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2일 부처님오신날, 영화관 안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떠들썩했다. 관객의 비중은 어린이와 이들의 보호자가 절반, 그리고 공휴일을 맞아 영화관 나들이를 온 성인 관객이 절반 정도 됐다. 어린이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러도 눈살을 찌푸리거나 주의를 주는 어른은 없었다. 어른들 역시 영화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제목은 ‘피터 래빗’, 포스터를 보면 푸른 재킷을 입은 토끼 한 마리가 늠름하게 서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토끼’답다.
동화를 넘어 영화로 ‘깡충’ 뛰어오른 토끼, 피터 이야기
▶ <피터 래빗 이야기>의 작가 베아트릭스포터. 그는 책의 그림도 직접 그렸다.
영화 ‘피터 래빗’은 1902년 영국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가 지은 동화를 원작으로 한다. 이 동화는 전 세계 36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고, 1억 부 이상 판매됐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최고의 아동문학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이 동화가 영화로 만들어진 건 처음이다. 지난 2월 북미에서 개봉한 이래 영국, 독일, 호주, 헝가리, 뉴질랜드 등 22개국에서 개봉했다. 한국에서는 5월 16일 첫선을 보였는데, 23일 현재 23만 관객을 돌파하며 순항 중이다.
‘피터’는 원작자 베아트릭스 포터가 실제로 기르던 토끼의 이름이다. 벤저민과 피터라는 토끼를 키우던 베아트릭스 포터는 가정교사의 아들 노엘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소년을 위로하기 위해 동화를 짓는다. <피터 래빗 이야기>다. <피터 래빗 이야기>에는 피터뿐 아니라 피터의 사촌 벤저민과 세 쌍둥이 여동생 플롭시, 몹시, 코튼테일도 등장한다. 피터의 어머니는 항상 말했다.
“들판에 나가거나 길을 따라가는 건 좋지만 맥그리거 씨 텃밭에는 들어가면 안 된다. 네 아버지는 멋모르고 거기 들어갔다가 맥그리거 부인의 파이가 되었단다. 이제 나가 놀아라, 말썽 부리지 말고.”
어머니 말씀대로 얌전히 들판에서만 놀았다면 ‘피터 래빗’이 아니다. 피터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리고 야생동물의 들판을 무단 침입해 텃밭을 만든 맥그리거 씨에게 대항하기 위해 용감하게 맥그리거의 땅에 들어간다. 영화에서는 이 장면을 이렇게 표현한다. 영화 속 피터는 그저 개구쟁이 토끼가 아니라 모험가이자 영웅의 모습이다. 피터는 맥그리거의 땅을 되찾기 위해 작전을 세우고 훈련도 한다. 겁에 질린 동료들을 설득하는 것도 피터의 몫이다. 베아트릭스 포터는 어릴 적부터 스케치북에 늘 새의 알이나 나비 애벌레, 토끼 등을 가득 그렸다고 한다. 자연을 관찰하는 게 일상이었던 포터에게 동물은 저마다의 성격과 사연을 가진 친구들이다. 피터가 힘들 때면 나타나 노래를 불러주는 참새들이나 연못에서 낚시를 즐기는 개구리 제러미, 앞치마를 두르고 먹을 것을 찾아다니는 고슴도치 티기윙클, 뭐든지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깔끔돼지 블랜드 등은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동화든 영화든 조연들의 캐릭터가 살아 있어야 주연의 캐릭터가 빛나는 법이다. 영화 ‘피터 래빗’ 제작진은 원작 느낌을 그대로 담기 위해 원본 일러스트를 실사로 구현하는 데 힘을 쏟았다. 토끼뿐 아니라 여우, 참새, 사슴, 고슴도치 등 동물마다 다른 털의 방향이나 먼지나 바람에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을 반영했다.
하지만 피터의 상대는 맥그리거 할아버지다. 어떻게 할아버지의 손에 잡히지 않고 야생동물들에게 먹을거리를 가져다줄 것인가. 피터에게는 생존의 문제이자 자존심이 걸린 일이다. 영화는 대결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기 위해 도시에서 온 할아버지의 손자 토마스를 투입한다. 결벽증에 사회성이 결여된 도시 남자 토마스 역은 ‘어바웃 타임’으로 잘 알려진 도널 글리슨이 맡았다.
원작자 베아트릭스 포터의 영화 같은 삶
▶ 1 2 3 영화 ‘피터 래빗’ 스틸컷
영화를 찍은 곳은 영국의 레이크 디스트릭트다. 자연의 풍광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작은 마을인 이곳은 원작자인 베아트릭스 포터가 실제로 살았던 곳이자 <피터 래빗 이야기>를 집필한 곳이다. 포터는 이곳에서 정원도 가꾸었다. 동물 중 그가 사랑했던 게 토끼였다면, 식물 중에서는 버섯이었다. 왕립식물원에서 버섯을 연구했던 포터는 버섯을 주제로 논문도 썼다. 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논문은 발표되지 못했다. 포터가 살았던 빅토리아 시대(1837~1901년)는 신분제도의 벽이 공고한 동시에 급속한 산업혁명과 지역개발로 자연이 훼손되던 시기였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꾸준한 창작으로 시대에 저항했다. 포터는 <피터 래빗 이야기>의 글뿐 아니라 그림도 직접 그렸다. 완성된 책을 들고 여러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출판사들은 그의 책을 거절했다. 결국 포터는 1901년 250부를 자비로 출판했다. 책은 당시 1실링 2펜스였다. 늠름하고 용감한 토끼의 이야기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셜록 홈즈>의 작가 코난 도일도 자신의 자녀들에게 사줄 정도였다. 1년 뒤 <피터 래빗 이야기>는 프레더릭 원 출판사와 정식 계약을 맺고 컬러판으로 출간되었으며 2년 만에 5만 부의 판매 기록을 세웠다. 책은 지금도 1년마다 200만 권, 1분마다 4권씩 팔리는 베스트셀러다. 한국에서도 올해 한 권으로 읽는 <피터 래빗 전집>이 출간됐다.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정원을 지켜내는 ‘피터 래빗’의 이야기는 베아트릭스 포터의 삶과 맞닿아 있다. 책의 성공 이후 베아트릭스 포터는 환경운동가가 된다. 자신의 인세 수입으로 산 땅을 기증한다. 이 땅은 훗날 ‘내셔널트러스트’라는 세계적인 환경보호기구가 된다. ‘피터 래빗’은 결국 자신에게 소중한 정원과 가족 그리고 푸른 재킷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작은 토끼의 이야기다. 그의 고군분투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을 울려 영화로 재탄생했다. 이 영화는 아직 한글을 모르는 아이의 마음부터 인생을 알게 된 어른의 마음까지 하나로 만든다. 한 편의 영화 같은 이야기다.
유슬기│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