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치료 프로그램에 참가한 어르신들이 노래를 부르며 가사에 맞춰 알맞은 동작을 표현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치매안심센터를 가다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새들의 노래 웃는 그 얼굴 그리워라 내 사랑아~”
흥겨운 노래에 따라 탬버린과 심벌즈, 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악기를 잡은 두 손이 어딘가 어색하고 박자는 자꾸 엇나가지만 음악치료사의 힘찬 지휘에 따라 불협의 화음을 만들어내는 이들의 주름진 얼굴엔 생기가 돈다. “어르신, 악기 연주해보니 어떠세요?” “내 평생에 심벌즈는 처음 쳐봐요. 아주 재미있어.”
‘스마일 두뇌학교’라 이름이 붙은 옆방에선 또 다른 ‘만학도’들의 학구열로 후끈하다. 사람의 얼굴을 닮은 둥근 얼굴의 로봇 ‘보미’ 앞에 앉아 문제를 푸는 데 집중한 이들 사이로 치료사의 나긋한 음성만이 들려온다. “손주가 세 군데 숨었어요. 숨은 경로가 기억나세요? 천천히 다시 찾아볼까요?”
건물 맨 끝,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한 운동센터에선 전통 가요가 흐르는 가운데 굳은 팔다리를 기지개 켜는 움직임이 느리지만 활발하다. 각자 자전거, 러닝머신, 스테퍼 등 운동기구에 카드를 꽂으면 미리 측정한 체질량지수(BMI)에 따라 개개인에 맞는 운동 횟수와 강도로 운동이 진행된다.
▶인지운동센터에서 어르신들이 근력강화를 위한 기구운동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
일대일 치매 진단부터 로봇 활용 인지치료까지
5월 3일 찾은 서울 강서구치매안심센터. 센터는 평일 오전임에도 수십 명의 방문객으로 북적였다. 5월 2일부터 전국의 치매안심센터가 운영을 전면 정상화하면서 이곳 역시 더 활기를 띠었다. 앞서 치매안심센터는 코로나19 확산으로 2020년 5월부터 대면 프로그램을 대폭 줄이고 온라인 등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대면 프로그램을 비롯한 모든 서비스를 재개했다.
강서구치매안심센터에선 어르신들을 정상군, 경도인지장애군, 조기 및 초기 치매군 등 치매 유형에 따라 ‘스마일반’, ‘온돌누리방’, ‘초록기억반’, ‘쉼터반’ 등으로 나눠 음악 및 미술 치료, 로봇을 활용한 인지 재활 활동(작업치료), 운동치료 등 다양한 치매 예방·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어르신들은 이곳에 주 2~5일 방문해 이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매일 와서 정해진 시간에 여러 수업을 받는 일종의 ‘어르신 학교’인 셈이다.
실제로 ‘스마일 1학년’, ‘스마일 2학년’ 같은 명칭을 사용하며 학생들이 교복을 입듯 어르신들은 노란색 조끼를 입는다. 조끼엔 길을 잃었을 때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칩이 붙어 있다. ‘초록기억반(65세 이하 조기 치매군)’에 속한 아들과 함께 1년 넘게 이곳에 다니고 있다는 노미자 씨는 아들의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고 전했다.
“뇌출혈로 쓰러진 후 치매가 왔어요. 한번은 길을 잃어 경찰서에서 찾았는데 거기서 치매안심센터를 알려주더라고요. 주간보호센터(데이케어센터)에 가기 전에 오전엔 여기서 활동해요. 아들이 좋다는 표현은 못 해도 표정이 많이 밝아졌어요. 보호자들도 운동이나 로봇 게임 등을 하면서 기다릴 수 있어서 지루하지가 않죠.”
치매안심센터에서는 이같이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대면 프로그램을 비롯해 치매 검진과 등록, 실종 예방 서비스, 가족 프로그램, 맞춤형 사례 관리까지 모든 치매 관리 서비스를 한묶음으로 제공한다.
▶어르신들이 줌을 통한 비대면 수업으로 강사의 지도를 받으며 운동치료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다.
치매 어르신 위한 야외 치유 프로젝트도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치매 유병률은 10.12%에 달한다. 어르신 10명 중 1명은 치매환자라는 이야기다. 강서구는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8만 8000여 명으로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노인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곳이다. 이에 2009년부터 일찌감치 치매안심센터를 열고 지역사회 치매 예방에 앞장서왔다.
강서구에 거주하는 만 60세 이상 어르신이라면 강서구치매안심센터에 방문해 전문 의료진에게 치매 진단검사를 받을 수 있다. 선별검진 및 정밀검진을 무료로 받을 수 있으며 치매로 진단되면 병원으로 연계해주고 치매 치료 관리비와 기저귀 등 위생 소모품을 지원한다.
25명 전 직원은 치매 어르신 가정에 직접 방문해 약 복용을 점검하는 등 맞춤형 일대일 사례 관리에도 힘쓰고 있다. 강선옥 총괄팀장은 “치매안심센터는 치매를 예방하고 조기에 발견함으로써 사회적 비용을 낮추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짚었다.
“고령화가 진행되면 사회적 비용도 같이 늘어나요. 노인장기요양보험이 2008년 도입됐는데 건강보험료의 8%였던 보험료율이 12%까지 늘었죠. 대표적인 노인성질환인 치매를 지금부터 관리하지 않으면 사회적 비용이 그만큼 커지는 거예요. 치매 예방과 조기 발견으로 병원이나 요양원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이웃과 함께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노인복지의 방향이라 할 수 있어요. 치매안심센터가 바로 그 역할을 하는 거죠.”
한편 강서구치매안심센터는 치매 어르신을 대상으로 진행한 ‘기억 담은 힐링팜’ 프로젝트를 추진해 보건복지부가 주관한 ‘2021년 치매안심센터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기억 담은 힐링팜은 ▲기억 담은 항아리 ▲기억 담은 텃밭 ▲기억 담은 힐링 숲 체험 ▲기억 담은 식물원 등 네 가지 프로그램으로 코로나19로 대면 프로그램이 대폭 줄어든 상황에서 경증 치매 어르신을 위해 마련한 야외 치유 프로젝트다.
어르신들은 직접 장을 담그고 농작물을 기르는 활동을 비롯해 둘레길을 걷고 야생화를 찾는 등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야외 활동을 하며 우울감을 해소하고 마음을 치유하며 새로운 추억을 쌓았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 어르신은 “어린 시절 농사일하던 게 생각났다. 상추가 아주 이쁘게 큰 걸 보니 우리 농토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흐뭇해했다.
▶어르신들이 소근육 증진 및 집중력 강화를 위한 수공예활동에 참가해 <어버이날 맞이 카네이션 꽃바구니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말미암은 경증 치매 어르신의 우울감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한 야외 치유 프로젝트 ‘기억 담은 힐링팜’ 가운데 숲에서 체조와 명상을 즐기는 ‘기억 담은 힐링 숲 체험’ 모습
▶치매환자를 위해 개발된 로봇 ‘보미’를 활용한 인지 치료 프로그램│서울 강서구치매안심센터
“노년의 삶 ‘치매 예방’ 중심에 둬야 해”
센터에선 1년간 직접 농사지은 고구마, 호박, 방울토마토 등 농작물과 직접 담근 된장, 간장을 어르신들과 함께 시장에 나가 판매해볼 계획이다. 또 코로나19로 마련했던 비대면 화상 프로그램을 더욱 활성화하기로 했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보호자가 일을 해 센터에 올 수 없는 어르신들에겐 비대면 활동이 외려 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더불어 치매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치매 어르신이 지역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기억친구’를 확산하는 데도 힘쓸 예정이다. 기억친구란 치매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치매환자와 가족을 따뜻한 마음으로 도와주는 시민을 일컫는 말로 서울시광역치매센터가 치매 친화적 환경을 만들기 위해 마련한 시민운동이다.
현재 강서구 내 240여 개 모든 약국은 기억친구로 지정돼 수개월 치 약을 한꺼번에 처방하던 것을 개별 포장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치매 어르신의 변화를 빠르게 파악하는 데 힘쓰는 등 치매 어르신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 강서구치매안심센터장을 맡고 있는 정지향 이화여대 신경과 교수는 “노년의 삶은 ‘치매 예방’을 중심에 둬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2030년이 되면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사는 나라’가 될 거예요. 치매에 걸렸느냐 안 걸렸느냐로 나뉠 만큼 고령사회에서 치매는 중요한 화두예요. 따라서 60대 이후 경제활동을 그만둔 이후부터는 삶의 목표를 치매 예방에 둬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죠. 40대 때부터 심장병, 고혈압, 당뇨 등을 철저히 관리해야 해요. 치매는 노력에 따라 예방할 수 있고 3~5년까지 늦출 수 있어요. 또 치매환자가 고립되지 않고 지역사회에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도 함께 노력해야죠.”
글 조윤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
전국 256곳 치매안심센터 운영 재개
5월 2일부터 전국 256곳 치매안심센터가 운영을 정상화했다. 치매안심센터는 코로나19 확산으로 2020년 5월 12일부터 대면 프로그램을 축소 또는 중단했으나 앞으로 대면 프로그램은 물론 치매환자와 가족 상담, 검진, 조호물품 제공 등 모든 서비스를 정상 운영한다.
현재 치매안심센터에 등록된 어르신은 399만 명(치매환자 50만 명)으로 센터를 방문해 치매 예방 및 인지강화교실 참여, 쉼터를 통한 낮 시간 돌봄을 제공받을 수 있다. 가족들도 치매안심센터 내 가족 카페를 이용하며 치매환자 쉼터 이용 시간 동안 휴식하거나 가족 간 정보를 교환하고 자조 모임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김혜영 보건복지부 치매정책과장은 “치매안심센터가 정상 운영됨에 따라 치매안심센터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치매 어르신과 가족들의 많은 참여와 관심을 부탁한다”면서 “치매환자와 가족들의 고통과 부담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치매안심센터 운영 활성화에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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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