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최되었던 ‘루나파크(Lunapark)’전을 거의 막바지에 보았다. 전시장 입구에는 이른바 ‘창조적인’ 사람들의 말들이 따옴표로 인용되어 있다. 이 인용구들은 이 전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대변한다. 그중에 하나는 이런 것이다. “기능적인 디자인 제품과 생활하면 기능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고, 감성적인 디자인 제품과 생활하면 상상력과 창의력 감성까지 풍부해질 것이다.” 이 말은 이 전시회를 기획한 이탈리아의 거장 스테파노 지오반노니가 한 말이다. 그가 말한 감성적인 디자인 제품이 이 전시회에 출품된 제품이라고 한다면, 전 세계 99% 이상의 사람들은 주로 기능적인 디자인 제품과 생활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전시회가 감성적인 디자인이라고 선정한 것들은 대체적으로 가격이 비싸고 말 그대로 예술적 감성이 풍부한 제품들로서 주로 전시장에서는 빛을 발하지만 실생활에서는 그 쓸모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주니어 화이트(Junior White)’라는 이름의 수납장, 돼지처럼 생겨서 이름도 그대로인 ’돼지 식탁’, 그리고 ‘콩(Kong)’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조명등을 봐라. 이것들은 수납장, 테이블, 조명이라는 기능을 가졌지만, 그 기능은 작은 부피로 축소돼 있다. 북극곰 모양의 수납장에서 수납 공간은 옹색하고 불규칙적이다. 먼저 곰을 만든 뒤 수납이라는 쓸모를 억지로 끼워 넣은 격이다. 돼지 모양의 테이블에서 쓸모 있는 부위는 머리 위에 얹은 작은 쟁반이다. 음식으로서 돼지는 버리는 부분이 없지만, 가구로서 돼지는 이토록 낭비가 심하다. 공간 낭비로 치자면 콩이라는 조명을 뛰어넘을 제품이 없다. 이 거대한 조각에서 기능을 하는 부분은 고릴라의 왼손에 들린 손전등 모양의 램프가 전부다. 그나마 방향 전환도 안 된다. 만약 전시 기획자인 지오반노니가 말하는 감성적 디자인 제품이 콩 같은 과장된 조명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 세상 사람의 몇 프로나 감성 제품을 집안에서 소화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콩 조명은 아주 재미난 상업 공간의 소품으로는 그만이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에도 어울린다.
이 전시회에는 무려 428점의 제품이 출품되었다. 감성적 디자인이라는 필터를 통과하려면 기능에만 충실한 일반적인 모양으로는 부족하다. 예를 들어 웨이터들이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와인 따개인 ‘웨이터스 프렌드(waiter’s friend)’는 이 전시회에 출품되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디자인한 와인 따개 ‘안나 G’는 대단히 감성적인 디자인으로 선택되었다. 이 와인 따개의 특징은 사람처럼 생겼다는 점이다. 치마를 입은 여성의 모습이다. 그리고 세울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종류의 주방 도구란 사용한 다음에는 서랍장 안으로 사라지기 마련이다. 마치 웨이터스 프렌드가 대부분의 시간을 웨이터의 주머니 속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세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머니나 서랍 속으로 들어가기에는 너무 커다란 안나 G는 늘 사람들의 눈에 띄는 곳에 당당하게 서서 감상되는 존재다. 와인 따개의 기능은 좀 부실한 편이다. 그러니까 이런 종류의 감성적 디자인 제품이란 기능을 가장한 감상용 장식품에 가깝다.
▶ 1 ‘안나 G’, 알레산드로 멘디니 작, 1994 2 ‘돼지 식탁’, 무이 작, 2006 3 ‘주니어 화이트’, 아이브라이드 작, 2009
4 ‘콩(Kong)’, 스테파노 지오반노니 작, 2017 5 ‘책벌레(Bookworm)’, 론 아라드 작, 1994 ⓒ김신
이런 제품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것은 나쁠 것이 없다. 깜찍한 인테리어를 위해서, 또 사람들의 눈요깃거리로 즐기기에도 그만이다. 장식품에 가깝지만 아주 쓸모가 없지도 않다. 하지만 집안을 이런 물건들로 채울 수는 없다. 대체로 이런 종류의 물건은 ‘세컨드 카’와 비슷한 구실을 한다. 매력적인 고성능 스포츠카는 대부분 세컨드 카다. 그 차로 출퇴근을 하고 가족 여행을 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차는 데이트를 하거나 자랑하고 싶을 때 제격이지 주력 승용차는 아니다. 또 다른 출품작 ‘책벌레(Bookworm)’라는 책꽂이를 보자. 이 책꽂이는 참 독특하고 재미있지만, 책을 많이 꽂을 수는 없다. 따라서 이 책벌레는 집안에 많은 책을 꽂을 수 있는 커다란 책꽂이가 있다는 전제 아래 손님들이 쉽게 볼 수 있는 공간에 놓을 멋부리기용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책꽂이는 큰 집을 위한 것이다. 책이 많고 작은 집에 사는 사람에게는 낭비다. 사글세를 살면서 포르쉐를 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시장에서 도슨트를 들어보니 해설자가 자꾸 이런 감성적이고 창의적인 제품과 다이소 제품을 비교한다. 그런 제품들과 비교해서 위트와 유희가 넘친다는 것이다. 제품 하나를 사용할 때도 재미를 느낀다는 것이다. 이런 제품을 다이소 제품과 견준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의미 없다. 가격 경쟁력과 실용성을 최우선 가치로 디자인된 제품을 어찌 고가의 감성 제품과 비교할 수 있겠나. 출생 신분 자체가 다른데 말이다.
이런 종류의 감성 제품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매일 일만 할 수 없고 때로는 실용성과는 먼 놀이를 즐기기도 해야 한다. 말하자면 감성 제품이란 그런 놀이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그것으로 생활 공간을 도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오반노니의 말은 틀렸다. 기능적인 제품을 쓴다고 기능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기능적인 인간으로 성장한다. 그건 사회가 사람이 기능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요구하고 그렇게 길들이기 때문이지 기능적인 물건과 함께 살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무수히 많은 창의적인 사람도 대부분 기능적인 물건과 함께 성장했다.
김신은 홍익대 예술학과에서 미술 이론을 전공하고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 대림미술관 부관장으로 일했다. 현재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