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11월 25일 오후 부산 해운대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양자회담을 하고 있다.│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경제협력 성과와 기대 효과
11월 25일부터 27일까지 정부는 한·아세안 대화관계 수립 30주년을 기념한 정상회의이자 문재인정부 들어 최대 규모의 다자 정상회의인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및 제1차 한·메콩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회의 기간 동안 공식 회의 및 행사 참석은 물론, 아세안 정상들과 연쇄 양자회담 등으로 ‘확고한 경제협력 기반’을 마련했다. 회의를 통해 ‘평화, 번영과 동반자 관계를 위한 공동비전 성명’ ‘공동의장 성명’ 그리고 ‘한강·메콩강 선언’도 채택했다.
11월 27일 주형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에 따르면 이번 회의 결과 세부 분야별로 경제, 사회·문화, 평화·안보 등 전 분야에 걸쳐 다양하고 풍성한 성과가 나왔다. 그중에서도 현대자동차의 인도네시아 진출 등 신남방정책의 추진 동력을 확보하는 실질적인 경제협력 성과도 여럿 눈에 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제1차 한·메콩 정상회의 후 누리소통망(SNS) 메시지를 통해 “아세안 열 개 나라와 우정을 쌓으며 우리는 더 많은 바닷길을 열었다”면서 “어려운 고비와 갖은 난관이 우리 앞에 있더라도 교량국가의 꿈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문 대통령은 “아세안과 경제협력은 서로의 미래 세대에까지 많은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며 “우리는 강대국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는 나라가 아니라, 강대국들을 서로 이어주며 평화와 번영을 만드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및 한·메콩 정상회의가 남긴 아세안 국가별 실질적인 경제협력 성과와 이를 통한 기대 효과를 살펴봤다.
한·인도네시아 CEPA 최종 타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첫날이던 11월 25일 한국은 인도네시아와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을 최종 타결했다. 2012년 3월 양국 간 협상을 시작한 지 7년 만에 이룬 결실이다.
이번 타결로 5~15% 부과되던 자동차 트랜스미션·선루프 관세는 즉시 무관세로 바뀐다. 또 열연강판(5%), 냉연강판(5~15%), 도금강판(5~15%) 등 철강 제품과 합성수지(5%), 자동차 및 부품(5%) 등의 품목도 관세가 철폐되면서 국내 기업의 인도네시아 진입 장벽도 크게 낮아졌다. 특히 그동안 인도네시아에서는 일본산 자동차 점유율이 96%일 만큼 일본의 시장점유율이 매우 높았지만 이번 CEPA 최종 타결로 한국이 일본과 비교할 때 전반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인도네시아 완성차 공장 건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계기로 현대차는 인도네시아에 완성차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현대차가 아세안 지역에 공장을 설립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1월 26일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 루훗 빈사르 판자이탄 해양투자조정부 장관은 직접 현대차 울산공장을 방문해 정의선 수석부회장과 현지 공장 건설을 위한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이는 2030년까지 15억 5000만 달러(1조 8000억 원)가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다.
2018년 아세안 지역에서 판매된 약 360만 대 신차 중 약 32%인 115만 대가 인도네시아에서 판매되는 등 인도네시아는 앞으로 완성차 시장이 급성장할 수 있는 곳이다. 인도네시아는 아세안 10개국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은 데다, 평균연령 29세의 젊은 인구구조 등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차는 당장 올해 연말부터 약 77만 6000㎡ 부지의 인도네시아 현지 공장 건설에 들어가 2021년 말 15만 대 규모로 공장을 완공한 후 향후 생산능력을 연간 25만 대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차종은 아세안 전략 모델로 개발한 소형 스포츠실용차(SUV)와 소형 다목적 차량, 전기차 등이 검토되고 있다.
앞서 정부가 인도네시아와 CEPA를 최종 타결하면서 누리는 효과도 클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에 현대차 완성차 공장이 건설되면 엔진과 미션 및 주요 부품을 현대모비스 등 협력사에서 공급받아야 하는데, 철강 제품 및 자동차 부품 관세가 철폐되면서 부품 수급이 원활해지는 등 기반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관세 철폐 등의 문제가 해결돼 공장 설립 및 물류 측면에서 부담을 덜게 됐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세안 각국 정상들이 11월 26일 부산 벡스코 제1전시장에서 2019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부대행사로 열린 혁신성장 쇼케이스에서 현대자동차의 수소전기차 넥쏘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한·필리핀 FTA, 조기성과 패키지 합의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라몬 로페즈 필리핀 통상산업부 장관은 11월 25일 한·필리핀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상품협상 조기성과 패키지에 합의하고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
조기성과 패키지에 합의했다는 것은 두 나라가 개방 가능한 품목을 확인했다는 뜻이다. 최종 타결은 2020년 상반기가 될 전망이다. 이번 조기성과 패키지 합의로 필리핀 측은 자동차 부품, 의약품, 일부 석유화학제품 등을 개방하고 우리 측은 바나나, 의류, 자동차 부품(에어백) 등을 개방하기로 했다. 이번 패키지는 추후 협상 과정에서 상호 추가 양허 개선 협의를 거쳐 최종 한·필리핀 FTA 협상 결과에 반영될 예정이다.
캄보디아·베트남, 이중과세방지협정 체결 및 개정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은 캄보디아, 베트남과 이중과세방지협정을 체결 및 개정했다. 기획재정부와 캄보디아·베트남 경제재정부 간 체결된 이중과세방지협정은 외국에서 수익을 낸 기업이 외국이나 본국 중 한 곳에만 세금을 납부하는 제도다.
한국은 베트남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세부담을 줄이기 위한 이중과세방지협정 개정의정서를 타결한 데 이어, 10개국 중 마지막이던 캄보디아와도 협정을 맺어 해외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부담이 덜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아세안 금융협력센터 설치 가시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아세안 금융협력센터 설치도 가시화됐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공동의장 성명에는 금융협력센터 설립을 위한 근거가 명시됐다.
그동안 신남방권에 금융협력센터를 설치하려던 정부로서는 아세안 회원국의 동의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 금융협력센터가 정식으로 가동하면 한국의 대(對)아세안 금융 전반을 아우르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는 금융협력센터를 통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주재 아세안대표부, 아세안 각국 주재 한국 대사관, 현지 진출 공공기관 등과 유기적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아세안 진출과 아세안 인프라(사회간접자본) 사업 참여를 돕게 된다.
아세안 지역 금융시장은 인구와 높은 경제성장률을 바탕으로 계속 성장 중이며, 국내 금융회사들의 현지 진출 수요가 큰 상황이다. 2019년 6월 말 기준으로 국내 금융사들이 아세안 지역에 연 점포는 150개에 이른다.
이들 금융사가 확보한 해외 점포에서 아세안권의 자산 비중은 14% 수준이지만, 당기순이익은 전체의 29%(2018년 말 기준)를 차지한다. 또 아세안 지역 금융회사들의 대출 규모도 약 167억 달러로 2015년 대비 92% 증가하는 등 국내 금융회사들의 현지 진출 수요가 높은 상황이다.
한·아세안 스타트업 협력 파트너십 구축
아세안과 한국 간 스타트업 생태계 협력을 위한 파트너십을 구축한 것도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통해 거둔 결실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11월 29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제1회 중기부-중소기업조정위원회(ACCMSME) 정책 대화를 개최했다. 이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이후 공동의장 성명의 실질적 이행을 위한 첫 행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정부는 아세안 주요 국가 중심으로 양자 간 스타트업 협력을 추진했는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계기로 앞으로는 아세안 차원에서 다양한 스타트업 협력사업을 추진할 기반이 마련됐다. 정부는 앞서 진행한 1차 대화에서도 한·아세안 스타트업 페스티벌 개최, 한·아세안 대·중견기업 및 스타트업 매칭사업 운영, 한·아세안 스타트업 플랫폼 구축 등을 제안해 아세안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중기벤처부 관계자는 “이를 통해 우리 스타트업의 성장 발판을 마련하고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도록 정부 간 협력을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청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