 아이는 내가 보고 있는데도 의식하지 못한 채 한참 동안 세상에 아무도 없고 자기 혼자 있는 것 같은 얼굴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아이가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 건 가엾지만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니 일찌감치 혼자 노는 법을 터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어떤 순간은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고 친구가 제일 중요하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으로 들끓지만, 사람들은 인생의 꽤 많은 시간을 자기 자신과 단둘이 보내야 한다. 책을 읽고 어떤 인물과 문장에 빠지고, 음악을 들으며 어떤 감정이 생기고, 어떤 일을 겪은 뒤 무언가 그리고 싶다거나 쓰는 방식으로 심정을 표현하고 싶어지는 것. 마음이 복잡할 때 혼자 산책을 하거나 사색하면서 가라앉히는 것. 살면서 혼자 할 수 있는 이런 단순한 행동들이 인생을 꽤 풍요롭게 만든다. 그런데 주변에는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법, 혼자 즐겁게 노는 법을 몰라서 사는 게 힘든 사람들이 꽤 많다. 아이는 앞으로 친구들과 함께, 친구들 속에서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배워야겠지만 순서가 좀 바뀌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본다.
서유미_ 소설가. 2007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두 권의 소설집과 여섯 권의 장편소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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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