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췄던 음악이 다시 흐르자 일상도 ‘흥얼흥얼’

2022.05.23 최신호 보기

▶5월 3일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해금 켜는 은한’이 해금을 연주하고 있다.

다시 시작한 거리 공연
덕수궁 돌담길로 유명한 서울 중구 정동길은 평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차가 다니지 않는다. 5월 13일 낮 12시 정동길에 접어들자 멀리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덕수궁 돌담을 무대 삼아 한복을 입은 여성이 해금을 연주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을 맞아 쏟아져 나온 직장인들이 그 앞을 지나갔다. 몇몇은 음악 소리에 걸음을 멈추거나 사진을 찍었지만 대부분 걸음을 재촉할 뿐이었다.
이무진의 ‘신호등’을 마지막으로 연주가 끝난 뒤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던 50대 여성은 “유튜브에서 많이 보던 해금 연주자를 만나니 반갑고 신기하다”며 “알고 있는 것보다 되게 활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와 국내 거리에서 한복을 입고 해금을 연주하는 국악 버스커(거리공연가)로 유명한 ‘해금 켜는 은한’은 5월 14일부터 시작한 2022 서울거리공연 ‘구석구석라이브’를 앞두고 서울광장과 정동길, 무교로 등 세종대로 일대 4곳에서 사전 공연을 진행하고 있었다.
서울시는 2011년부터 ‘구석구석라이브’를 통해 시민에겐 공연장을 방문하지 않고도 일상에서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하며 공연 기회가 부족한 예술인에겐 활동 무대를 제공하고 있다. 2022년 정규 공연은 ‘한강 페스티벌’(5~12월), ‘광화문광장 행사’(8~11월), ‘서울 페스타 2022’(8월) 등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와 연계해 북서울꿈의숲, 동대문디지털프라자(DDP) 등 서울 시내 야외와 거리 50곳에서 열린다. 코로나19로 문화 공연이 위축됐던 한강공원과 지천 등 수변공간에서도 진행한다.
공연 장르도 시민 선호도를 반영해 해금, 통기타, 바이올린, 퍼포먼스 등 다양하다. ‘2022 서울거리공연단’ 모집에 모두 490팀의 공연단이 참가 신청을 했는데 심사위원단은 영상 오디션을 통해 150팀을 선발했다. 서울시는 이들에게 소정의 공연 실비를 지급하고 노들섬 잔디마당에서 열릴 예정인 ‘서울 버스커 페스티벌’(9월)에서 공연할 기회를 제공한다.

▶‘해금 켜는 은한’이 거리공연을 마친 뒤 맺음말을 하고 있다

빼앗긴 일상, 거리공연으로 치유받아
‘해금 켜는 은한’에 이어 ‘테너손’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테너 손형빈(46) 씨가 등장했다.
“10년 넘게 거리에서 시민 여러분과 음악을 향유하고 있는데 올해는 어느 때보다 가슴 벅찬 것 같습니다. 2년 동안 코로나19로 다들 고생하셨을 텐데 이렇게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는 날이 드디어 왔습니다. 기쁘시죠? 한껏 즐기시기 바랍니다.”
인사말을 끝낸 그는 어린이날을 앞두고 동요 ‘등대지기’와 ‘노을’을 불렀다. 30대 직장인 전슬지 씨는 “직장 동료와 함께 점심을 먹고 회사로 돌아가다 눈길이 갔다. 코로나19 전에는 정동길에서 거리공연을 자주 봤는데 오늘 오랜만에 본다. 야외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되면서 거리공연까지 재개되니 기분이 새로운 것 같다”고 했다.
작곡가 김효근의 가곡 ‘첫사랑’과 루이 암스트롱의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 등 9곡을 부른 40분의 공연이 끝나자 여러 사람이 손형빈 씨에게 다가와 “정말 멋있어요!”, “앞으로 하는 공연 정보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등의 말을 건넸다. 함께 사진 찍기를 청하는 모녀도 있었다. 30대 딸은 “엄마와 서울시립미술관에 왔다가 음악 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오랫동안 취미로 피아노를 쳤는데 거리에서 클래식, 그것도 성악을 들으니 색다르다. 파란 하늘에 돌담길 배경까지 정말 좋다”고 감탄했다.
점심을 먹은 뒤 커피를 한 잔씩 들고 있던 40대 직장인 김수정·한대근 씨는 한목소리로 “실내 공연장이었다면 이런 느낌이 안 들었을 것 같다. 주변 풍경과 바람 소리가 어우러져 훨씬 좋았다”고 말했다. 김수정 씨는 “평소에도 회사 근처에 좋은 산책길이 있다는 게 큰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길에서 음악까지 들으니 최고의 복지 혜택인 것 같다”고 했다. 한대근 씨는 “거리공연은 거의 2년 만이다. 그동안 코로나19 때문에 뭔가 빼앗기고 잃어버린 것 같았는데 어제(5월 2일)부터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것도 그렇고 평범한 일상을 돌려받는 느낌을 받았다”며 “우리뿐만 아니라 지나가던 많은 이들도 음악으로 조금은 치유받지 않았을까”라고 했다.

▶5월 3일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테너 손형빈씨가 거리공연을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끊긴 무대… 소중한 기회 절감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손형빈 씨가 처음 거리공연에 나선 건 미국 유학에서 막 돌아온 10년 전이었다. “밤 11시쯤 양재천 야외공연장에서 연습 삼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45분쯤 지났을까요? 아무도 없던 관객석 상단이 가득 찼더라고요. 그 늦은 밤에 200명 넘게 앉은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들도 광장문화를 갈망하고 있구나 생각했죠. 그래서 거리공연을 시작했어요.”
매해 100~150차례씩 10년 동안 거리공연을 펼치며 내공도 많이 쌓였다. “바로 앞으로 사람들이 막 지나가는데 공연에 어떻게 집중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가로수 나뭇잎을 관객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사람뿐만 아니라 나무와 같은 자연까지 공연 환경이 되기 때문에 날마다 느끼는 감성이 달라요. 버스커를 대하는 시민 반응도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천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물어봐주고 같이 공감하는 걸 느끼거든요.”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거리공연도 어려워졌다. 막막하던 그는 청소 전문 업체에 등록해 청소일을 시작했다. 아파트 단지 몇 곳을 맡아 하루 6~7시간 동안 욕실을 청소했다.
“아예 다른 직업을 선택해야 하나 고민할 수도 있었는데 생각을 달리했어요. 몸으로 부딪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 할수록 예술적으로 더 풍부해지고 제 인생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이죠.”
다행히 2021년에는 코로나19 대유행이 누그러질 때를 이용해 거리공연을 50차례 가까이 할 수 있었다. 지방자치단체와 정부의 지원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깨달았다.
“정부와 지자체가 어려운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것에 굉장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10년 동안 거리공연을 하면서도 고맙다는 걸 못 느꼈는데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이게 정말 소중한 기회라는 걸 느꼈거든요. 저희만 어려운 게 아니라 거리공연 기획사들도 똑같이 어려워요. 우리나라도 거리공연을 정책적으로 좀 더 지원하면 유럽의 거리처럼 연주자와 예술가들로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

추경 100억 원 투입
소규모 대중음악 공연 지원

코로나19로 인한 음악인의 피해는 심각하다. 중소 음반사(레이블)와 유통사를 회원으로 둔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가 2021년 5월 발표한 대중음악 공연 취소 현황을 보면 2020년 2월부터 2021년 5월까지 모두 1089건의 대중음악 공연이 취소됐다. 공연마다 티켓이 80%가량 팔린다고 가정해 추산한 피해액은 1840억 원에 달한다.
인디 뮤지션이 많이 활동하는 홍대 인근 공연장에서는 코로나19 이후 454건의 공연이 취소돼 21억 원 규모의 피해가 발생했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소속 기획사의 공연은 전국에서 430건이 취소돼 피해액은 약 1438억 원이었다.
이에 정부는 코로나19 장기화로 피해를 본 소규모 대중음악 공연장과 대중 가수들을 지원하기로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2년 1회 추경예산 100억 원을 투입해 300석 이하 소규모 대중음악 공연 개최를 지원한다고 최근 밝혔다.
아리랑TV, 대한가수협회, 한국매니지먼트연합,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등 국내 대중음악 관련 단체와 함께하는 이번 사업으로 5월부터 12월까지 대중 가수 1300여 팀, 공연 330차례 개최를 지원한다. 일부 공연은 온라인 생중계나 아리랑TV 방송 프로그램으로 제작해 국내외 팬들에게 선보일 계획이다.
사업에 참여할 대중 가수와 소규모 공연장은 공모로 선정한다. 대중 가수는 인디음악, 기성 가요, K-팝 등으로 분류해 발매 음원(음반) 수, 공연 횟수, 라이브 공연 가능 등을 기준으로 선정한 뒤 출연료를 지원한다. 대중음악 공연을 진행하는 300명 이하 소규모 공연장은 등록 공연장 여부, 공연장 면적, 객석 수, 공연장 등록일 등을 기준으로 선정해 대관료를 지원한다.
문체부 정책 담당자는 “소규모 대중음악 공연장과 대중 가수는 대중음악의 다양성과 경쟁력을 지키는 근간”이라며 “이번 지원사업이 코로나19로 생계를 위협받는 대중음악계에 도움이 돼 코로나19 이후 관련 업계가 빠르게 회복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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