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얼어 죽지는 않겠지. 여차하면 히터를 켜지 뭐."
2007년 1월 중순이었던가, 기온이 영하 15℃가량인 겨울날에 '반 노숙'을 한 적이 있다. 미국 뉴멕시코주 샌타페이 인근에서였다.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침낭 두 개를 겹친 뒤 그 속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영하의 날씨에 밖에서 자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라 긴장했지만, 두 겹 침낭의 위력은 컸다.
이튿날 새벽 냉동 창고 같은 침낭 밖으로 몸을 내놓기가 꺼려졌을 뿐, 침낭 속은 여전히 따뜻했다. 물론 차 안 한구석에 놓아둔 물병들은 다 얼어 있었다.
만물이 다 얼어붙는 날씨에 사람이 나신으로 건물 밖에 서 있는다면 수십 분도 못 버티고 불귀의 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난방이나 보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한대지방 날씨에 적응해 겨울을 무사히 나는 동물들은 두툼한 가죽과 풍성한 털이 있어 사람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추위를 이기고 살아남는다. 게다가 동물들은 햇빛이 잘 드는 곳, 바람을 막을 수 있는 곳, 동굴이나 땅굴 등으로 이동하며 한기에 노출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제자리에 서서 꼼짝도 못 하는 나무들은 수은주가 아무리 곤두박질쳐도 그야말로 오도 가도 못 하고 견뎌내야 한다. 나무도 엄연히 살아 있는 생명체인데, 어떻게 매서운 한파를 견디고 봄에 다시 꽃을 피울 수 있는 걸까? 나무가 동물보다 대체로 추위를 더 잘 견딘다는 점은 경험적으로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수은주가 한없이 곤두박질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무리 추워도 제자리에 서서 이겨내야 하는 나무들에게는 수액을 빼버리거나 부동액을 만들거나 헛물관의 지름을 줄이는 등 나름의 생존 전략이 있다.
이른바 '수림 한계선(Tree Line)'의 존재에서도 알 수 있듯, 연중 날씨가 추운 극지방이나 고산지대에서는 나무가 생존하기 어렵다.
학계 연구에 따르면 나무는 겨울철 영하 40℃ 이하로 온도가 내려가는 지역에서도 죽지 않고 살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활엽수는 겨울철 영하 40℃ 이하로 빈번하게 수은주가 하강하는 지역에서는 번식하기 힘들다.
추위에 비교적 강한 것으로 알려진 단풍나무, 참나무 등이 고위도 지방이나 고산지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유다. 반면 소나무 등 대다수의 침엽수와 사시나무 등 일부 활엽수는 더 추운 지역에서도 상대적으로 잘 자란다.
영하 40℃ 이하까지는 아니더라도 결빙이 자주 발생하는 추운 겨울을 무사히 나는 나무들에게는 나름의 '비결'이 있다. 가장 흔한 게 수액의 흐름을 차단하고, 세포에서 물을 빼버리는 것이다. 세포에 수분이 적으니 얼음이 제대로 얼 수 없다. 또 다른 흔한 방식은 '부동액'을 만드는 것이다.
차량의 부동액이 화학첨가물 때문에 빙점이 낮듯, 식물들도 당분 등을 합성해 세포 내 수분이 어는 온도를 낮춘다. 단풍나무나 고로쇠나무 수액 등이 대표적이며 사과나무, 장미 등도 비슷한 방식으로 부동액을 만들어 빙점을 낮춘다.
그런가 하면 극단적으로 추운 겨울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는 침엽수의 '몸'에는 좀 더 정교한 방한 메커니즘이 있다. 침엽수는 온도가 낮더라도 햇빛만 있으면 초겨울이나 초봄에도 광합성을 할 수 있다. 광합성을 하려면 물이 꼭 있어야 하는데, 물을 나르는 헛물관의 지름이 활엽수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
헛물관의 지름이 작다 보니 설령 헛물관이 얼어도 기포가 잘 발생하지 않는다. 얼면서 기포가 생기면 기포가 빠져나오면서 나무 조직에 손상을 줄 수 있는데, 침엽수에서는 기포가 생겨도 아주 크기가 작아 나무 조직으로 다시 흡수될 뿐 조직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
글 · 김창엽 (자유기고가) 2016. 02.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