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안보고 쓰는 일기

2020.05.18 최신호 보기



초등학생 때는 일기 쓰는 게 싫었다. 매일 써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점 때문에 숙제처럼 느껴졌다. 초등학교 다닐 때의 나는 숙제라면 그게 무엇이든 한숨부터 내쉬며 거부반응을 보이는 학생이었다. 어떻게든 미루다가 잠들기 전이나 주말이 끝나갈 때쯤 몰아서 해치우는 타입이었다.
다른 숙제보다 일기 쓰기가 유난히 싫었는데 그 이유는 솔직하게 쓰라고 해놓고 내용을 평가하기 때문이었고, 더 근본적인 건 초등학생 때 나는 ‘나 자신’이나 내가 보낸 하루에 대해 기록하거나 기억하고 싶은 욕망이 별로 없어서였다. 일기를 미루는 버릇은 한 번의 방학이 지나고 나면 무섭고도 정직한 방식으로 대가를 치르게 만들었다. 나는 억지로 기억을 더듬어 있던 일을 각색하고 없던 일을 만들어가며 30일 치의 일기를 며칠 만에 써 내려갔다. 당연히 일기 쓰는 게 힘들고 재미없고 곤혹스러웠다.
스스로 일기장을 사서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중학생이 된 뒤부터였다. 일단 일기장 검사가 사라져서 아무도 일기를 쓰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기를 쓴다고 하면 이제 일기는 됐으니 그 시간에 공부하라는 주문이 쏟아졌다. 일기를 쓰지 말라고 하니 청개구리처럼 일기 쓰는 일이 재미있게 느껴졌고 사춘기를 겪으면서 기억과 추억에 대한 감각이 생겨났다. 한마디로 나와 내가 보낸 하루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졌고 기록해두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때부터 새해를 맞이하며 다이어리를 장만하는 게 작은 설렘이자 연례행사가 되었다. 주로 잠들기 전에 썼지만 기억할 만한 일이 생기면 하루 중 아무 때나 일기장을 펴고 끄적거렸다. 검사나 평가와 상관없는 일기 쓰기는 나를 가장 편하게 만드는 행위이자 은밀한 기쁨이 되었다. 중학생 때부터 시작된 일기 쓰기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매일 쓴다’보다 ‘나의 일상을 기록하고 나에게 집중한다’에 방점을 찍고 있다.
글쓰기와 관련된 얘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문장으로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묻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책 읽기와 일기 쓰기를 권한다. 사람들은 책 읽기는 쉽게 수긍하면서 일기 쓰기에서는 좀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많은 사람이 일기 쓰기를 시도했다가 꾸준히 이어지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몇 번 쓰다 마니까 다이어리도 거의 새것인 상태로 방치하게 되고 한 해가 지나면 망설이다 버린다고 했다. 그 일이 반복되니 자신을 믿을 수 없고 일기 쓰겠다는 생각 자체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바빠지면서 일기를 매일 쓰지 못한다. 시간이 없는 날은 몇 개의 단어로 메모를 남기고 여유가 있거나 마음이 답답한 날은 토로하듯 여러 문장을 쓰거나 한 쪽이 넘도록 기록한다. 확실한 건 길게 쓰고 난 날에는 답답하게 했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마음은 풍요로워진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매일 쓰느냐가 아니라 내 삶의 구성 요소 안에 기록에 대한 인식이 있느냐, 기록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사실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자신의 일상-오늘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샀는지-에 대해 많이 남기고 기록하며 살고 있다.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고 감상을 적어 누리소통망(SNS)에 올리는 것으로 기억과 기록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 다채로운 기록은 왜 우리에게 소통의 기쁨만 안겨주는 게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할까. 나는 그것이 누군가의 반응과 평가를 전제로 한 기록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 기록이 타인의 반응만을 목적으로 할 때 우리는 눈치를 보고 각색을 하고 재미를 잃는다.
우리에게는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짜 나의 기억과 기분, 감정을 위한 기록이 필요하다. 소설가라서 사람들이 사서 읽는 글을 쓰는 것이 일이지만 내가 혼자만 읽는 일기 쓰기를 멈추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혼자만의 일기가 필요하다.

 서유미_ 소설가. 2007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두 권의 소설집과 여섯 권의 장편소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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