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동떨어진 또 먼 곳이라는 이유로 막연했던 공간, ‘극지’에 조금 다가설 수 있게 됐다. ‘2018 극지체험전시회’가 지난 10월 5일을 시작으로 11월까지 대전 국립중앙과학관 특설전시장에서 열린다. 잘 알려지지 않아 신비롭고 그래서 더욱 궁금했을 그곳의 이야기로 가득 찼다.
올해로 여덟 번째를 맞은 극지체험전시회(이하 극지전시회)의 주제는 ‘가자! 자원의 보고 남극·북극에’다. 극지 진출의 중요성을 알리고 미지로의 도전과 개척정신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더불어 전시회는 기후 변화와 자원 고갈이 주요 현안으로 대두되면서 극지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한다.
극지전시회는 총 9개의 세부 공간으로 구성됐으며, 간접체험 부스와 영상 등 극지 환경을 고스란히 체감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본격적인 관람 이전에 필요한 게 있다면 극지에 대한 개념 정리다. 혹 극지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지 못해도 걱정하지 말자. 전시 벽면마다 적힌 문구들이 관람 내내 이해를 돕는다. 극지는 극권(極圈)에서 극에 이르는 사이의 지역으로 남·북 양극지방을 가리킨다. ‘지구의 보물창고’라 불릴 만큼 광물자원과 수산자원이 풍부해 세계가 주목하는 기초과학 실험장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북극보다 남극에 먼저 진출했다. 전시장 내부가 남극 탐험 역사를 필두로 조성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가 남극 대륙을 탐험한 때는 1985년. 당시 정부는 남극조약 가입을 위한 노력에 한창이었는데, 이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국제사회에 진출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탐험에 앞서 극지 진출을 목표로 1978년 크릴 시험 조업에 나서기도 했다. 그해 12월 7일 조사단을 태운 남북호가 이듬해 3월 7일 크릴 510톤을 싣고 돌아왔다. 이후 여덟 차례에 걸친 시험 조업이 이뤄졌고 그러던 중 한국해양소년단연맹이 한국남극관측탐험대를 꾸려 남극 탐험 장도에 올랐다. 탐험대는 제1진 킹조지 팀, 제2진 빈슨매시프산 팀으로 나눠 각각 킹조지섬의 해안과 빈슨매시프산(남극 최고봉)으로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킹조지 팀은 베이스캠프에서 극지생활을 하면서 외국기지를 방문해 우리나라 남극조약 가입 외교 활동과 남극 진출에 중요한 자료들을 수집했다. 동시에 등정 팀은 정상에 오르는 등 성공적인 탐험 결과를 거뒀다. 우리나라는 탐험대의 성과에 힘입어 1986년 11월 28일 세계에서 33번째로 남극조약에 가입했다.
극지 탐험 역사 한눈에
극지전시회는 이러한 내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남극 탐험 관련 각서, 슬라이드, 필름, 장비 등 각양각색 전시품을 진열했다. 극지의 실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도 눈길을 끈다. 남극의 얼음과 빙하를 보여주는 공간이 대표적이다. 남극 얼음은 ‘타임캡슐’로 여겨진다. 눈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눈 사이에 들어 있던 공기가 그대로 얼어붙어 공간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얼음을 바탕으로 과거 지구의 기후를 연구할 수 있다. 남극에서는 눈이 녹지 않고 쌓이는데 이 무게에 눌려 점차 얼음으로 변한 게 빙하다. 빙하 안 아래쪽 얼음은 높은 압력으로 다져져 유독 투명하다.
▶ 관람객들이 극지 동물 모형을 구경하고 있다. ⓒC영상미디어
▶ 2 극지 특수 의류를 입고 스노모빌에 탑승한 어린이 관람객들
3 과학기지 대원들이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이 전시장 한편에 걸려 있다.
4 한국해양소년단 남극탐험대 깃발 실물과 월동대 일기
5 VR 기기를 쓴 채 극지를 간접 체험하고 있는 어린이 관람객 ⓒC영상미디어
남극 탐험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 보면 남극 연구기지를 만나게 된다. 네 번째 섹션인 이곳에서는 과학기지와 쇄빙선의 활동을 살펴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88년 2월 남극반도 남셰틀랜드 군도 킹조지섬에 세종과학기지를 건설했다. 하계연구대는 여름에만 이 기지에 머물면서 연구하고, 월동연구대는 1년간 기지를 유지 관리하면서 상시 연구를 하고 있다.
2014년 준공한 두 번째 과학기지도 있는데 이곳은 통일신라시대 해상왕 장보고의 이름을 따 장보고과학기지라고 한다. 기후 변화와 함께 운석과 하산을 연구하는 등 이곳에서도 남극 연구가 활발하다. K-루트 사업단이 장보고과학기지를 기반으로 미개척 분야 탐사 활동을 위한 루트 개척, 시추장비 개발 및 운영 등을 이어오고 있다.
기지 주변 모습을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한 모니터는 재밌는 관람 요소다. 흑백 모니터가 전하는 기지의 현재 상황이 실제로 현지의 추위를 실감토록 한다. 그 옆으로 우리나라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모형이 자리 잡아 늠름함을 자랑하고 있다. 쇄빙선은 이름 그대로 얼음을 부수면서 항해할 수 있는 선박이다. 아라온호는 남·북극 얼음 바다에서 극지 연구는 말할 것도 없고 기지 물품 보급 임무를 맡고 있다.
극지 강대국이 되려면 북극 연구도 빼놓을 수 없다. 북극은 수많은 수산·광물 자원을 비롯해 아직 개발되지 않은 천연가스, 석유자원이 두꺼운 얼음 아래 묻혀 있을 것으로 알려져 이곳의 보물을 찾으려는 세계의 움직임이 끊이질 않는다. 북극 석유와 가스 매장량은 각각 900억 배럴, 470억 배럴인데 이는 전 세계 매장량의 13%, 30%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는 1969년부터 아북극권 베링해에서 명태 잡이를 해왔지만 북극 연구에 관심을 보인 건 남극 탐험 이후다. 남극에 세종과학기지와 장보고과학기지가 있다면 북극엔 조선시대 과학자 정약용의 호를 딴 다산과학기지가 있다. 지구 기후와 북극 바다 생물에 관한 연구가 주다.
북극의 가치는 또 다른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전시장 벽면에 기재됐듯 북극 항로의 역할이다. 북극 항로는 북극해 빙하가 녹아서 생긴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최단 항로다. 북미와 유럽을 잇는 캐나다 해역의 북서 항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러시아 해역의 북동 항로로 나뉜다. 수에즈 운하 이용 항로보다 10일 정도 운항 기간을 단축할 수 있어 물류비 절감이 장점이다.
무주지(국제법상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은 땅)인 남극과 달리 북극은 러시아, 캐나다, 노르웨이 등 영유권을 가진 곳이 있기 때문에 이들 국가와 협의가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아라온호를 취항해 북극 항로를 탐사했고 상업 운항도 실시한 바 있다.
탐험대원과 화상 통화도
어느 정도 극지의 배경 공부를 마쳤다면 생명을 관찰할 차례다. 운석, 화석, 생물 등 극지의 비밀스러운 자연이 기다리고 있다. 조수간만의 차가 없는 남극 바다는 대형 해조류가 자라기에 안정적인 환경이다. 수심에 따라 다년생 갈조류부터 1년생 녹조류까지 여러 가지다. 평소 도서로만 접했을 법한 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식물 표본이 전시 유리장 안에 한가득이다. 북극 식물도 많다. 북극권은 일 년 중 9개월이나 춥고 어두운 날씨가 계속되지만 900종 이상의 식물이 생존한다.
▶ 1 극지 탐험 당시 실제로 쓰인 장비들 2 어린이 관람객들이 극지 식물 모형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다. 3 오래 전 지구 환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운석들 4 우리나라 첫 쇄빙선 아라온호의 모형이 전시돼 있다. ⓒC영상미디어
이와 함께 오래전 지구 환경을 그대로 간직한 운석을 살펴보는 재미도 크다. 남극 운석은 태양계와 지구, 행성 등 우주의 진화를 알려주는 매개체다. 우리나라는 2007년 남극 대륙 운석탐사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200여 개 운석을 보유해, 세계 5대(미국, 일본, 중국, 이탈리아, 대한민국) 운석 연구 국가로서 입지를 탄탄히 하고 있다.
이번 전시의 특징을 꼽자면 극지를 간접적으로 만져볼 수 있다는 점이다. 별도로 마련된 VR(가상현실) 체험존에서는 극지 탐험 난파선에 실제로 오른 것과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스노모빌(눈이나 얼음 위에서 이동할 수 있도록 스키를 부착해 만든 차량) 탑승 경험도 색다르다. 무엇보다 둘째, 넷째 일요일 오전 10시 30분이 되면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대원과 화상 통화가 연결돼 마치 남극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잠시 극지 탐험대원이 되어 간단한 모의실험을 할 수도 있다. 극지 생물들은 어떻게 추위에 맞서 생존이 가능한지 알아보는 ‘결빙 방지 물질 모의실험’이다. 모니터 위를 가볍게 손으로 누르면 현실 실험과 동일한 모습이 나타난다.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시간임에도 많은 내용이 머릿속에 스며든다. 이 밖에도 수시로 이벤트 구역에서 ‘장보고기지 모형 조립대회’, ‘극지동물 스티커 붙이기’, ‘남극으로 보내는 편지 쓰기’ 등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행사가 열리니 놓치지 말자.
극지 과학기지
남극 세종과학기지
남극 세종과학기지는 서남극 남극반도에 평행하게 발달한 남셰틀랜드 군도 킹조지섬에 위치한다. 서울로부터 거리를 따지면 1만 7240km다. 우리나라는 1986년 11월 남극조약에 가입한 이후 본격적인 남극 연구를 위해 1988년 2월 세종과학기지를 건설했다. 14개 동으로 꾸려진 이곳의 최대 수용 인원은 약 78명. 약 17명의 월동연구대가 1년 동안 상주하며 기지 유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남극 여름철인 12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는 약 100명의 하계연구대가 파견돼 극지 연구를 수행한다. 대원들은 연구 외에도 기상관측과 남극조류 생태계 모니터링 등의 업무를 한다. 주변 기지로는 아르헨티나, 러시아, 칠레, 우루과이, 브라질, 폴란드, 중국 등 총 8개국의 상주 기지가 있다.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우리나라 두 번째 남극기지인 장보고과학기지는 로스해 테라노바만 케이프 뫼비우스 인근에 있다. 이곳은 월동기지로 운영되는 영구기지로, 주변지역 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여러 정보를 얻는 관측점이다. 특히 동남극과 서남극 경계에 위치하고 있어 두 지역의 기후변화를 비교 연구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이기도 하다. 장보고과학기지 주변으로는 이탈리아의 마리오 쥬캘리기지, 독일의 곤드와나기지가 운영되고 있다.
북극 다산과학기지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군도 니알슨에 자리한 북극 다산과학기지는 북극 연구를 위해 꼭 있어야 하는 곳이다. 다산과학기지는 비상주 기지로 운영 중이며 매년 하계기간에 약 60명의 국내외 연구자들이 하계 연구 활동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 북극해 해빙 분석을 통한 기후변화 연구, 우주 및 고층대기 환경 변화 연구, 해양 및 육상 생태계 모니터링, 극한지 유용생물자원 연구 등이 주로 이뤄진다.
자료│극지연구소 누리집
2018 극지체험전시회
일시 11월 30일까지 (9시 30분~17시 30분, 월요일 휴관)
장소 대전 국립중앙과학관 특설전시장
관람료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