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에서 열린 최초의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인 2016 리우패럴림픽이 9월 19일(이하 한국시간) 폐회식을 끝으로 12일간 열전의 막을 내렸다. 대회는 기대 이상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카바이러스와 불안한 치안 등으로 대회 전부터 우려 섞인 목소리가 있었지만, 대회가 시작되자 브라질 국민들의 높은 관심과 매끄러운 경기 운영으로 반전을 이끌어냈다. 리우패럴림픽은 흥행에서도 성공했다. 대회기간 동안 총 210만 장 이상의 입장권이 팔린 것. 패럴림픽 조직위원회가 기대했던 200만 장을 넘긴 숫자다. 역대 1위였던 2012 런던패럴림픽의 280만 명 기록을 바로 뒤따른다.
▶2016 리우패럴림픽이 12일간의 열전을 마치고 지난 9월 19일(한국시간) 막을 내렸다. 사진은 폐막식 모습. ⓒ뉴시스
‘패럴림픽의 박태환’ 조기성 수영 3관왕 영예
보치아 세계 1위 정호원 패럴림픽 ‘숙원’ 풀어
이번 대회에선 159개국 4300여 명의 선수가 23개 종목에서 528개의 금메달을 놓고 각축을 벌였다. 금메달 107개, 은메달 81개, 동메달 51개로 종합 1위를 차지한 중국은 51개 종목에서 세계기록을 쏟아냈다. 개최국 브라질은 금메달 14개, 은메달 29개, 동메달 29개 등 총 72개의 메달로 종합 8위의 성적을 거두며 대회 흥행을 이끌었다. 대한민국은11개 종목에 81명의 선수가 참가해 금메달 7개, 은메달 11개, 동메달 17개로 종합순위 20위를 차지했다. 금메달 11개 이상으로 종합 12위를 노렸던 목표에는 못 미쳤지만, 전체 메달 수로 따지면 역대 두 번째로 좋은 성적이다.
▶조기성은 남자 수영 50m, 100m, 200m를 모두 석권하며 패럴림픽 수영 역사상 최 초로 3관왕에 올랐다. ⓒ뉴스1
‘패럴림픽의 박태환’이라 불리는 조기성(21)은 패럴림픽 수영 역사상 최초로 3관왕(장애등급 S4)에 오르는 쾌거를 일궜다. 1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조기성은 200m에 이어 주 종목이 아닌 50m까지 석권하며 대회 3관왕을 차지했다. 생애 첫 패럴림픽 출전이었다.
조기성은 선천성 뇌성마비 장애로 걷지 못한다. 얇은 두 다리 대신 두 팔로만 수영을 한다. 게다가 오른팔도 완전치 못해 힘이 달린다. 양팔의 힘을 다르게 사용하는 ‘짝짝이’ 영법은 그만의 기술. 똑바로 헤엄치는 것조차 어려웠던 선수가 세계 정상의 자리에 선 건 그래서 더 깊은 울림이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소감을 밝혔다.
"첫 3관왕이라는 게 기분이 좋고 패럴림픽에서 내 이름이 계속 거론될 걸 생각하면 영광스럽다. 100m, 200m에서 성적이 좋아 부담 없이 준비한 덕에 주 종목이 아닌 50m에서도 금메달을 따냈다. 장애인 스포츠가 대중적 관심을 갖길 바란다. 나와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좌절하지 말라!"
수영에서는 진기록이 쏟아졌다. 100m 배영(S14)에 출전한 이인국(21)이 59초 82의 대회신기록을 세운 것. 이로써 그는 2012년 런던 대회 당시 악몽을 씻고 화려하게 재기했다. 이인국은 당시 예선을 전체 1위로 통과하고도 결선에 뛰지 못했다. 경기 20분 전 대기실에 모여야 한다는 규정을 어긴 것이다. 지적장애인인 이인국이 한눈을 판 사이 코칭스태프가 그를 찾지 못했고 규정보다 3분 늦게 경기장에 도착하며 실격 처리된 것. 그는 "그동안 수영을 하면서 힘들었다. 앞으로는 수영보다 이소룡처럼 무술을 하고 싶다"며 힘들었던 지난 시간을 유쾌하게 소회했다.
▶보치아 세계랭킹 1위 정호원은 개인전 금메달을 따내 대한민 국의 8연패 신화를 이어갔다. ⓒ동아DB
세계 최강 대한민국 보치아도 패럴림픽 8연패라는 대역사를 썼다. 이번 대회의 주인공은 보치아 대표팀의 맏형 정호원(31). 페어(단체) 경기에서 홈팀 브라질에 패하고 개인전에 출전한 다른 선수들이 부진한 상황에서 주장 정호원은 자존심을 지켰다. 더욱이 세 번째 패럴림픽 출전 만에 따낸 금메달은 그에게도 무척 특별하다. 정호원은 뇌병변장애가 가장 심한 선수들이 출전하는 BC3 종목에서 세계랭킹 1위다. 그렇지만 유독 패럴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권철현 코치는 정호원을 대신해 소감을 전했다.
"하늘을 날 것 같다. 15년간 세계 최정상 선수였는데 유독 아시안게임과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놓쳐 마음의 부담이 컸다. 정호원은 방 천장에도, TV 위에도, 화장실에도 금메달 그림을 붙여놓았다. 마지막 패럴림픽에서 숙원을 풀고 대한민국 보치아 8연패를 이어가게 돼 무척 기쁘다."
유도 최광근 우승 직후 관중석 아내에게 프러포즈
남자 탁구 에이스들, 약점 공개해 단체전 의기투합
전통적인 효자 종목 유도에서는 새로운 스타가 탄생했다. 이정민, 서하나 등 당초 금메달이 유력했던 선수들이 은메달에 그쳐 아쉬움을 더한 가운데 최광근(29)이 기대하지 않았던 금메달을 따낸 것. 남자 -100kg급에 출전한 그는 홈팬들의 열광적인 응원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브라질 선수를 꺾었다. 2012년 런던패럴림픽에 이은 2연패다.
금메달만큼 그의 러브스토리도 화제가 됐다.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그는 금메달을 딴 뒤 감독의 부축을 받아 관중석에 있던 아내에게 뒤늦은 프러포즈를 했다. 최광근과 아내가 포옹하는 장면은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그의 아내는 런던 대회 당시 통역을 맡았던 대한장애인체육회 직원이다. 최광근은 "그동안 아내에게 잘해주지 못했는데 금메달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화려한 팀워크로 일군 금메달도 있다. 탁구 남자 단체전(장애 등급 TT4-5)에 출전한 김영건(31), 최일상(41), 김정길(30)은 대만을 2-1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세 선수는 국내 장애인 탁구의 정상을 다투는 ‘에이스’들이다. 국내 대회에선 언제나 세 사람의 이름이 마지막에 올랐다. 서로가 라이벌인 셈이다. 그런 그들은 리우패럴림픽을 앞두고 본인의 약점을 서로에게 모두 공개했다. 부족한 부분을 함께 메워 금메달을 따내자는 결의였다. ‘어벤저스’가 탄생한 배경이다. 맏형 최일상은 "탁구선수 출신 아내와 올해 2월에 낳은 아들에게 기쁨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고, 막내 김정길은 "선수들과 코치진이 무척 고생했다"며 눈물을 보였다.
금메달을 따내지 못한 선수들의 투혼도 빛났다. 7회 연속 출전에 빛나는 이억수(51)는 양궁 컴파운드혼성에서 김미순과 동메달을 따냈고, 한국 대표팀의 막내 윤지유(17)도 서수연, 이미규와 나란히 여자 탁구 TT1-3 단체전에서 대역전승 드라마를 써내며 동메달 시상대에 섰다. ‘스마일 스프린터’ 전민재(39)는 여자 육상 200m(T36)에서 2위를 차지한 뒤 발끝으로 쓴편지를 공개했다. 뇌성마비 1급 장애를 가진 그가 쓴, 자신의 키(149cm)만 한 긴 편지지에는 패럴림픽에 임하는 각오와 감사의 뜻이 담겨 있었다. 김규대(32)는 대회 폐막식 직전 열린 남자 휠체어 마라톤에서 극적으로 동메달을 따내며 피날레를 장식했다.
한편 대한장애인체육회는 리우패럴림픽을 대비하기 위해 많은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사상 최초로 해외 전지훈련(미국 애틀란타)을 떠났고, 리우 현지에서는 한식지원단을 운영해 맞춤형 식단을 제공했다. 대회기간 리우에 머물며 한국 선수단을응원했던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나경원 집행위원은 "좀 더 많은 관심과 배려, 투자가 이뤄져 장애인들이 새로운 희망을 찾을 길이 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육상서 비장애 올림픽보다 빠른 기록 나와
팔 없는 기자·시각장애 사진작가도 활약
리우패럴림픽에 출전한 전 세계 선수들은 비장애 올림픽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동을 자아내며 도전의 새 역사를 써냈다. 패럴림픽 역도는 누워서 역기를 들어 올리기 때문에 더욱 까다로운데, 이란의 하반신 지체 장애인 역도선수 라만 사만드(28)는 무려 310kg을 들어 올렸다. 세계신기록이었다.
▶이란의 하반신 지체장애 역도선수 라만 사만드는 누운 채로 310kg을 들어올리며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웠다. ⓒ연합
육상에선 무려 네 명의 선수가 비장애 올림픽보다 빠른 기록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 알제리의아브델라티프 바카(22)는 시각장애 선수들이 출전하는 남자 육상(T13) 1500m 결선 경기에서 3분 48초 29의 세계기록으로 우승했다. 이는 지난 8월 같은 트랙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1500m 우승자 매슈 센트로위츠보다 1초 이상 빠른 것이었다. 1500m 비장애 선수들은 기록보다는 순위에 집중하는 데 반해 상대 선수를 견제하기 어려운 시각장애 선수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력으로 질주한다.
▶이집트의 양팔 없는 탁구선수 이브라힘 하마투가 입으로 라켓을 문 채 발가락으로 공을 들어올리고 있다. ⓒ연합
도전 자체가 도전인 장애 선수들의 올림픽 정신은 패럴림픽을 가장 환하게 빛냈다. 양팔 없는 이집트 탁구선수 이브라힘 하마투(43)가 오른발을 이용해 탁구공을 띄우고 입에 문 탁구채로 전광석화 같은 서브를 날릴 때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는 "장애는 편견이 만들어놓은 신기루일 뿐"이라며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 이번 대회 최고령 출전자인 호주의 ‘할머니 사격선수’ 리비 코스말라(74)는 하반신을 못 쓰지만 1972년부터 패럴림픽에 출전해왔다. 이번 대회에선 여자 10m 공기소총 입사와 혼성 10m 공기소총 복사에서 손주뻘 되는 선수들과 당당히 기량을 겨뤄 각각 18위, 37위라는 성적표를 받아냈다.
패럴림픽의 주인공은 선수들만이 아니었다. 독일 패럴림픽 차이퉁의 객원기자 데이비드 훅은 양팔이 없는 지체장애인이지만 양발을 이용해 기사를 작성해 패럴림픽의 소식을 전 세계에 알렸다. 패럴림픽 조직위원회에 등록된 첫 번째 시각장애인 사진작가 보아오 마이아가 찍은 경기 모습도 놀랍다. 그는 스마트폰의 오토 포커싱 기능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사진을 찍는다. 그는 "사진을 찍을 때 꼭 눈으로 봐야 할 필요는 없다. 대상이 흐릿하게 보이지만 선수들과 가까이 있으면 그들의 심장박동과 다리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양팔 없는 지체장애 기자 데이비드 훅(독일)은 발가락으로 쓴 패럴림픽 소식을 전 세계에 전했다. ⓒ연합
한편 폐회식에서 수여된 대회 최우수선수상 성격의 ‘황연대 성취상’은 시리아 출신의 난민 장애인 수영선수인 이브라임 알 후세인(27)과 메달 6개(금 4, 은 2)를획득한 미국 여자 육상선수 타티아나 맥패든(27)에게 돌아갔다. 황연대 성취상은 한국 최초의 장애인 여의사인 황연대 여사가 1988년 ‘오늘의 여성상’을수상해 받은 상금을 IPC에 전액 기부하면서 시작됐다.
IPC 필립 크레이븐 위원장은 폐회사에서 전날 경기 중 세상을 떠난 이란의 사이클선수 바흐만 골바르네자드(48)를 추모했다. 리우패럴림픽은 성화가 꺼지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020년 도쿄패럴림픽을 기약하며 끝난 이번 대회는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들에게도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생의 강한 의지와 실패를 모르는 도전정신을 보여주며 긴 여운을 남겼다.
글· 조영실(위클리 공감 기자) 201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