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노포와 ‘핫플’

2022.07.03 최신호 보기

▶신흥시장 안, 곳곳에 이국적인 맛집들이 있다. 

시민의 용산
서울 용산이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뉴트로(New+Retro : 새로움과 복고를 합친 신조어)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두 곳을 찾아가봤다. 70여 년의 세월을 품고 있는 ‘신흥시장’과 아모레퍼시픽 새 사옥이 들어서면서 변화를 맞고 있는 ‘용리단길’이다. 과거와 현재가 맞닿아 있는 곳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시장 골목은 좁고 아기자기하다. 가게에서 골목에 내놓은 화분들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젊은이들 스며들며 활기 되찾은 ‘갬성’ 시장
# 해방촌 신흥시장

“밤이 되면 우리 시장의 지붕 색깔이 변해요. 바로 위에 있는 남산서울타워처럼요. 미세먼지 농도에 따라 변하는데 네 가지 빛깔을 냅니다.”
박일성 신흥시장 상인회장의 말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투명한 지붕이 시장 안 건물 위를 아치형으로 잇고 있다. 박일성 회장은 “밤에 남산에서 내려다보면 잠실종합운동장처럼 보인다”고 직접 찍은 사진을 내보이며 말했다. 50년 가까이 시장 위를 덮고 있던 낡은 슬레이트 지붕을 걷어낸 변화다.
“시장 바로 위에 해방교회가 있어요. 해방촌의 1호 교회죠. 해방교회가 1947년에 세워졌는데 그즈음 시장도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의 상가 건물은 1968년에 지은 겁니다. 해방과 전쟁으로 몰려든 이들의 터전이었던 판잣집을 허물고 그 위에 그대로 시멘트 건물을 여러 채 올렸죠. 1층은 상가, 2층 이상은 살림집으로 사용했어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스웨터 공장으로 지역 경제의 중심으로 자리했던 시장입니다.”
1960년대 초 신흥시장에 삶의 터전을 잡은 박 회장이 시장의 역사를 짧게 들려줬다. 북한 실향민인 박 회장은 신흥시장에서 2020년까지 자연 건조 방식으로 국수를 뽑아 팔았다. 그가 운영했던 일성상회가 60여 년의 세월을 머금은 채 여전히 시장에 자리하고 있다.

▶평일 낮인데도 시장 골목 어디에나 사람들이 있다.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 촬영지가 많다. 시장 안은 세트장처럼 예쁘다

홍콩 거리에 온 듯한 빈티지한 감성
신흥시장은 남산 아래 첫 마을인 해방촌 역사의 중심에 있는 마을 자산이다. 이곳에 몇 년 전부터 젊은 아티스트와 상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감각적인 카페와 음식점, 와인 바, 옛 감성의 사진관과 문방구 등이 문을 열면서 시장은 변화했다.
“현재 시장 안에 70개의 점포가 있어요. 횟집과 정육점 정도만 빼고 모두 젊은 사장이죠. 청년 상인들이 오면서 시장의 재생 사업도 급물살을 탔고 지금의 모습으로 변화가 이뤄졌습니다.” 박 회장의 설명이다.
시장 안은 마치 드라마 세트장 같다. 오래된 건물과 화려한 네온사인, 홍콩의 거리에 온 듯한 인테리어가 공존하며 빈티지한 감성을 더한다. 곳곳이 사진 명소다. 어딘가 눈에 익은 가게도 보인다. 신흥시장은 예능 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과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배우 소지섭이 등장하는 카메라 브랜드의 광고 촬영지로 등장하기도 했다. 시장에선 때때로 공연과 전시, 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한다.
시장을 둘러보다가 마침 철제 계단을 오르려는 20대 커플을 만났다. 남산서울타워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려고 옥상(루프톱)으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이런 ‘갬성(감성)’ 너무 좋아요.” 신흥시장을 처음 방문했다는 청춘들은 재밌어했다. 시장 안 곳곳에 젊은 사람들이 보였다. 젊은이들이 스며들며 활기를 찾고 있는 신흥시장이다.
박 회장은 “지붕을 다시 씌운 신흥시장은 서울, 아니 대한민국의 랜드마크”라며 시장에 불어올 활력을 기대했다. 70여 년 역사의 신흥시장에 지금 또 새로운 문화가 피어나고 있다.


▶‘이태리이층집’ 입구 

▶홍콩식 중식당 ‘꺼거’

▶일본식 스탠딩바 ‘키보’

우리 것과 이국적 정취가 한데 어우러진 골목
# 용리단길

2022년 상반기 최고의 핫플레이스 하면 단연코 ‘신용산역’ 일대다. 새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 국방부 청사에 들어서고 용산공원이 일반 시민에게 시범 개방되면서 근처에 가볼 만한 곳도 관심을 받고 있다.
각종 블로그, 누리소통망(SNS) 등에서는 신용산역 인근 볼거리, 먹을거리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자주 거론되는 장소로 이른바 ‘용리단길’이 있다. 6월 9일 늦은 오후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에서 4·6호선 삼각지역으로 이어지는 골목인 용리단길을 걸었다.
신용산역 1번 출구를 빠져나오면 용산우체국 삼거리로 이어진다. 큰길에서 벗어나 한산해진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높지 않은 주택 건물들 사이사이로 눈길을 끄는 트렌디한 외식 공간이 하나둘 들어서 있다. 원래 자리하던 작은 상업 시설이나 주택들이 어우러진 적당히 호젓한 거리다. 음식점들 역시 기존의 주택을 고친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질감이 없다. 그렇다고 개성이 부족한 건 아니다.
홍콩식 중식당 ‘꺼거’, 샌프란시스코 감성을 담은 ‘쌤쌤쌤’, 베트남 현지식 음식 전문점 ‘효뜨’, 이탈리아 길거리 포카체리아를 떠올리게 하는 ‘포카치아델라스트라다’, 라오스식 쌀국수집 ‘라오삐약’, 멕시코 음식을 퓨전으로 내놓는 ‘버뮤다삼각지’, 오사카 뒷골목 느낌의 선술집 ‘키보’ 등 다양한 국적의 음식점이 자리 잡고 있다. 모두 간판에서 한국어를 찾기 힘들다. 외관뿐만 아니라 인테리어도 이국적이라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기가 외국인가, 서울인가”라며 인증 사진부터 찍는 사람이 많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현지 여행 중인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골목엔 카페와 와인 바도 많다. ‘선곡 맛집’으로 불리는 음악 카페 ‘지미홈’, 일본 만화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외관을 가진 ‘도토리’,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한 ‘쿼츠 커피’, 비밀스러운 분위기의 ‘카페 손’, 비건 와인 바 ‘낫투길티’ 등 가게마다 개성이 다양하다.

▶1970년에 준공된 삼각맨숀

▶멕시칸 퓨전 음식 ‘버뮤다삼각지’

▶라오스식 식당 ‘라오삐약’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래서 더욱 매력적
상인들이 생각하는 용리단길의 매력은 뭘까? 카페 N°214를 운영하는 은재이(32) 씨는 “5분 남짓 걸어 다니면서 옛것의 분위기와 최신 분위기를 모두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1년 사이 용리단길의 변화를 들려줬다. “주말에 문 여는 가게가 없었던 동네인데 요즘은 주말에 사람들이 정말 바글바글하다.”
드문드문 눈에 띄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은 용리단길의 또 다른 볼거리다. 그중 ‘광일’ 기업이 현재 사용하고 있다는 건물이 유독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건물은 과거 간조 경성지점의 사옥이었다. 간조는 한강철교, 한강인도교, 수풍댐, 압록강철교 등을 건설한 전범 기업이다. 골목에 묻은 세월의 흔적에 공감하면서 특별한 가치가 더해졌다.
삼각지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화랑거리를 만났다. 1960~1970년대 전성기였다가 지금은 그 명맥을 잇는 수십 개의 화랑과 액자 가게만 남아 있다. 박수근, 이중섭 같은 우리가 잘 아는 화가들도 거쳐 간 곳이라고 한다.
화랑거리를 지나면 대구탕 골목이 나온다. 대구탕 골목을 시작으로 삼각지역 주변 골목에는 서민들이 한 끼 식사와 함께 소주 한잔하며 하루의 회포를 푸는 수다 소리가 가득하다.
삼각지 하면 떠오르는 대표 노포는 역시 삼각지의 상징인 원대구탕이다. 대원식당은 생선구이 맛집으로 소문난 집이다. 대박포차는 근처 직장인들에게 여전히 인기다. 소 특수 부위 구이와 내장국밥이 유명한 평양집, 고등어구이와 된장찌개가 일품인 백반집 진주식당도 빼놓으면 아쉽다.
과거와 현재, 우리 것과 이국적 정취가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골목.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래서 더욱 끌리는 용리단길이다.

글 심은하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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