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암 출렁다리를 건너 바라본 해안 풍광
강원 동해 ‘해파랑길 33코스’
4월 중순, 여행하기 참 좋은 계절이 시작됐다. 높고 푸른 하늘 아래 햇살은 따스하고 코끝을 감싸는 부드러운 바람은 문밖 나들이를 부추긴다.
완연한 봄기운 속 전국의 산하에는 봄꽃잔치가 한창이다. 이맘때의 걷기여행은 그야말로 꽃길을 걷게 되는 셈이다. 잿빛 대지 위를 걸을 때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발걸음도 경쾌해진다. 알록달록 대자연이 부리는 마법은 청정 동해안을 품고 있는 강원 동해시에도 한창이다. 마침 동해시에는 해파랑길 33코스가 지난다. 애국가의 한 장면으로도 유명한 추암해변을 거쳐 전천~한섬해변~묵호역에 이르는 길목마다 장쾌한 동해안의 절경과 아름다운 숲길, 철길이 길동무로 나선다.
한편 동해시는 지난 3월 화마의 피해를 입은 곳으로 상처 치유를 위한 여행 동참 대상지이기도 하다. 올봄 상춘의 여정을 ‘상생’을 품은 착한여행으로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강원도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해파랑길은 동해시에 이르러 멋진 두개의 코스를 펼쳐 놓는다. 삼척을 지나며 시작 되는 33코스, 강릉으로 이어지는 34코스가 그것이다.
그중 기암절벽 사이 우뚝 솟은 촛대바위를 지나 묵호역에 이르는 33코스는 전형적인 동해바다의 청량감 속에 스트레스를 날리며 아름다운 해변 숲길을 벗 삼아 걸을 수 있는 여유로운 산책길이다. 총거리 13.6km, 쉬엄쉬엄 5~6시간 정도면 사이다 같은 일상탈출을 즐길 수 있다.
애국가 한 장면으로 유명한 최고의 ‘포토존’
촛대바위~전천
해파랑길 33코스의 출발은 동해시 북평동 소재 추암해변이다. 벚꽃이 흩날리는 평일 오전, 부챗살처럼 펼쳐진 아담한 추암해변은 한가로움 그 자체다. 봄 햇살 가득한 백사장에서 늦잠을 즐기는 오리 가족이며 미역을 건지는 부부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다.
해변 곁에 솟은 야트막한 돌산은 유명한 추암촛대바위를 품고 있는데 그 풍광이 압권이다. 세월이 조각해둔 바위의 형상이란 영락없는 촛대다. 주변을 둘러보니 상전벽해. 20여 년 전 찾았던 작은 포구마을은 정감 대신 현대식 상가에 근사한 조각공원을 갖춘 관광지로 변신했다. 촛대바위 이웃 절벽으로는 해상출렁다리도 놓였다. 리듬을 타며 걷고 난 후 뒤돌아보는 남쪽 풍광은 추암 최고의 ‘포토존’이다,
길은 추암역 아래로 난 굴다리를 지난다. 추암역은 동해바다열차가 운행되는 간이역이다. 북평동 방향 대로변 한 켠 자전거길과 함께 해파랑길 33코스가 이어진다. 터널을 이룬 벚나무 아래 뿌려대는 꽃비를 맞으며 걷는 기분이 쏠쏠하다.
도로 건너편은 동해자유무역지역, 북평공단이 들어선 공장지대다. 동해화력발전소와 하수처리장을 통과해 동해항 남쪽 구호동 해변으로 향한다. 넘어가는 숲길이 잘 조성 돼 있다. 산 아래에는 1947년 북평지역 유림들이 해방의 기쁨을 담아 세웠다는 호해정(湖海亭)이라는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호해정 앞은 두타산 무릉계곡을 출발해 북평동을 거쳐 동해로 이어지는 전천(箭川)이 펼쳐진다. 동해항이 개항되기 전에는 이곳이 왕모래밭으로 유명한 해수욕장이었다는 게 주민들의 귀띔이다. 송정비행장 자리에 시멘트공장이 들어서며 해변을 망쳤다고 한탄했다. 그때는 주민들이 순진해서 정치인들이 밀어붙이면 그냥 그런가보다 했던 게 아름다운 경관을 내주고 말았다는 아쉬움이다.
민물과 바다가 만나는 이곳 기수지역은 근동 주민들이 반찬거리를 준비할 겸 손맛을 즐기는 포인트다. 그러다보니 꾼들 중에는 할머니, 아주머니들도 섞여 있다. 요즘엔 학꽁치, 전어, 도다리 등에 도전하는데 전어는 그야말로 물반고기반이다. 벚꽃 질 무렵 올라오는 회귀어종 황어는 이제부터 선발대가 도착하기 시작했다. 팔뚝만한 숭어가 펄쩍 뛰어오르는 모습만으로도 기수역에 나와 있음을 실감케 한다.
천곡동에서 왔다는 한 할머니는 연신 전어를 낚아 올렸다.
“잘하기는. 요새는 전어가 버글버글하다니. 횟감도 되지만 자잘한 것은 젓갈을 담그면 황석어젓보다 더 맛있거든.”
호해정을 지난 길은 전천변을 따라 이어진다. 전천 산책로와 천변 공원은 동해시민들의 일상속 쉼터이자 야외 헬스장과 다름없다. 전천 하천 돌다리를 건너면 영동선 동해역으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철길과 LS전선 사이로 난 좁다란 흙길에는 노란 민들레꽃이 마치 활주로의 유도등처럼 길을 밝힌다. 길섶에 올망졸망 피어오른 야생화를 살피며 걷다보면 어느덧 고속열차(KTX)가 정차하는 동해역이다.
▶기차길, 걷기길,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해파랑길 33코스
동해의 절경 품은 4개의 해변 그리고 길
감추~한섬~고불개~하평
동해역을 지나 마주하는 동해시 주변은 한적한 지방 소도시의 전형이다. 해군1함대사령부를 지나 굴다리를 통과하면 한섬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소나무길 산책로에 접어든다. 도로와 영동선 철로 사이 펼쳐진 소나무길 군데군데 벚꽃이며 산수유꽃이 분위기를 화사하게 밝혀준다.
해파랑길 33코스의 백미는 네 개의 작은 해변을 따라 걷는 길이다. 감추-한섬-고불개-하평 등 네 곳의 해변은 청정 동해의 거친 파도가 드나들며 절묘한 절경을 빚어 놓았다. 그 풍광을 따라 해변과 숲길을 넘나들며 운치 있는 코스가 이어진다.
동해시 천곡동과 가까운 감추해변은 300여m의 호젓한 백사장을 중심으로 갯바위와 울창한 송림에 둘러싸여 운치를 더한다. 해변에는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창건했다는 고찰 감추사가 자리하고 있다.
인근 한섬해변은 작은 야산과 어우러진 해변으로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울창한 송림과 기암괴석이 멋진 풍광을 연출한다. 석회암 암석 기둥인 라피에와 몽돌해변을 품고 있어 지질학적 가치도 높은 곳이다. 해안절경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은 결코 발품이 아깝지 않을 분위기를 담아낸다. 선뜻 다시 찾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곳이랄까.
길은 고불개해변으로 이어진다. 작은 어촌마을을 품고 있어 더욱 한적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다. 긴 세월 파도가 빚어낸 절경 사이 갯바위에는 손맛을 즐기는 태공들이 점점이 박혀 세월을 낚고 있다.
고불개에서 하평해변까지 연결된 바닷가 산책로 또한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동해시 평릉동에 자리한 하평해변은 기찻길 옆 해수욕장이다. 산책로와 나란히 철도가 지나고 있어 간혹 해변 옆으로 기차가 지나가는 낭만적 장면도 목도할 수 있다.
기찻길 옆 마을 풍광에 추억이 새록새록
하평해변~묵호역
하평해변을 지나 묵호항역으로 향한다. 묵호항역은 화물전담 역사다. 예전에는 여객-화물 모두를 취급하던 묵호역이었는데 이제 여객을 전담하는 묵호역이 인근에 새둥지를 틀었다.
주변은 옛 추억을 되살려 주는 공간이다. 마을길을 가로질러 철로가 통과하는 바람에 굴다리가 놓여 있는가 하면 지난 날 기찻길 옆 마을 풍광도 간직하고 있다.
발한동 향로봉길 마을을 걷다보면 해파랑길 33코스 종점 묵호역사거리다. 묵호역 주변은 묵호항과 어판장, 중앙시장, 논골담길 등 보고 즐길 거리 등이 산재해 있어 동해시 여행에 재미를 더한다.
여행메모
가는 길
열차 서울역에서 동해역까지 KTX(2시간 40분 소요)
승용차 서울∼광주원주 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동해IC
버스 서울~동해 3시간 소요. 고속버스(코버스 www.kobus.co.kr)/ 시외버스(버스타고 www.bustago.or.kr)
대중교통
동해역~추암해변 동해역에서 11-1번 버스(30분 소요)
택시 7000원(10분소요)
▶생선구이
▶호남식당 백반
뭘 먹을까?
동해시에는 일반적으로 해물요리를 즐길 수 있는데 묵호항에서는 생선회, 문어, 대게 등 계절에 따른 신선한 미각을 맛볼 수 있다. 묵호역 근동에서는 중앙시장의 생선구이가 토박이 추천 맛집이다. 생선구이정식 1인 1만 원(고등어 등 단일 어종을 구워 준다), 2만 원이면 열기, 임연수, 갈치, 고등어 등 네 가지 생선구이를 맛볼 수 있는데 두세 명이 먹기에 충분하다. 밑반찬도 정갈한 무코어구이가 잘한다.
동해역 앞 호남식당 백반도 괜찮다. 대략 아홉 가지 반찬이 나왔는데 다 먹을 만하다. 청국장 뚝배기에 계란프라이가 정감 넘친다. 7000원
김형우 한반도문화관광연구원장(관광경영학 박사)_ 신문사에서 20년 동안 관광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전 세계 50여 개국, 전국 각지의 문화관광자원 현장과 정책을 취재했다. 지금은 한반도문화관광연구원을 통해 한반도관광 활성화, 대한민국관광 명품화 작업에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