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의 시대로 나아가는 역사문화 르네상스 특구

2022.05.23 최신호 보기

▶용산 미8군 무대와 한국 대중음악사를 설명하는 전시실 모습 

용산의 과거와 현재 미래이야기

용산은 인왕산에서 안산으로 뻗어 내린 서울 백호 지맥의 한 줄기가 만리재와 청파동을 거쳐 한강까지 이어지는데 그 형상이 용과 비슷해 이 일대를 용산(龍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5월 10일 낮 서울 용산역 앞 사거리. 새로 지은 고층 주상복합아파트와 위용을 자랑하는 시무용 빌딩들 사이로 붉은 벽돌 외벽이 인상적인 3층짜리 건물이 대로에 금방 눈에 띈다. 일제강점기인 1928년에 건립된 약 100년 역사를 간직한 근대건축물(국가등록문화재 지정)로 옛 용산철도병원 건물이다.
이 건물이 새로 단장해 3월 23일 ‘용산역사박물관’이란 이름을 달고 문을 열었다. 용산역사박물관은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근현대 용산의 변화상과 일제강점기에 철도 기지로 개발되고 일본·미군의 군사기지로 사용된 용산을 흥미롭게 또 엄숙하고 가슴 아프게 보여준다.
박물관 1층 첫 전시실에 내건 주제 제목은 ‘한양의 길목 용산’이다. 이어지는 전시실 주제는 ‘조선을 움직인 거상 경강상인’, ‘군사기지로 새로운 지형을 그리게 된 용산’, ‘냉전 속에서도 뜨겁기만 했던 용산’, ‘철도교통의 중심이 된 용산’이다. 2층 전시실로 올라가면 ‘다양성이 조화를 이루는 터전 용산’, ‘경계를 풀고 공존의 시대로 나아가는 용산’이 관람객을 맞는다.

▶용산역사박물관에 전시된 ‘용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설명 문구 

대한민국 근현대사 그대로 압축한 땅
근현대 150년 격변의 용산은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그대로 압축해놓은 듯한 땅이다. 용산역사박물관은 용산을 철도망을 매개로 한반도 곳곳을 연결하는 철도·상업도시, 이태원동·한남동 등 외국인 거주지를 비롯한 국제도시, 용산전자상가를 대표로 하는 기술도시, 근현대사 문화를 품고 있는 문화도시로 집약하고 있다.
용산은 인왕산에서 안산으로 뻗어 내린 서울 백호 지맥의 한 줄기가 만리재와 청파동을 거쳐 한강까지 이어지는데 그 형상이 용과 비슷해 이 일대를 용산(龍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경복궁이 있는 광화문에서 한강으로 이동하는 길목인 용산은 조선시대에는 물산의 집하장이었다.
서울의 노른자위 같은 용산 땅은 일찌감치 군사적 요충지로 외세의 침입이 끊이지 않았다. 고려 말에 몽골군이 용산 일대에 병참기지를 뒀다는 기록이 있고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침략했던 일본군이 용산 일대에 주둔하기도 했다.
용산에 본격적으로 외국 군대가 주둔하게 된 건 조선 말이다. 1882년 임오군란을 계기로 조선에 들어온 청나라 군대가 용산에 주둔했고 청일전쟁 때 일본군이 상륙한 곳도 용산이었다. 용산이 일반인에게 금단의 땅이 된 것은 19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군은 용산에 자리 잡았고 한일의정서를 내세워 용산 일대 약 1000만㎡(300만 평)를 군용지로 강제 수용했다. 이후 1906년부터 1913년까지 용산 일대에는 일본군의 주요 군사시설이 속속 들어섰다. 1921년에는 용산기지에 일본군 20사단이 편성됐다.
1945년 광복을 맞았지만 용산기지는 바로 국민의 품에 돌아오지 못했다. 광복 이후 미 7사단이 인천으로 상륙한 뒤 용산기지에 진주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국방부와 육군본부가 용산으로 이전했으나 한국전쟁 발발로 다시 미군이 주둔했다. 1952년 정부가 용산기지를 미국에 공여했고 이후 미8군 사령부가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용산은 주한미군 부대의 근거지가 됐다.

▶용산역사박물관에 전시된 ‘용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설명 문구 

2005년 용산기지 국가 공원 추진 방안 발표
외국군 주둔의 역사로 점철된 용산은 1990년 한미 정부가 용산기지를 이전하는 내용의 기본합의서와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새 전기를 맞는다. 2003년 한미 정상이 용산기지의 평택 이전을 합의한 데 이어 2005년 용산기지의 국가 공원 추진 방안이 발표됐다.
용산에는 외국 군대를 따라 이국의 문물도 함께 들어왔다.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려고 이주한 중국 상인들이 부대 인근에 자리 잡은 것이 차이나타운의 기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기지 주변에 기지촌이 형성되며 일본인 거리가 생겨났고 미군이 진주한 뒤에는 인근 이태원에 이들을 상대로 한 상가가 조성됐다.
오랜 세월 외세 침략을 시작으로 가슴앓이한 세월이 긴 지역이지만 용산에는 한글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리움미술관 등 20여 개 박물관이 있다. 해방 이후 실향민들이 들어와 산 해방촌과 삼각지 화랑거리, 최초의 신학교인 용산성심신학교와 최초의 이슬람 성원인 서울중앙성원 등은 다양성이 공존하는 용산의 특징을 보여준다.
일본인이 용산 지역에서 운영하던 제과 회사를 우리나라 사람이 인수해 해태제과와 오리온제과로 키웠고 우리나라 사람이 창립한 크라운제과와 롯데제과(현재 영등포로 이전)도 용산에 정착하는 등 용산은 제과산업의 격전지이기도 했다. 중소기업벤처부는 2021년 4월 용산을 ‘역사문화 르네상스 특구’로 지정했다.

글·사진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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