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산에 안 갈래요?"
3년 전 등산이 취미인 동료가 툭 한마디를 던진 것이 계기였다. 계절은 가을, 목표는 단풍 구경이다. 초보자도 하이킹 기분으로 오를 수 있는 산으로 정했다. 간편한 복장으로 따라나섰다. 하의는 트레이닝복, 상의는 면 셔츠다. 흡수된 땀을 잘 배출하지 못해 기온이 떨어지면 급격히 몸이 차가워지는 면 소재 옷은 등산할 때 금물인 것도 몰랐다. 몸은 지쳤지만 선두에 섰다. 폭이 좁고 마른 계곡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말라 있던 눈물샘이 터지기 시작했다.
서른아홉 살에 문예지 부편집장으로 있는 이 여자. 남자친구와는 3년 전에 헤어진 싱글이다. 얼핏 보면 '골드미스' 조건을 두루 갖췄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상사 때문에 울화통이 터지고, 후배들의 일 처리는 마음에 들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건강하던 몸도 하나둘 삐걱댄다.
잔뜩 쌓여 있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산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등산 입문서를 몇 권 읽고 초보자에게도 무난한 산을 하나씩 착실히 올랐다. 기본적으로 혼자가 좋았다. 마침내 깊고 험하기로 유명한 일본의 북알프스 도전에 나선다. 배낭을 싼다. 짧으면 2박 3일, 길면 5박 6일이다. 산을 마음껏 즐기기 위해선 역시 가을이 좋다. 고산은 7, 8월이 성수기라 9월 말에는 산장이 비어 있다. 자연은 길을 나서는 사람에게만 숨겨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능선을 따라가기 때문에 절경이 계속된다. 하늘과 산들을 독점한다. 거대한 솜사탕을 길게 늘여놓은 것 같은 구름을 옆으로 보면서 걷는다. 최고의 호사인 동시에 이 세상에 나만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외로움이 밀려온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광경을 계속 보고 있다는 행복함과 몸을 부들부들 떨게 하는 적막감, 이 두 감정이 한류와 난류처럼 교차한다."
겨울 산행은 준비물이 더 필요하다. 필요한 물건을 사고 컨디션 조절에 나선다. 눈길과 진흙탕, 얼어붙은 땅에 미끄러운 경사면까지 체력이 많이 소모된다. 단체로 움직이는 것이 사고를 예방하는 길이다.
"자, 이제 출발!" 버스에 탄다. 오늘 산행 파트너는 스무 명이 넘는다. 자기소개를 마치고 산 아래 호텔에 도착했다. 눈이 펄펄 내리고 있다. 길 양쪽은 활엽수림으로 나뭇가지가 눈으로 덮여 있다. 말소리도 눈에 흡수돼버릴 것 같다. 조금 높은 언덕으로 나아간다. 거기서부터 20m는 급경사다. 마음대로 미끄러져도 괜찮은 곳이다. 엉덩이로 밀고 내려가도 상관없다. 하산 후에는 근처 온천으로 향한다. 얼었던 몸이 스스로 녹는다. 설경이 준 마법 같은 시간을 지나 완전한 해방감을 느끼는 순간이다.
산은 계절마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의 주인공은 산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조금씩 마음의 상처를 극복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헤어진 남자친구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된다. 이 책은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산을 오르며 '자신을 만나고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혼자만의 산행일기를 엿보는 느낌이다.
8월의 6일간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 민경욱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74쪽 | 1만3000원
글 · 윤용근 (위클리 공감 기자) 201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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