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된 송해 참 애쓰셨습니다

2022.06.12 최신호 보기

▶KBS1 <전국노래자랑> MC 송해│KBS

6월 8일 타계한 송해는 많은 연예인들의 전범(典範)이었다. 그는 아흔다섯 살까지 건강을 유지하면서 전국민의 사랑을 받는 공영방송의 간판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했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현역이었던 송해를 누구든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그는 국내 최고령 MC이자 전 세계 TV음악 쇼의 최고령 진행자로 기네스북에도 이름을 올렸다. ‘길어야 2~3년 진행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송해는 KBS1 <전국노래자랑>과 34년의 인연을 이어왔다. 1988년 처음 시작해 1994년 5월 무렵 5개월 동안 하차했던 것을 빼면 매주 일요일마다 시청자를 찾았다.
“딩동 딩동댕” 소리와 함께 “전국에 계신 노래자랑 가족 여러분, 한 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로 시작하는 <전국노래자랑>에서 송해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으면 한동안 허전할 것 같다. 송해는 전 국민의 오빠이자 형이었고 친근한 국민 MC였다. 송해는 어떻게 장수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이름을 떨칠 수 있었을까?

▶KBS1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한 가수 임영웅│KBS

전 국민의 오빠, 형이자 친근한 국민 MC
나이 든 어르신들에게 송해는 성공한 삶의 상징이었다. 매주 전국을 누비면서 좋은 공기를 마시고, 가는 곳마다 산해진미를 맛보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 무대에 서서 MC를 보는 특권은 아무한테나 주어지는 건 아니다. 언젠가 송해에게 장수 MC의 비결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저는 공개방송을 하러 가는 지역에 먼저 가서 동네 사람들과 만나요. 소주 한잔하면서 이 얘기, 저 얘기 듣는 거죠. 아침에 일어나면 그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목욕탕에 갑니다. 동네 할아버지부터 꼬마들까지 모두 편하게 인사를 해요. 벌거벗고 탕에 들어앉아서 동네 이야기를 듣는 거죠.”
그렇게 해서 얻은 정보는 작가가 써줄 수 없는 살아 있는 정보였다. 송해는 무대에서 이를 적절하게 활용했다. 이런 노력이 그를 친근한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진행자로 만들었다. 무대에 올라온 출연자들도 그를 오빠이자 형, 할아버지로 생각했다. 어떤 말을 해도 받아줄 것 같은 진행자이기에 출연자들은 주눅 들지 않고 유쾌한 무대를 펼쳐 보였다. 1955년 유랑극단인 창공악극단에서 시작해 무대경력을 쌓아온 송해는 즉흥 발언(애드리브)의 황제다. 별다른 대본 없이 웃음을 제조해내고 재빠르게 출연자의 특성을 파악해 그들이 가진 재능을 끌어낸다. 이것이 첫 번째 비결이었다.
그가 장수 MC가 될 수 있었던 또다른 비결은 건강이었다.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살아 생전 그는 승용차를 타지 않고 지하철과 버스를 주로 이용했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소주 한 병을 비우는 애주가지만 하루 세 끼 식사를 거르지 않았다. 또 매일 사우나를 즐긴 것도 건강을 지킬 수 있었던 비결로 꼽는다. 또 늘 웃음을 잃지 않는 낙천적 성격도 건강의 원동력이었다.
‘땡’과 ‘딩동댕’으로 출연자의 운명이 엇갈리는 <전국노래자랑>은 정색을 하고 노래 잘하는 가수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과는 차원이 다르다. 누구나 편안하게 출연해 떨어져도 웃으면서 무대를 내려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된 것은 전적으로 송해의 노련한 진행 덕분이다. 순발력이 뛰어난 코미디언 출신 진행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전국노래자랑>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역할을 안 한 건 아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박상철, 장윤정, 김혜연, 송가인, 송소희 등은 물론이고 임영웅, 정동원, 이찬원, 영탁 등이 모두 <전국노래자랑> 출신이다. 심지어 김재욱, 조영구, 홍석천 등도 이 프로그램 출연을 계기로 연예계에 진출했다. 이런 인연 때문에 연예계에서 송해의 일이라면 모든 후배가 발 벗고 나선다. 이 또한 ‘마당발’ 송해의 장수 비결 중 하나였다.

▶KBS1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한 국악인 송소희│KBS

“<전국노래자랑>은 화합의 장이죠”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난 송해는 해주예술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피란길에 가족과 헤어져 혼자서 남한에 왔다. 그런 파란만장한 인생사가 세상을 바라보는 너그러움을 갖게 했다. 누구든 포용하는 무게감을 갖고 있지만 결코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그는 피에로처럼 슬픔을 감춰왔다. 사랑하는 아들과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도 무대에서 드러내지 않았다. 북한에 사랑하는 누이동생을 두고도 못 만나는 이산가족이고, 정치권에서도 탐내던 유명인이었지만 그는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전국노래자랑> 무대를 지켜왔다. 송해는 한 인터뷰에서 <전국노래자랑>이 가진 장점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전국노래자랑>은 화합의 장이죠. 지역갈등, 고부갈등, 직업 간 갈등,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갈등, 성별과 세대 간 갈등이 다 해소돼요. 서로 손뼉 치면서 격려하지요.”
좌와 우도 없고 보수와 진보를 가르지도 않으며 가진 자와 갖지 않은 자를 갈라치지도 않았다. <전국노래자랑>이 곧 송해였다. 한동안 그의 부재가 우리를 허전하게 할 것이다.
“참 애쓰셨습니다. 송해 오빠. 부디 그곳에서도 행복하세요.”

오광수 대중문화평론가(시인)_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문화 분야에서 기자로 일했다. 저서로는 시집 <이제 와서 사랑을 말하는 건 미친 짓이야>, 에세이집 <낭만광대 전성시대> 등이 있다. 현재는 문화 현장에서 일하면서 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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