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의 법궁(法宮 : 임금이 사는 궁궐)이었던 경복궁. 아름다운 궁의 이곳저곳을 거닐다 마지막에 다다를 때쯤 고종 황제의 서재로 쓰였던 집옥재를 만났다. 55년간 개방되지 않았던 곳, 하지만 이제는 그곳 집옥재에서 일반인도 직접 책을 읽고 한국의 역사를 더욱 깊게 느낄 수 있게 됐다.
집옥재에 들어선 기자는 임진왜란의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한 유성룡의 〈징비록〉과 정약용의 〈목민심서〉, 〈조선왕조실록〉 등 흥미로운 책들을 몇 권 꺼내 들고 자리에 앉아 내용을 훑어보며 잠시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또 자리를 옮겨 가배(커피)와 생강차 향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북카페에서 경복궁을 바라보며 행복한 사색을 하는 작은 사치도 누렸다. 그곳에는 관광객도 일반인도 잠시 마음이 풀어진 듯 여유와 조선의 역사를 함께 즐기고 있었다.
▶ 집옥재에 진열돼 있는 조선 역사 기록물들을 이용객들이 살펴보고 있다.
▶ 정조 때 장원급제한 정약용의 친시(임금이 친히 주관하는 과거시험) 시권.
경복궁 내 고종 황제의 서재인 집옥재(集玉齋 : 경복궁 건청궁 안에 있는 전각)가 작은도서관으로 탈바꿈해 일반에 개방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재청은 4월 27일 집옥재 앞마당에서 ‘궁궐 속 작은도서관 개관식’을 개최했다. 이날 개관 행사에는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종진 문화재청 차장, 신숙원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장, 표재순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등 주요 인사와 경복궁 관람객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아울러 개관을 기념해 집옥재에서는 ‘문화가 있는 날, 궁을 읽다’라는 주제로 토크콘서트도 진행됐다. 먼저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이 집옥재의 역사를 소개하고, 역사 강사로 잘 알려진 설민석 씨가 특유의 입담으로 고종과 궁에 대한 이야기를 펼쳤다. 이어 김원중 단국대 교수가 〈격몽요결〉의 내용과 함께 조선시대 책 읽기에 대한 교훈 등을 들려주었다.
▶ 북카페로 탈바꿈한 팔우정에서 관광객이 자국어로 된 책을 읽고 있다.
경복궁 찾는 내•외국인
역사 속 공간 직접 체험
작은도서관 집옥재는 조선시대 역사, 인물, 문화 관련 도서와 기존 집옥재가 소장하고 있던 왕실 자료의 영인본 등을 비치해 조선시대 특화 도서관으로 운영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경복궁을 찾는 내•외국인들이 집옥재를 통해 역사 속 공간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1891년 건립된 집옥재는 고종 황제의 서재와 외국 사신 접견소로 사용됐던 곳으로, 동쪽 협길당과 서쪽 팔우정이 복도로 연결돼 있다. 팔우정은 궁중 다과와 책을 파는 등 북카페로 꾸몄고 협길당은 열람실로 새롭게 단장했다.
집옥재는 내•외부 시설은 그대로 보존하면서 목재 서가와 열람대, 전시대 등을 새로 설치했다. 집옥재엔 조선시대 관련 책 1000여 권과 왕실 자료 영인본 350여 권, 외국인을 위해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번역된 한국 문학 도서 230여 권이 비치됐다. 또한 고종 황제의 초상화와 집옥재 도서목록, 정조 때 장원급제한 정약용의 친시(親試 : 임금이 친히 주관하는 과거시험) 시권 등 조선 역사를 알 수 있는 기록들도 진열돼 있어 조선 역사의 일부분을 직접 살펴볼 수 있다.
조선시대 배경 자료로는 〈조선왕조실록〉,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동의보감〉, 〈조선의 음식을 만들다〉 등이, 왕실 자료는 〈고종문집〉, 〈정조 어찰첩〉, 〈조선 국왕과 선비〉, 〈일성록〉 등이 있다. 한국책 번역본에는 〈한국의 전통연희〉, 〈7년의 밤〉이 중국어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영어로, 〈한국복식문화사전〉과 〈식물들의 사생활〉 등이 일본어로 번역돼 비치됐다.
집옥재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은 〈대장금〉 등의 책을 가리키며 그들의 언어로 반가움을 표현했다. 일부 이용객들은 자국어로 된 책을 발견하곤 자리로 가져와 조용히 읽기도 했다.
중국인 관광객 티엔홍링 씨는 “관광지에 이렇게 조용하고 운치 있는 도서관이 있어 좋다”며 “특히 역사적 공간을 직접 이용하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김혜원(23) 씨는 “요즘은 도서관에 잘 가지 않았는데, 우리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도서관이 경복궁 안에 있어 좋다”며 “앞으로 역사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이런 도서관이 더 많이 생기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 4월 27일 서울 경복국 집옥재 앞마당에서 집옥재 작은도서관 개관 행사가 열렸다. 이날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종진 문화재청 차장, 신숙원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장, 표재순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등 주요 내빈들이 개관을 알리는 테이프 커팅 행사를 하고 있다.
집옥재 작은도서관이 개관하면서 많은 이용객이 경복궁을 관람하고 독서와 휴식, 인문 강좌, 공연까지 체험하는 ‘독서•문화•관광’이 결합한 새로운 트렌드가 확산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위해 작은도서관은 앞으로 북 콘서트, 강연 프로그램 등 궁과 어우러진 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고종 때 집옥재에 있던 서책들을 소장하고 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집옥재에서 유물 전시와 상설 왕실문화 강좌 등을 운영할 계획이다. 집옥재 작은도서관은 3월부터 11월까지 경복궁 개관 시간대(오전 9시~오후 5시 30분)에 이용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박위진 문화기반정책관은 “집옥재 작은도서관이 국내외 관광객들이 꼭 한 번은 들러야 할 관광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 “문화재청과의 이번 협업을 계기로 문화재의 외양만 구경하는 관광을 넘어 역사 속 공간을 직접 체험하는 관광으로 발전시키고, 이를 확산해나갈 수 있도록 서원, 향교, 고택 등을 활용한 작은도서관 조성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글 · 박샛별 (위클리 공감 기자) / 사진 · 박해윤 기자 2016.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