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5일부터 4월 25일까지 진행된 리그오브 레전드(LoL)의 국내 리그인 ‘2020LCK 스프링’ 현장│ 라이엇게임스 코리아

코로나19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된 산업군이 조명을 받고 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세에 따라 메이저리그(MLB)부터 미국 프로농구(NBA),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북미 아이스하키리그(NHL)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의 스포츠 리그가 대부분 멈췄다. 이런 상황에서 e스포츠가 ‘비대면(언택트)’ 시대의 유망 스포츠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19로 한국을 비롯한 세계 전역에서 게임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시장조사 기관들은 2020년 게임 시장을 주목해야 한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에 발맞춰 우리 정부도 게임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나섰다.
게임 시장 조사업체인 뉴주(Newzoo)에 따르면 글로벌 e스포츠 업계는 2020년 한 해 10억 6000만여 달러(약 1조 3000억 원)의 수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 상황에도 2019년보다 1억 180만 달러, 10.6%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2021년부터는 더 탄력이 붙어 e스포츠 수익이 연평균 15.5%씩 늘어 2023년 약 16억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e스포츠 성장세와 함께 관람객 수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뉴주는 2020년 4억 9500만 명이 e스포츠를 관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중 열성 관객은 2억 2290만 명으로, 해마다 2500만 명씩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e스포츠 위상 끌어올린 한국
그중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는 한국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세계 e스포츠에서 한국의 위상은 마치 축구에서 영국이나 브라질이 차지하는 위상과 같다. 아이들이나 즐기는 전자오락 이미지를 e스포츠로 끌어올린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한국 프로게이머들은 글로벌 e스포츠의 에이스로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2월 5일부터 4월 25일까지 진행된 리그 오브 레전드(LoL)의 국내 리그인 ‘2020 LCK 스프링’은 2019년 시즌 대비 일평균 순 시청자 수가 13.4% 증가한 463만여 명을 기록했다. 하루 평균 최고 동시 시청자 수 역시 2019년보다 4% 늘어난 82만여 명으로 집계됐다. 리그 개막과 동시에 무관중으로 경기를 진행했는데도 비대면으로도 즐길 수 있는 e스포츠의 장점을 LCK가 효과적으로 활용했다는 평이다. 뿐만 아니라 LCK의 이번 스프링 스플릿 최고 동시 접속자 수 82만여 명 가운데 약 62%가 해외 시청자 수(51만여 명)로 집계되며,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찾아보는 인기 스포츠 콘텐츠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특히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팬을 거느린 ‘페이커’ 이상혁(23) 선수가 소속된 ‘T1’과 ‘젠지’ 팀의 결승전은 최고 동시 시청자 수 215만 명 이상, 평균 동시 시청자 수 약 120만 명이라는 기록을 달성하며 세계 e스포츠 팬들을 열광케 했다. 페이커 이상혁 선수는 축구계의 리오넬 메시에 비유되는 슈퍼스타다. 롤 월드 챔피언십에서 최다 우승(3회) 기록을 보유한 실력자로 생일을 기념해 해외 팬들이 축하 광고를 내걸 만큼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의 연봉은 3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기업 e스포츠 중계 경쟁도 치열
국내 e스포츠 시장은 벌써부터 세계 기업들의 새로운 마케팅 목표(타깃)가 됐다. 페이커 이상혁 선수가 소속된 T1(SK텔레콤 T1 CS 주식회사) LoL 게임단은 나이키에 이어 최근 독일 자동차 기업 베엠베(BMW)와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했다. 글로벌 완성차업체가 게임팀과 스폰서십 계약을 맺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밖에도 2020년에만 로지텍G, 클레브, 원스토어 등 국내외 10여 개 기업, 브랜드와 스폰서십 계약을 맺었다. 불과 4개월 만에 2019년보다 5배 증가한 스폰서십 매출을 확보했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인 한성자동차도 e스포츠 기업인 ‘젠지’와 파트너십 활동에 들어갔다. 프랜차이즈 리그로 열리는 ‘2021 LCK’에 국내외 25개 팀이 투자 의향서를 낸 것도 한국 e스포츠의 인기를 실감하게 한다.
그 밖에도 한국 e스포츠의 세계적 인기는 여러 지표로 확인된다. SK텔레콤의 e스포츠 스트리밍 서비스 ‘웨이브 5GX 멀티뷰’는 평균 시청 시간이 2~3월 사이 30% 넘게 늘어났다. 일부 국내 프로리그는 동시 시청자가 2019년의 3배로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당수가 해외 시청자다. 시장조사 기업 웨드부시 시큐리티는 2020년 e스포츠 시장이 2019년 대비 20% 성장하리라 예상하면서 한국이 수혜국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기업의 e스포츠 중계 경쟁도 치열해졌다. 페이스북 코리아는 최근 게임 생중계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선보였다. 시청자가 좋아하는 게임 방송자에게 돈을 줄 수 있는 ‘스타(별풍선)’ 제도도 도입했다. 게임 스트리밍 시장을 양분해온 아마존의 ‘트위치’, 구글의 ‘유튜브’와 3파전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정부, 미래 먹거리로 e스포츠 육성 의지
국내에서도 산업적인 측면에서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사들이 5세대(5G) 대중화 시대의 킬러 콘텐츠(특정 미디어가 폭발적으로 보급되는 계기가 된 콘텐츠)로 e스포츠를 점찍으면서 시장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게임사들도 게임 지식재산권(IP)을 이용한 e스포츠 활성화에 팔을 걷어붙인 상태다. 펍지(PUBG)의 배틀로열 1인칭 슈팅게임(FPS) ‘배틀그라운드’는 2019년 세계 9개 지역에서 프로 시즌을 개최한 데 이어 2020년에는 ‘펍지 글로벌 시리즈’를 오프라인 대회로 연 3회 추진할 계획이었다. 넷마블은 3월 다중접속 역할수행 게임(MMORPG)에 배틀로열 시스템을 접목한 ‘A3:스틸 얼라이브’를 출시한 뒤 일주일 만에 e스포츠 대회 ‘A3BL’ 개최 계획을 밝혔다.
이러한 성장세에 따라 정부도 e스포츠 진흥에 팔을 걷어붙였다. 5월 7일 정부는 ‘게임산업 진흥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과감한 규제혁신 ▲기업성장 단계별 지원 강화 ▲게임의 긍정적 가치 확산 및 e스포츠 산업 육성 ▲건전한 여가문화 정착 등 네 가지 핵심 기조를 내세워 게임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2024년까지 게임산업 매출액은 19조 9000억 원, 수출액은 11조 5000억 원으로 확대하고 일자리를 10만 2000개까지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게임산업 일자리는 8만 5000명 수준이다.
또 여러 지자체에서 진행 중인 e스포츠 상설 경기장 건립과 더불어 11월 서울에서 한중일 e스포츠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이후 아시아 대회, 세계 대회로 단계적 확대 운영을 검토한다. 이를 통해 ‘e스포츠 국제 표준’을 마련함으로써 e스포츠 종주국의 위상을 강화하며, 지역 단위 아마추어·동호인 중심의 생활 e스포츠 기반을 함께 마련할 계획이다. 이런 상황들이 동반 상승(시너지)을 이루면서 2020년 e스포츠 시장이 전통 스포츠를 능가할 수도 있으리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왼쪽부터) ESPN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제프 파산은 트위터에 한국 프로야구의 배트 플립(빠던)을 소개하며 호감을 드러냈다. /노스캐롤라이나주를 연고지로 하는 마이너리그 팀 ‘더럼 불스’ 공식 트위터에는 “이제부터 여기는 NC다이노스 팬 계정”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트위터 갈무리

K-팝과 K-방역 이어 K-스포츠로
코로나19로 인해 전면 중단된 전통 스포츠에도 변화는 있었다. 많은 전통 스포츠 리그가 게임으로 경기를 대신한 것이다. 미국 메이저리그(MLB)는 야구 게임 ‘MLB 더 쇼 20’ 이벤트 경기를 개최하고 MLB 네트워크에 중계했다. 각 구단을 대표하는 30명의 선수가 자신의 소속팀으로 출전했으며 스포츠 전문 방송사 ESPN에도 중계됐다. 스페인의 프로축구 리그인 라리가는 축구 게임 ‘피파20’으로 온라인 경기를 치렀다. 최종 승자는 레알 마드리드로 레가네스를 4대 1로 이겼다.
마드리드 오픈테니스는 온라인 가상현실 대결로 열렸다. 4월 27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경기는 남녀 단식에 각각 16명씩 선수가 출전했다. 4개 조로 나눠 조별 리그를 벌인 뒤 8강을 추려 승자 진출전(토너먼트)으로 우승자를 정했다. 영국의 앤디 머리가 남자 단식 우승을, 네덜란드의 키키 베르턴스가 여자 단식 우승을 차지했다. 벨기에의 유명 사이클 대회 ‘투어 오브 플랜더스’도 가상현실 경기로 열렸다. 12명의 선수가 참가한 이번 경기는 실제 대회 거리 260km가 아닌 32km 레이스로 치러졌다. 리우올림픽 개인도로 금메달리스트인 벨기에의 그렉 반 아버맛이 1위를 차지했다. TV로도 중계되면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온라인으로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는 풍토가 코로나19로 인해 비로소 시작됐다.
그 와중에 한국의 스포츠가 고개를 들었다. 축구, 야구가 한 달 이상 뜸을 들이다 5월 초 조심스럽게 무관중 개막했다. 비록 경기장에 직접 찾아갈 수 없고 TV 중계에 관중의 함성이 들리지 않아 어색하고 아쉽지만 팬들에겐 이마저도 반갑다. 각 구단은 다양한 아이디어로 관객과 소통을 끌어내고 있다. 생방송 화상 채팅으로 팬과 만나 사인을 하고, 사인한 종이는 우편으로 발송해준다. 텅 빈 야구장은 온라인으로 연결한 팬들의 채팅 응원을 전광판에 띄우고 스포츠 팬들의 응원 목소리를 마이크로 입력받아 야구장에 울려 퍼지도록 한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야구 본고장 미국에서도 한국 프로야구에 대한 관심이 상당하다. 한국프로야구(KBO) 리그를 보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응원하고, 한국 특유의 ‘빠던(배트 플립, 방망이 던지기)’에 즐거워한다. 미국 최대 스포츠 채널 ESPN은 매일 한 경기씩 KBO 리그를 미국 전역에 생중계하고 있다. 미국 내 KBO 리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중계 국가도 크게 늘었다. 이와 함께 국내 프로축구 K리그는 영국의 BBC를 포함한 해외 36개국에 중계권을 팔았다. K-팝과 K-뷰티, K-방역에 이어 K-스포츠의 가능성도 기대해볼 만한 이유다.

심은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