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장맛에 푹 빠진 외국인들

2022.07.17 최신호 보기

▶외국인 참가자들이 요리연구가 홍신애 씨의 장 가르기 시연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있다.

외국인 대상 한식 일일 체험
“어떤 한국 음식을 좋아합니까?”
요리연구가 홍신애 씨의 질문에 20여 명의 외국인은 비빔밥, 부대찌개, 불고기, 갈비 등을 답했다.
“지금 다 다른 음식을 말했는데 여기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재료가 있습니다. 그렇죠. 간장이죠. 혹시 이거 보셨나요?”
홍 씨의 손에 들린 건 메주였다.
“드라마에서 매달려 있는 거를 봤다고요? 인테리어 소품으로 생각하는 분이 많은데 콩을 삶아 절구에 넣고 잘 찧은 다음 네모나게 모양을 만들어 겨우내 말린 거예요. 간장, 된장, 고추장 모두 여기에서 나와요.”
홍 씨가 나눠준 메주를 만져보고 냄새를 맡은 외국인들은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홍 씨는 “콩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안 들죠? 좋은 발효균이 생성된 게 한국의 장”이라며 장을 담그고 가르는 과정을 직접 시연했다.
“메주를 소금물에 넣어 다시 두세 달을 놔둬요. 그러면 메주가 이렇게 부드러워져요. (장을 가르면) 국물은 간장이 되고 건더기는 된장이 됩니다. 메줏가루와 고춧가루로 만든 게 고추장이에요. 콩을 발효시켜 비빔밥, 부대찌개, 불고기, 갈비의 맛을 다 만드니 한국의 맛은 장맛이라는 거예요.”
홍 씨는 조리대 앞에 놓인 각종 유리병을 가리키면서 “여러분은 수퍼마켓에서 병에 담아놓은 장을 쉽게 살 수 있지만 장의 마지막 재료는 시간이다. 1년을 묵혀야 이렇게 된다”며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이런 과정을 거친 소스는 별로 없다. 한식은 오랜 시간과 단순한 재료에서 나오는 발효식품”이라고 설명했다.

▶5월 3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열린 ‘외국인 대상 한식 일일 체험’ 행사에서 외국인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의 장 활용한 음식 체험
5월 3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외국인 대상 한식 일일 체험(원데이 투어)’ 행사가 열렸다. 외국인 대상 한식 일일 체험은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이 국내 음식관광 활성화를 위해 11월까지 추진하는 사업으로 외국인이 요리사, 종부 등 명인들과 함께 한식을 배우고 만들어보는 체험형 프로그램이다.
상반기는 ‘한국의 장 문화를 배우다’를 주제로 다양한 형태의 장과 장을 활용한 음식을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날 행사에서 인사말을 한 전한영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산업정책관은 “장은 한국의 음식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식재료다. 한식의 다양한 맛을 표현하고 발효 음식으로서 우수한 점도 검증돼 있다”며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가 202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5월 16일 열린 첫 행사는 2022년 개관한 서울 한식진흥원 ‘한식문화공간 이음’에서 진행됐다. 국내 최초 한식 부문 미슐랭 스타 요리사인 유현수 씨가 강사로 나서서 장 담그기 과정을 보여준 뒤 제주의 장을 활용한 ‘토마토 동치미’를 시연했다. 이어 외국인 참가자들이 된장소스를 곁들인 ‘나물 어만두’를 직접 만들었다.
5월 25일에는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충북 보은 우당고택에서 보성 선씨 김정옥 종부가 충북의 장을 활용한 요리를 선보였다. 6월 7일에는 경북 영주의 만포농산에서 경상도의 장을 활용한 김호윤 요리사의 강좌가 열렸고 6월 13일에는 경북 안동 군자마을 계암정에서 광산 김씨 김도은 종부의 강좌가 열렸다.

▶요리연구가 홍신애 씨가 직접 구운 갈비를 보여주고 있다.

▶홍신애 씨가 모로코 출신 유튜버 김미소 씨에게 갈비를 먹여주고 있다.

직접 부친 고추장떡 먹고 “신기한 맛”
이날 장 담그기·가르기를 시연한 홍신애 씨는 전라도의 장을 활용해 갈비와 고추장떡(장떡)을 만들기 시작했다.
“부침개 들어보셨죠? 파전, 김치전 맞아요. 오늘은 특별한 전을 만들 거예요. 먼저 고추장을 많이 넣어요. 매울 거라고 예상하는 분들 이따 맛보면 알아요. 생각보다 맵지 않아요.”
외국인 참가자들은 고추장이 잔뜩 들어가자 놀라면서도 처음 보는 고추장떡에 관심을 보였다. 홍 씨는 고추장 반죽에 간장과 참기름을 조금 넣은 뒤에 파와 고추를 썰기 시작했다.
“파를 썰어 넣으면 색깔도 예쁘고 파가 익으면서 달아져요. 매운맛과 단맛을 같이 즐길 수 있어요.”
시연이 끝난 뒤 참가자들이 직접 요리하기 시작했다. 참가자 가운데 118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모로코 출신 유튜버 김미소 씨도 있었다. 홍 씨의 고추장떡 조리법대로 반죽한 뒤 기름을 두른 팬에 부치기 시작했다. 김 씨는 “식당에서 사 먹는 파전은 엄청나게 큰데, 홍신애 선생님처럼 이렇게 작은 크기로 부치니 팬케이크 같다”고 했다.
참가자들의 실습을 둘러보던 홍 씨가 “여기 보면 반죽의 가장자리부터 익기 시작해 점점 안으로 들어온다. 이 정도의 선이 생겼을 때 뒤집으면 실패가 없다”고 알려줬다. 다 익은 고추장떡을 먹어본 김 씨는 “조금 맵기는 한데 바삭바삭하고 맛있다. 처음 먹어보는 신기한 맛”이라고 했다.
홍 씨는 “고추장떡은 고추장으로 만들지만 부침개는 비슷한 형태가 어느 나라에나 있고 팬케이크 같은 식감이라 외국인에게 잘 맞는 것 같다”고 했다.

▶홍신애 씨가 외국인 참가자에게 갈비를 먹여주고 있다.

▶외국인 참가자들이 고추장떡을 부치고 있다.

1년 걸리는 장 만들기에 깜짝 놀라
현재 양식당을 운영하는 홍 씨는 간장과 까나리액젓을 이용한 요리는 물론이고 고기에 된장을 발라 요리하고 고추장을 생선 소스에 활용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양식당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지역 재료로 한식의 기법을 이용하는데도 모양 자체는 양식이니까 외국인도 다들 거부감 없이 먹어요. 나중에 된장으로 구웠다거나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고추장 조리법이라고 설명하면 깜짝 놀라고 신기해하죠.”
우리나라에 온 지 4년 된 김 씨는 처음 된장을 접하고 숟가락 가득 떠서 먹었다가 혼났던 기억이 있다.
“처음에는 모르고 장만 떠먹었는데 너무 짜서 먹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한국 친구들이 그렇게 먹는 게 아니라 쌈처럼 다른 재료에 조금만 넣어 먹어야 한다고 알려줬어요. 그때부터 된장과 사랑에 빠졌죠.”
모로코에는 우리나라의 장처럼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드는 소스나 음식이 없다고 했다.
“오늘 장 만드는 과정을 보니 정말 특별한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년이나 걸린다는 얘기에 깜짝 놀랐고 쉽게 만들어지는 소스가 아니구나 생각했어요.”
학교를 통해 행사 소식을 듣고 친구들과 함께 참가한 미국 출신 유학생 마리아 씨는 “장을 활용해 평소에 접해보지 못한 생소한 음식을 직접 만들고 먹어보며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면서 “건강에 좋다고 소문난 한국의 장이 이렇게 폭넓게 쓰일 수 있음에 놀랐다”고 말했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
유네스코 문화유산 신청
문화재청은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등재하기 위해 3월 말 유네스코에 신청서를 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에 따라 문화적 다양성과 창의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대표 목록, 긴급 목록에 각 나라의 무형유산을 등재하는 제도다. 유네스코는 2023년 말부터 등재 심사를 시작해 최종 심사회의를 거쳐 2024년 말 등재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는 2019년 말 열린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무형문화재위원회 연석회의에서 2022년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 등재 신청 대상으로 결정됐다. 문화재위원회는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37호(장 담그기)로 지정된 우리 무형유산으로 해외동포를 포함한 전 국민이 장을 담그고 나누는 전통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대표한다”며 “장은 우리 음식의 맛과 정체성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로서 장을 담그고 나누는 행위를 통해 우리 사회의 가족과 공동체를 유지하고 전승하는 데 이바지했다”고 설명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으로 등재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장 담그기 문화 프로그램 지원사업’을 2019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현재까지 장 문화 체험·교육 관련 14개 프로그램을 지원했고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온오프라인을 통해 3년 동안 1800여 명이 장 담그기 체험·교육을 이수했다.
2021년에는 메주 만들기부터 장 가르기, 장을 활용한 요리법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였고 참여 대상도 일반인을 위한 프로그램부터 유치원과 초등학교 어린이 4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찾아가는 장 담그기 학교’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장 문화의 보급과 활성화에 기여했다.
또한 2020년 11월 ‘동북아 두장(豆醬) 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전망’과 2021년 10월 ‘한국 전통 장 문화의 인류무형유산적 가치와 확장성’ 등 국제학술대회도 열어 우리나라 장 문화의 독창적 가치를 국제사회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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