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어죽
▶피단죽
★/죽/★
가끔은 아주 속 편한 식사를 원할 때가 있다. 원래는 몸이 편찮을 때 찾는 것이 죽이다. 물에 쌀을 넣고 푹 끓여 먹는 둥 마시는 둥 기력을 보충할 수 있다. 가장 원초적 곡물 음식인 죽은 일찌감치 인류가 만들어냈다.
순 우리말인줄 알고 있지만 한자로 죽(粥)이 있다. 곡물을 먹는 문화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죽이 주식이었다. 밥과 떡, 그리고 빵은 이후에 나왔다.
효율적이면서도 도정도 필요없고 조리하기에도 쉬웠던 까닭이다. 물을 좀더 잡으면 더 많은 이에게 먹일 수 있었다.
서양에도 존재했다. 빵보다 이르다. 고대 이집트에선 보리를 발효시킨 죽을 식사 대용으로 먹었다. 그것을 맥주의 효시로 친다. 이후 제빵기술이 발달할 때까지 죽을 먹었다.
죽은 생명을 유지시키는 마지막 보루였다. 죽 마저 먹지 못하면 결국 굶어죽어야 하는 까닭이다. 동서양 모두가 먹던 음식이지만 그중에서도 우리나라는 죽 문화가 좀 더 발달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가 편찬, 이후 그 방대한 지식에 ‘조선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으로 불리고 있는 <임원경제지>에 ‘죽은 쌀을 물에 넣고 끓이는 것’이라 정의했다. 이외에도 시의전서 등 각종 사료에 약 40여 가지의 죽이 등장한다. 조선은 이른바 ‘죽의 나라’였다.
죽은 소화 흡수가 빠르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기력회복을 위해 환자에게 권장된다. 특히 소화기관이나 치아가 부실한 경우 마시듯 죽을 섭취하면 불편없이 영양을 보충할 수 있다.
하루에 다섯 번을 차리는 궁중 수라상에서 임금에게 가장 먼저 제공하는 음식 또한 죽이다. 죽이나 미음을 쑤어 차렸다. 이른 아침에 처음 대하는 밥상이라 해서 초조반(初朝飯)이라 불렀다. 수라상이라 해서 좋은 재료를 쓴 것이 아니라 그냥 쌀죽이었다.
찹쌀과 우유를 쓰는 타락죽은 워낙 우유가 귀했던 나머지 왕실에서도 잘 찾아먹기 힘든 귀한 죽이었다. 아무리 왕족이라도 크게 아프거나 해야 그나마 챙겨먹을 수 있었다.
현대의 죽은 종류가 매우 다양해졌다. 곡물의 종류에 따라 팥죽, 콩죽, 율무죽, 녹두죽 등 이름을 앞에 붙인다. 곡물 이외에 다른 푸성귀가 들어가면 호박죽, 콩나물죽, 방풍죽, 잣죽 등이 되고 닭죽이나 전복죽은 주재료를 쌀죽에 넣은 것이다. 생선을 오래 끓여낸 어죽과 우유를 넣은 타락죽도 유명한 별미다.
지역적으로 나는 특산물로 죽을 쑤면 특별식이 된다. 부안 등 서해안 백합죽, 바지락죽과 동해안 섭(홍합)죽, 제주도 보말죽, 깅이(게)죽, 통영 빼때기(말린 고구마)죽 등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참치와 전복, 삼계닭죽 등 화려한 부재료와 잘 결합한 덕에 우리나라의 죽이 아시아계 관광객들로부터 인기를 끌며 ‘K-죽’ 시대를 열고 있다.
요즘은 바쁜 현대 도시인들에게 속 편한 식사로 죽이 환영받고 있다. 맛있는 부재료와 함께 뚝딱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로 죽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원래 적은 양의 곡물을 쓰니 열량도 낮아 다이어트에 좋다고 하니 요즘 많은 젊은 층이 ‘식은 죽 먹기’로 아침을 시작하고 있다.
전국의 죽 맛집
★닭죽 서울 무교삼계탕.
닭죽을 판다. ‘영혼의 닭고기 수프’란 말이 있듯 기력이 허할 때는 닭 국물이 최고다. 삼계탕 육수라 인삼과 약재가 들었다. 찹쌀을 섞어 좀 더 부드럽게 넘어간다. 맛도 좋고 양도 꽤 된다. 속이 좋지 않거나 몸이 무거울 때 한 그릇 하면 부드럽고 진한 맛에 입맛과 기력이 살아난다.
★전복죽 포항 유화초전복.
해산물 넘쳐나기로 유명한 포항에서 전복죽으로 아성을 구축한 집. 언뜻 보기에도 진한 전복내장이 알알이 스민 죽을 판다. 한술 떠넣으면 구수한 맛과 향이 입안에 퍼진다. 삶은 전복을 썰어 수북히 올리니 씹는 재미도 좋다.
★보말죽 제주 일통이반.
보기드문 보말죽을 판다. 그것도 씨알 굵은 왕보말이란다. 표준어로 보말고둥은 제주에서 죽 재료로 많이 먹던 것인데 요즘 귀해서 좀처럼 접하기 어렵다. 다소 뻑뻑하게 쑨 죽에는 전복보다도 진한 보말 특유의 풍미가 제대로 들었다. 시원한 물김치와도 제법 어울린다.
★어죽 예산 대흥식당.
걸쭉한 국물의 어죽이다. 예당저수지라는 든든한 뒷배를 둔 집이라 관광객이며 주민들이 모두 찾는 집. 시원하면서도 고소하다. 별거 없는데 든든하기까지 하다. 밥알과 국수에서 나온 전분이 칼칼한 잡어 국물을 부드럽게 감싼다. 충남식 어죽답게 국수와 수제비도 들었다. 수저가 쉴 새 없이 노닌다.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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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