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프로축구 역사가 30년을 훌쩍 넘지만 올해처럼 다사다난하고 극적이었던 시즌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 해농사를 결정짓는 K리그 클래식(2016년 3월 2일~11월 6일) 챔피언 트로피의 주인공 자리는 시즌 내내 ‘절대 1강’으로 꼽혔던 전북이 아니라 꾸준히 2위권을 유지했던 FC서울에 돌아갔다. 그것도 서울이 전북과 시즌 최종전 원정경기에서 박주영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하며 일궈낸 대역전 우승이었다. 챔피언 서울의 최종 승점은 70점(21승7무 10패)이고 2위 전북은 67점(20승 16무 2패)이었다. 전북이 실제로 거둬들인 승점은 76점이었지만2013년 있었던 심판 로비 사건의 내용이 올해 알려지면서 결국 한국프로축구연맹(KL)으로부터 승점 9점 감점의 징계를 받았다. 그 결과 서울이 ‘어부지리’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6 시즌은 막을 내리게 됐다.
전북의 9점 감점으로 우승 트로피 들어 올린 FC서울
전임 최용수 감독과 후임 황선홍 감독의 합작품
서울은 올 시즌 중반에 최용수 감독이 훌쩍 중국 슈퍼리그 장쑤로 팀을 옮기는 등 큰 홍역을 치렀다. 2011년 이후 5년 넘게 서울의 지휘봉을 잡으면서 자신의 색깔을 강하게 팀에 이식했던 최 감독이 시즌 중반 팀을 떠나자 서울 구단은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울은 발 빠르게 지난해 포항에서 퇴임한 뒤 유럽에서 축구 유학을 하고 있던 황선홍 감독을 영입하며 그 공백을 메웠다.
한때 K리그 최고의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던 최용수 감독의 뒤를 이은 황선홍 감독은 전임자가 구축한 선수단 구성과 스리백 위주의 전술을 놓고 자신의 축구 철학을 가미하기 위해 고심했지만 일정 정도의 시행착오는 불가피했다. 이 과정에서황 감독은 중국에 있는 최 감독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최 감독이 워낙 서울 선수들과 팀 상황을 잘 알고 있어 내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다. 전북과 최종전을 앞두고도 대화를 나눴는데 최 감독도 고민을 많이 했던 상대인 만큼 서로 도움이 되고 교감이 이뤄졌다"고 털어놓았다.
▶FC서울은 시즌 중반 최용수 감독이 이적하는 어려움을 딛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1월 6일 전북을 1-0으로 꺾고 우승이 확정되자 선수들과 팬들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
황 감독은 서울에 부임한 이후 최종전을 치르기 전까지 전북과 세 차례 맞대결을 펼쳤는데 처음 두 경기에서 큰 점수 차로 완패를 당했다. 두 팀의 객관적인 전력과 맞대결에서 드러났듯이, 황 감독이 아직 서울에 자기 전술을 확실히 심지 못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양팀 간의 최종전 판세는 전북이 크게 우세할 것이라는 게 축구계의 일반적인 예상이었다. 하지만 황 감독은 마지막 경기에서 박주영과 아드리아노를 벤치에 앉히는 파격적인 선발 라인업으로 상대의 허를 찌른 뒤 이전 경기에서 볼 수 없었던 강한 압박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며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되는 데 성공했다. 포항 시절부터 유독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전북에 강했던 황선홍 감독의 진면목이 드러난 한판이었다.
그는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감독’에 선정된 뒤 의미 있는 두 마디를 남겼다. 하나는 "(전임자) 최용수 감독에게는 이 트로피를 모두 줄 수 없고, 반만 주겠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올해 서울의 우승은 ‘최용수+황선홍’ 두감독의 합작품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른 하나는 "원래 이 상은 최강희 감독님이 받아야 마땅하다. 시즌 내내 보여준 전북의 경기력은 분명히 그럴 자격이 있다"는 말이었다. 상대의 승점 감점으로어부지리 우승을 차지한 것에 대한 겸양의 표현이었고, 내년 시즌에는 반드시 온전한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FC서울 선수들은 감독 교체의 혼란 속에서 어느 시즌보다 어려운 한때를 보냈다. 두 사령탑이추구하는 전술적 색깔이 워낙 다른 터여서 선수들은 적응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뛸 포지션의변화도 어느 때보다 심했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시즌 내내 경기에 나선 측면 수비수 고광민은 "황 감독님 부임 이후 플레이를 맞추는 데 어려움이있었다. 경기 전 파이팅을 외치고 난 후에 내가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고 털어놓을 정도였다.
감독 교체의 혼란 속에서도 중심 잡아준 베테랑들
FA컵 우승으로 ‘어부지리’ 우승 아쉬움 털어내겠다 각오
이런 어려움은 베테랑들이 팀의 중심을 잡아주면서 서서히 해소될 수 있었다. 서울은 주요 포지션에 노련한 베테랑들이 포진해 중심축 역할을 해줬다. 공격진에는 데얀(35)과 박주영(31)이 있었다. 데얀은 자기 욕심을 내는 것보다 공격진 전체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데 힘을 썼고, 박주영은 지난 시즌 차두리가했던 역할을 대신하면서 선후배 간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또 시즌 후반의 부진을 씻고 최종전 결승골로 ‘원샷 원킬’다운 면모를 뽐냈다.
▶최용수 감독의 뒤를 이어 지휘봉을 잡은 황선홍 감독과 전북과의 최종전 원정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은 박주영. ⓒ동아DB
수비진에는 시즌 중반 가세한 백전 노장 곽태휘(35)와최후의 보루 골키퍼 유현(32)이 있었다. 여름 이적 시장 때곽태휘를 영입한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가 됐다. 과거 서울에 있을 때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후 여러 팀을 오가며 국가대표 수비수로 우뚝 선 뒤 금의환향한 곽태휘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서울의 수비 라인에 듬직함을 더했다. 유현도 지난 9월부터 주전 골키퍼로 뒷문을 지키면서 8경기에 4골밖에 허용하지 않는 ‘거미손’ 방어로 서울의 역전 우승에 보이지 않는 기여를 했다.
서울의 최대 강점 가운데 하나는, 흔히 프로스포츠 우승팀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전문적이고 안정적인 프런트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거론한 것처럼 시즌 중반 최용수 감독의 중국 진출과 황선홍 감독 영입을 불과 일주일 남짓한 기간에 잡음 없이 말끔하게 처리한 것은 전문 프런트의 존재 없이는 설명할 길이 없다. 축구판에서 잔뼈가 굵은 이재하 단장은 유럽에 나가 있던 황선홍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서울에서 함께 일하면서 한국 축구를 위한 큰 그림을 같이 그려보자"고설득했고, 황 감독도 짧은 고심 끝에 수락했다. 중동에서 거액의 연봉을 받던 곽태휘를 영입한 것도 비슷한 사례다.
서울은 국내 프로스포츠 구단 가운데 마케팅에 가장 먼저 눈을 뜬 팀으로 손꼽힌다. 올해도 K리그 클래식 총 38라운드 경기를 치르면서 34만2134명의 관중 수를 기록했다. 홈경기 평균 1만8007명에 달하는 수치다. K리그 외에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4강(총 6경기 5만8265명)과 FA컵(총 4경기 1만8608명)까지 더하면 시즌 전체 관중 수는 41만 명을 훌쩍 넘어선다. 하프타임에 관중이 스마트폰 플래시를 켜들고 전인권의 ‘걱정 말아요 그대’를 함께 부르는 것은 이제 서울월드컵경기장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서울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대 라이벌 수원 삼성과의 2016 KEB하나은행 FA컵 결승전(1차전 11월 27일, 2차전 12월3일)이 아직 남아 있다. 양 팀의 대결은 K리그에서 ‘슈퍼매치’로 불릴 정도의 최고 빅카드인데 이들이 FA컵 결승에서 맞붙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팬들의 기대가 엄청나다. 서울은 천적 수원 삼성을 누르고 올 시즌 ‘더블(2관왕)’에오르며 대미를 장식하겠다는 욕심을 숨기지 않는다. 그것이 K리그 클래식 어부지리 우승의 아쉬움을 털어내는 길이라는 것도 잘 인식하고 있다. 황선홍 감독과 선수단은 짧은 휴식을 마친 뒤 11월 14일부터 또다시 훈련장에 집결했다. ‘더블’을 향해서.
글· 위원석(스포츠서울 체육1부장) 2016.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