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시대 배경의 한 스튜디오. 진한 메이크업을 한 예비 신부와 멋들어진 턱시도를 입은 예비 신랑이 서 있다. 인공조명으로 연출한 오후의 햇살이 마치 후광처럼 비친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이 신부의 면사포를 저만치 날린다. 그 순간 찰칵! 작품이 따로 없다. 그런데 잠깐.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사진인데?
멋지긴 한데 어딘가 구태의연하다. 한때 결혼식 필수 패키지에 포함됐던 ‘스튜디오 촬영’. 이제는 점차 축소되는 분위기다. 대신 둘만의 웨딩사진을 위해 셀프 촬영에 도전하는 커플들이 늘어나고 있다. 동시에 작은 결혼식 문화 확대에도 기여한다.
이동현·손선혜 씨 부부도 그중 하나다. 지난가을 백년가약을 맺은 이들 부부는 결혼식을 3개월 앞두고 제주도로 떠났다. 웨딩 촬영이 주목적인 여행이었다. 짐 가방은 간소했다. 카메라와 삼각대만 추가했을 뿐이다. 이 씨는 “전문 사진사 없이 삼각대로 찍기로 했지만, 촬영을 앞두고 걱정을 많이 한 게 사실”이라면서 “그런데 훨씬 자연스러운 연출이 가능했고 결과물도 만족스럽다. 실제로 신부가 활짝 웃고 있는 컷은 진짜 웃겨서 웃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커플의 셀프 촬영에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았다. 교통비와 숙박비가 전부다. 가지고 있던 복장을 최대한 활용했고, 화환 및 부케 등 소품은 손재주가 좋은 손 씨가 직접 만들었다. 손 씨는 “예쁜 드레스를 입고 싶다면 의상 대여 사이트를 활용하면 된다. 10만 원대 안팎으로 대여 가능한 곳이 많다”면서 “또한 각 대학교 의상과 학생들이 졸업 작품으로 만든 드레스를 저렴하게 구입하는 방법도 있다”고 귀띔했다.
▶ 제주 사려니 숲에서 셀프 웨딩 촬영을 한 이동현·손선혜 씨 부부 ⓒ이동현
장소는 제주 사려니 숲으로 택했다. 이 씨는 “예전에 가족 여행으로 가봤던 곳인데, 웨딩 촬영으로 좋을 것 같았다”면서 “셀프 웨딩 촬영은 장소 선정이 관건이다. 사람이 많은 복잡한 공간은 욕심이 나더라도 초보자는 피하는 게 좋을 듯하다. 조용한 수목원이나 숲처럼 인적이 드문 곳이 집중하기도 좋고 사진도 예쁘게 나온다”고 했다.
전문 사진작가 15인 추천, 전국 18곳
어디 제주 사려니 숲뿐인가. 여성가족부에서는 작은 결혼 문화 확산을 위해 ‘전국 셀프 웨딩 촬영 명소’를 발표했다. 이번에 선정된 명소는 웨딩 전문 사진작가 15인의 추천을 받은 전국 6개 권역(서울, 강원, 충청, 경상, 전라, 제주) 총 18곳이다.
봄·여름 추천지로 빌딩숲 사이 연초록 물결을 담을 수 있는 ‘서울숲’(서울·수도권), 연인들의 성지로 불리는 ‘남이섬’(강원권), 폐교가 예술 스튜디오로 재탄생한 ‘당진 아미미술관’(충청권) 등이 꼽혔다.
가을·겨울 추천지로는 한옥의 선이 담기는 ‘남산골한옥마을’(서울·수도권), 드라마 ‘도깨비’ 속 커플이 돼볼 수 있는 ‘고창 메밀밭’(전라권), 동화 속 나라를 연상시키는 ‘독일 마을’(경상권) 등이 꼽혔다.
여성가족부는 일부 명소에서 실제 예비부부들을 모델로 사진을 촬영해 ‘셀프 웨딩 촬영 명소’ 홍보 콘텐츠 제작 및 확산에 나설 계획이다. 이에 따라 지난 5월 예비부부들의 신청을 받아 총 6쌍을 선발했으며, 사진작가와 함께 이달 내 봄·여름 명소에서 사진 촬영을 진행한다.
사진은 작은 결혼 ‘셀프 촬영하기’ 홍보 콘텐츠로 제작돼 작은결혼정보센터 누리집(www.smallwedding.or.kr)과 페이스북에 올라간다. 올 하반기에는 새로운 예비부부들을 모집해 가을·겨울 추천 명소 홍보 콘텐츠를 제작할 예정이다.
▶ 1 독일 마을 2 창덕궁 후원 3 담양 관방제림 4 순천만 갈대밭 ⓒ조선DB
작은결혼식 으뜸 명소도 15개소 선정
조민경 여성가족부 가족정책과장은 “최근 많은 예비부부가 셀프 웨딩 촬영을 진행하는 등 직접 ‘나만의 의미 있는 작은 결혼식’을 준비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며 “앞으로도 특색 있는 국내 신혼여행지,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작은 결혼식 모델 등 작은 결혼 준비 과정에서 예비부부가 실제 활용할 수 있는 실속 있는 정보를 계속 개발해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셀프 웨딩 촬영으로 거품 쏙 뺀 커플들. 그렇다면 결혼식은 어디서 올리면 좋을까.
여성가족부에서는 지난해 작은 결혼식 으뜸 명소를 선정, 발표하기도 했다. 일반에 개방돼 있는 공공시설 예식장이다. 으뜸 명소는 전국 220개소 공공시설 예식장 가운데 시도별 관계자의 추천을 기반으로 ▲이용자 편의성 ▲인기도 ▲이용 실적 ▲지역 특성 등을 고려해 서울 시민청, 경기 굿모닝하우스, 경남 도민의 집 등 15개소가 선정됐다.
서울 시민청은 서울시청이라는 상징성과 1일 1회 예식이라는 점, 예비부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경기 굿모닝하우스와 경남 도민의 집은 도지사 관사를 활용했다는 특색을 지녔으며, 전남 농업박물관 혼례청은 풍물놀이 등 공연과 함께하는 전통 혼례가 가능하다.
자세한 정보는 작은결혼정보센터 누리집(www.smallwedding.or.kr)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이용 신청은 개별 시설로 인터넷 및 방문 접수하면 된다.
한편 여가부에 따르면 일반적인 평균 예식 비용은 2425만 원(2016 듀오웨드 조사)이나 청와대 사랑채 같은 공공기관의 결혼식 비용은 1000만 원 미만을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014 생활개혁실천협의회 조사).
박지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