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BS의 대하사극 <정도전>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한양 천도, 궁궐 조성, 종묘와 사직 정비, 도성 건설 등 모든 사업을 지휘한 정도전(1345~1398)의 모습을 통해 조선왕조 설계자로서의 진면목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이 건국되고 3년이 지난 1395년(태조 4년) 9월 29일 북악산을 병풍 삼은 경복궁(景福宮)이 창건되었고, 정도전은 경복궁과 각 전각의 이름을 지으며 새 왕조 건설의 의미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태조실록>의 1395년 10월 7일 기록에는 “판삼사사 정도전에게 분부하여 새 궁궐의 여러 전각의 이름을 짓게 하니, 정도전이 이름을 짓고 아울러 이름 지은 뜻을 써서 올렸다. 새 궁궐을 경복궁이라 하고, 침전을 강녕전(康寧殿)이라 하고, 동쪽 소침(小寢)을 연생전(延生殿), 서쪽 소침을 경성전(慶成殿), 침전의 남쪽을 사정전(思政殿)이라 하고, 또 그 남쪽을 근정전(勤政殿)이라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경복궁의 이름을 지은 사연도 흥미롭다. 궁궐이 완성된 후 열린 연회에서 술이 세 번 돌자 태조 이성계가 정도전에게 궁궐의 이름을 지을 것을 명했고, 정도전은 <시경(詩經)>의 ‘주아(周雅) 편’에 있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는 영원토록 그대의 크나큰 복을 누리리라”라는 시(詩)를 외우고, 새 궁궐을 경복궁이라고 이름 짓기를 청하였다. 이성계가 술에 취한 모습을 보며 왕의 큰 복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라는 뜻을 담은 이름이었다. 술에 취해서인지 이성계도 바로 정도전의 청을 받아들였고 궁궐의 이름은 경복궁으로 정해졌다.
경복궁의 법전(法殿)인 근정전의 이름도 정도전이 지은 것이었다.
‘근정(勤政)’이란 부지런하게 정치하라는 뜻으로, 예로부터 나라를 통솔하는 자에게는 부지런함이 요구되었다. 이는 <서경(書經)>에 “편안히 노는 자로 하여금 나라를 가지지 못하게 하라” 하고, 문왕(文王)이 “아침부터 날이 기울어질 때까지 밥 먹을 시간을 갖지 못하며, 만백성을 다 즐겁게 하였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정도전은 편안히 쉬기를 오래하면 교만하고 안일한 마음이 쉽게 생기기 때문에 왕은 누구보다 부지런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정도전은 왕이 부지런히 해야 할 것으로 아침에는 정사를 듣고, 낮에는 어진 이를 찾아보고, 저녁에는 법령을 닦고, 밤에는 몸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예로 들었다.
근정전 뒤편에는 편전인 사정전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근정전이 국가의 공식 행사를 치르는 의전용 공간의 기능을 했다면 사정전은 왕이 신하와 경연을 하고 정무를 보는 집무실과 같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사정’이란 생각하고 생각하며 정치하라는 뜻이다. 정도전은 “천하의 이치는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잃는다”고 하면서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침전에는 강녕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강녕전은 <서경> ‘홍범구주(洪範九疇)’의 오복(五福), 즉 장수, 부귀, 강녕, 덕을 좋아함, 천명을 다하는 것 중에 셋째가 강녕(康寧)인 것을 떠올리며 그 이름을 따온 것이었다. 정도전은 “왕이 마음을 바르게 하고 덕을 닦아서 황극(皇極)을 세우게 되면 능히 오복을 향유할 수 있으니, 강녕이란 것은 오복 중의 하나이며 그 중간을 들어서 그 남은 것을 다 차지하려는 것입니다”라고 강녕전의 의미를 해석했다.
경복궁부터 시작하여 근정전·사정전·강녕전 등 경복궁 전각의 이름은 거의가 정도전의 머리에서 나왔다. 유교 경전에서 좋은 뜻을 찾고 왕이 꼭 이러한 점을 실천할 것을 강조하는 취지에서 그 이름을 지은 것이었다. 경복궁을 찾아 경복궁과 여러 전각에 담긴 뜻을 새겨보고 정도전을 기억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글·신병주(건국대 사학과 교수) 2014.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