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로, 칸 영화제에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받은 작품이다.
방임되거나 출생 미등록 <아무도 모른다>와 <누들>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7조에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되어야 하며, 이름과 국적을 가져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있다. 어디 먼 나라, 후진국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도 모른다>(2004)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로, 칸 영화제에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받은 작품이다. 영화는 1988년에 실제로 일어난 아동방임 사건을 극화했다. 집주인 몰래 4남매를 키우던 싱글 맘이 12살 된 장남에게 쪽지 한 장을 남기고 집을 나간다. 영화는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아이들의 일상을 담담히 비춘다. 장남을 제외하고 출생신고도 안 된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전기도 수도도 끊긴 채 쓰레기장처럼 변해가는 집 안에서 4남매가 사는 모습은 참혹하지만, 영화는 평화롭고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사라졌다. 이러한 괴리 속에서 관객의 착잡함은 커지는데, 특히 장남 역을 맡은 야기라 유야의 사려 깊은 눈빛과 막냇동생의 시신을 여행 가방에 넣어 공항 언저리에 묻는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제목인 ‘아무도 모른다’도 관객의 폐부를 찌른다. 소위 선진국으로 사회복지 제도를 갖춘 일본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어떻게 아무도 모를 수 있는지 먹먹함이 밀려든다.
▶영화 <누들>의 한 장면
한국판 현실 ‘광주 10남매 사건’
<누들>(2007)은 이스라엘 영화로, 중국인 이주노동자의 아이를 보여준다. 중국인 가사도우미가 승무원 미리에게 1시간만 봐달라며 아이를 맡기고는 돌아오지 않는다. 아이와는 한마디도 말이 통하지 않아 아무것도 물어볼 수가 없다. 그래도 미리는 아이와 함께 엄마를 수소문해 며칠 만에야 아이 엄마의 소식을 듣는다. 미등록 신분이 적발되어 중국으로 추방되었다는 것이다.
가까스로 중국의 아이 엄마와 통화하게 된 미리는 아이를 보내주겠노라 약속한다. 그런데 아뿔싸, 아이의 출생 기록이 없어서 여권을 만들 수 없다. 아이는 이스라엘에서 태어났지만, 미등록 신분인 엄마가 출생신고를 못한 탓이다. 이제라도 중국대사관에 출생신고를 하고 여권을 받아보려 하지만 너무 오래 걸린다고 한다. 자, 여기서 어떻게 할 것인가. 그사이 아이와 친해진 미리가 혹시 아이를 맡아 키우려는 것인가 싶었지만, 그녀는 훨씬 용감한 결단을 내린다. 한시라도 빨리 아이를 엄마 곁으로 돌려보내고자 자신의 커리어를 건 모험을 감행한다. 승무원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아이를 여행 가방에 넣어 중국에 밀입국시키는 것이다. 조마조마한 장면을 거쳐 드디어 중국에 온 아이가 엄마와 재회하는 장면은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영화니까, 외국이니까 등장하는 극단적인 사례들로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비슷한 일이 지금 한국에서도 벌어진다. 2016년에 발견된 ‘광주 10남매 사건’이 실례다. 5평짜리 단칸방에서 살고 있던 일가족 중 7명의 자녀가 수년 동안 출생신고 없이 살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은 첫째, 아홉째, 열째 아이뿐이었다. 당시 부모가 빚에 쫓겨 다니느라 그리되었다는 것과 남매간에 우애가 깊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미담처럼 소비되었지만, <아무도 모른다>의 현실판에 가까운 아동방임 사건이다. <누들>처럼 출생신고 없이 한국에 사는 이주아동도 존재한다. 2004년에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아 체류 중인 메리(가명) 씨는 한국에서 두 아들을 낳았지만 출생신고를 못했다. 한국은 주민등록 제도가 발달하고 사회복지 시스템도 갖춰진 사회인데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진 걸까. 보편적인 출생등록제를 시행하지 않은 탓이다.
한국의 출생신고는 ‘가족관계 등록에 관한 법률’에 따라 부모가 자발적으로 하도록 돼 있다. 즉 국가가 태어난 아이를 한 명의 시민으로 등록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아이를 자신의 가족관계부에 가족의 일원으로 등록하는 식이다. 이는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본 호주제와 호적법의 잔재다. 국가는 출생신고를 강제하지 않는다. 출생 후 1개월 이내에 출생신고를 마치지 않으면 5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뿐이다. 이마저 부모가 내국인일 때 해당되는 이야기다. 부모가 외국인이면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도 부모의 나라 대사관에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하지만 부모가 미등록 외국인이나 난민, 무국적자일 경우에는 출생신고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런 이유로 출생신고도 국적도 없이 한국에 살고 있는 이주아동이 2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는 국가 입장에서 보면 없는 아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모든 정책에서 제외된다. 필수 예방접종, 국민건강보험, 보육비 지원, 취학통지서, 기초생활수급권, 장애인 등록 등을 받을 수 없다. 또한 출생신고가 안 된 이주아동의 부모는 임시 체류 자격을 부여받지 못해 강제 추방을 당할 수도 있고, 아이는 여권을 발급받지 못해 부모의 본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근대국가에서 인권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이기 때문에, 국가에 등록될 권리는 다른 인권들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바탕이 된다. 따라서 아이는 부모의 사정이나 의사에 관계없이 독립된 인간으로 국가에 등록될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보편적 출생등록제는 부모의 법적 상태와 출신국과 무관하게 태어난 모든 아동의 출생 사실이 출생 즉시 공공기관에 등록되는 제도로, 현재 미국, 영국, 독일에 이어 태국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1991년에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비준했고, 2011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와 2015년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규약위원회로부터 보편적 출생등록제의 시행을 권고받았지만, 아직 보편적 출생등록제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조차 30년이 다 되도록 지키지 못하는 나라라니, 한국에서 어른으로 사는 것이 부끄럽다.
황진미_영화평론가, 대중문화 평론가.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로 재직 중이고, 보건정책학 박사과정을 이수했다. 2002년에 <씨네21>을 통해 영화평론가로 등단한 후 <한겨레>, <창비 어린이> 등 많은 매체에 영화와 대중문화 관련 글을 기고해왔다. 텍스트의 사회적인 의미에 주목하고 여성, 장애, 노동, 아동, 외국인, 성소수자 등 소수자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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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