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우리 일상에 스며들면 뜻밖에 큰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많은 차 애호가가 입을 모아 차를 찬양하는 것은 차가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차’라는 공통 매개체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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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즐기는 일은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이죠”
박혜정 오후의 작은 선물 대표
‘홍차’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화려하게 수놓은 풍성한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 귀부인의 손짓에 따라 살랑이는 깃털 달린 부채, 마카롱이나 마들렌 같은 디저트를 올려놓은 삼단 트레이, 정교한 문양이 새겨진 찻잔을 떠올리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유럽에서 즐기는 고급 차 문화라는 편견 아닌 편견 때문일까. 한국에서 홍차의 위상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현저히 낮다. 그러던 중 인스턴트 아이스티가 큰 인기를 끌면서 홍차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점차 늘어났다. 아이스티도 됐다가 밀크티도 됐다가 다양한 향이 나는 블렌딩 티까지, 홍차의 다양한 변주 때문인지 홍차를 즐겨 마시는 마니아층도 두터워지는 추세다.
▶ 서울 동교동에 있는 카페 샌드박 한켠에서는 매주 홍차 클래스가 열린다. 홍차 클래스에서 홍차에 대한
기초지식부터 홍차 고유의 맛을 살리는 블렌딩까지 다양하게 홍차를 즐기는 법을 배운다. ⓒ박혜정
나만의 홍차를 찾아가는 홍차 클래스
서울 동교동에 있는 ‘오후의 작은 선물’은 헤어날 수 없는 홍차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모이는 ‘홍차 성지’다. 이곳에서는 이제 막 홍차의 세계에 발을 디딘 이들을 위한 수업이 열린다. 오후의 작은 선물은 ‘카페 샌드박’ 안쪽에 자리해 있다. 홍차 공방인 오후의 작은 선물로 들어서면 벽면을 크게 차지한 찻장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찻장에는 박혜정 대표가 10년이 넘도록 모은 홍차 300여 종이 빈틈없이 자리를 메우고 있다.
“샌드위치에 어울리는 음료를 찾다가 홍차의 매력에 빠졌어요. 홍차를 접한 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서 국제차문화협회의 티마스터 2년 과정을 수료해 전문 자격증을 땄죠. 그런데 자격증을 딴다고 해서 홍차에 대해 잘 알게 되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결국 다양한 홍차를 접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 가지 홍차를 모으다 보니 정말 다양한 형태로 즐길 수 있는 매력 있는 차라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죠. 많은 사람이 홍차의 매력을 알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공방을 열고 홍차 클래스도 운영하게 됐어요.”
홍차를 사면 패키지 하나당 티백이 30여 개 들어 있다. 한 가지 종류만 30번 정도 마시면 아무리 홍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금방 질리게 마련이다. 홍차와 빨리 친해지려면 다양한 종류의 홍차를 접해보는 것이 좋다. 오후의 작은 선물 홍차 클래스는 선물 받은 티백, 사놓고 질려서 남게 된 티백을 가져와 서로 나누며 다양한 홍차를 즐기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박 대표가 모은 홍차도 맛볼 수 있다.
홍차를 배우려는 사람들은 연령대가 다양하다. 20대 대학생, 30대 직장인, 40대 주부, 50대 아저씨까지. 저마다 목적이 다르지만 홍차에 대해 알고 싶다는 마음만은 같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총 6주간 홍차의 기초를 배우는 수업이 진행된다. 1주 차에는 홍차의 역사와 다구, 2주 차에는 홍차 메뉴와 골든 룰, 3주 차에는 세계 3대 홍차, 4주 차에는 홍차와 블렌딩, 5주 차에는 아이스티 만들기, 6주 차에는 스콘과 클로티드 크림 만들기를 배운다. 6주 과정을 통해 홍차의 기초를 터득한 후 정규 티마스터 클래스 수업을 들으면 된다. 총 10주간 진행되는 티마스터 과정은 자신만의 차 레시피 개발 및 다양한 블렌딩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됐다. 산지별, 블렌딩별 여러 종류의 홍차를 맛본 다음 직접 블렌딩을 해 홍차 고유의 맛을 살리고 최적의 배합을 찾는 과정까지 배운다. 또한 홍차 메뉴와 티파티를 기획하는 법도 배울 수 있다.
바쁜 현대인을 위한 원데이 클래스도 열린다. 수제 티백 만들기, 세계 3대 홍차 맛보기, 스콘이나 마들렌 같은 티푸드와 홍차 마시기, 밀크티 만들기 등 다양한 주제로 홍차에 입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 입맛에 맞는 홍차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홍차를 마실 때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을 먼저 떠올리면 쉽다. 커피에 비유하자면 아메리카노만 마시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찻잎으로만 구성된 깔끔한 맛의 스트레이트 티를 선호한다. 카페라테를 선호하는 사람은 캐러멜 향이나 바닐라 향이 들어 있는 부드러운 밀크티 타입의 가향차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산미가 풍부한 커피, 과일 향이나 꽃 향이 나는 커피, 시나몬·귤피 같은 향신료가 들어간 음료를 선호한다면 서로 다른 찻잎을 섞은 블렌딩 티를 추천한다. 평소 자신이 즐기는 차를 세심하게 관찰해야 입맛에 맞는 홍차를 선택할 수 있다. 이 과정을 박 대표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홍차의 매력은 자신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데 있어요. 그래서 차를 마시는 시간이 좋아요. 본인의 취향에 맞는 차를 고르면서 몰랐던 자신의 취향에 대해 알 수 있죠. 차를 통해 나와 친해지는 거예요. 차를 마시는 시간이 많을수록 편안해지고 삶의 여유가 생겨요. 이런 여유와 과정을 다른 사람과 즐기고 싶다면 ‘차 한잔 마시자’라고 말해보세요. ‘차 한 잔 마시자’는 말은 한자리에 앉아서 차를 세 시간 정도 마시고 화장실도 두어 번 다녀올 정도 되는 시간을 공유하자는 뜻이에요. 그 시간 동안 온전히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집중할 수 있는 거죠. 차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훌륭한 매개체예요.”
임언영·장가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