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을까? 크고 작은 일들이 계속 벌어지는 제주 시골 마을에서의 삶│우희덕
좁은 문을 열었다. 이상한 섬나라의 아저씨를 만나고 나서였다.
집 현관 안쪽에 있는 중문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열리지 않았다. 묵직한 목재 프레임과 두꺼운 유리로 만들어진 미닫이문. 멀쩡하던 문이 난데없이 꿈쩍도 하지 않아 집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있는 힘을 다해 문을 옆으로 밀었더니 끽끽 소리를 내면서 한 뼘 정도의 공간이 생겼다. 무리하게 몸을 밀어 넣었다가 한동안 문틈에 끼어 있었다. 내가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고 제주까지 내려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자괴감이 들었다.
가까스로 집에 들어와 문을 손봤지만 진전이 없었다. 혼자 다루기 힘든 크기와 무게였고 세 개의 문이 연동되어 열리는 구조도 단순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부품도 하나 떨어져 나왔다. 이런데도 수리를 맡길 데가 없었다. 문을 생산한 회사는 문을 닫았고 인테리어 업체에서는 터무니없는 비용을 부르고 철물점은 그런 일을 안 한다고 했다. 결국 이곳저곳을 수소문한 끝에 하나의 전화번호가 남았다.
아저씨를 그렇게 만나게 됐다. 그가 낡은 트럭에 잡동사니를 잔뜩 싣고 나타났다. 오십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나이. 제주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남루한 행색에 비쩍 마른 몸. 인도 길거리에서 보던 기인에 가까웠다. 도무지 무언가를 고칠 수 있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우려했던 대로 일이 흘러갔다. 작업이 이해할 만한 이유 없이 지연됐다. 시작부터 그는 스피커폰으로 한참이나 사적 통화를 했다. 내가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아내분이신가 봐요?”
“와이프예요.”
“…….”
“이제 일해야 하니까 말 시키지 마세요.”
나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창밖을 내다봤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일은 더 커져만 갔다. 그가 문을 눕혀 놓고 아랫부분을 깎아내고 있었다. 말없이 깎고 또 깎고 반복해서 깎았다. 이건 나무 안에서 조각상을 찾으려는 미켈란젤로나 방망이 깎는 노인의 환생이었다. 나는 된통 걸린 게 분명했다. 문은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수리비는 작업시간에 비례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내가 따지듯이 물었다.
“지금 문 고치시는 거죠?”
“문 깎고 있잖아요?”
“그만 하면 안 될까요?”
“문이 반만 열려도 괜찮아요?”
시간은 그 이후로도 한참 흘렀고 나는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렀다. 이 모든 게 꿈이길 바라던 그때, 아저씨가 나를 불렀고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새로 설치된 문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럽게 움직였다. 눈길이 닿는 어느 곳 하나 훼손된 곳도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그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문이 열리지 않은 건 문 아래 삽입된 부품,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바퀴가 고장 났기 때문이었다. 고장 난 것과 똑같은 부속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형태가 다른 바퀴 부품을 넣기 위해 문 아랫부분을 세밀하게 깎고 있었던 것이다. 어안이 벙벙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수리비였다. 그는 “3만원만 주세요.” 하고는 돈을 받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쿨하게 사라졌다.
잠시 마법의 세계를 다녀온 듯했다. 누구도 선뜻 나서 주지 않던 일을 이상한 섬나라의 아저씨가 해결했다. 단지 겉모습과 짧은 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는 내 마음 어딘가를 수리했다. 그렇게 닫혀 있던 문을 열었다.
좁은 문을 열었다.
우희덕 코미디 소설가_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벗어나 본 적 없는 도시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제주 시골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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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