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동냉이된장
▶장흥된장물회
된/장/요/리
장 담그는 계절이다. 지역별로 다르지만 남쪽은 음력 정월 된장을, 중부 지방은 2월 된장을 담근다. 늦어도 음력 3월 3일 삼짇날(2022년은 4월 3일)까지 담가야 한다. 이 시기를 놓치면 소금을 더 넣어야 하니 된장이 짜게 된다. 그래서 요즘 중북부 지방 종갓집에선 장 담그기가 한창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하루도 콩을 먹지않고 살기 어렵다. 두장(豆醬) 문화권의 종주국이기 때문이다. 가을에 거둔 콩으로 겨울을 나고 봄엔 메주로 된장과 간장을 담가 맛과 에너지를 얻었다.
살펴보면 우리나라 사람의 식탁에 콩이 올라가지 않는 날은 거의 없다. 한번 상상, 아니 기억을 더듬어 보자. 어제 오늘 받아든 밥상은 어땠을까? 콩밥을 먹었다면 그걸로 끝이고 반찬에 된장찌개, 콩자반, 콩나물, 두부 등이 있지 않았나? 콩밥에 청국장을 얹고 숙주나 콩나물을 쓱싹 비벼 먹었다면 거의 콩으로만 끼니를 때운 셈이다.
콩알이 보이지 않았더라도 없는게 아니었다. 간장으로 양념하고 된장을 넣어 버무리는 것은 한식의 기본이다. 장조림, 생선조림, 나물무침, 된장박이 등은 죄다 콩이 들어간 요리다. 뭔가 기름을 두르고 굽거나 튀긴 반찬이라면 대두유를 썼을 확율이 높다.
우리나라는 콩 없이 하루도 살기 힘들다. 말에도 빠지지 않는다. 대두는 한자로 숙(菽)이라 불렀다. ‘쑥맥’이란 말은 고서 <좌전(左傳)>에 기록된 숙맥불변(菽麥不辨)에서 나온 말이다. 콩과 보리를 구분할 줄 모른다는 뜻이다. 속담에도 많다. 우린 오랜 세월을 콩과 함께 살아왔고 요즘은 웰니스(건강+행복) 열풍과 함께 다시 그 연을 깊숙이 맺고 있다.
만주가 원산지로 동아시아 대표적 작물인 콩은 세계 3대 곡류에 들지 못한다. 쌀과 밀 그리고 신대륙의 옥수수에 밀린다. 콩 자체만 가지고 그대로 주식으로 삼지 못한다는 점이 그 이유다. 또한 점성이 부족해 다른 곡물과 섞거나 물리적 화학적 변형을 가해야 한다. 대신 특유의 높은 단백질 함량과 고유의 맛으로 다양한 식재료로 변형이 가능하다는 것은 콩이 가진 큰 장점이다.
인류에게 단백질은 곧 맛있는 것을 의미한다.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생성되는 아미노산이 ‘감칠맛’을 내기 때문이다. 감칠맛을 제대로 내기 위해선 육류나 조개, 생선 등 비싼 식재료를 많이 써야했지만 인류는 단백질을 발효함으로써 그 맛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나라 사람은 식물인 콩을 소금과 함께 발효시켜 상당한 맛을 찾아냈는데 그것이 바로 된장, 즉 두장이다. 된장을 얻는 과정에 생산되는 것이 간장이다. 된장, 간장이나 액젓(피시소스)은 원리가 같다. 단백질을 분해시켜 맛을 내는 아미노산을 얻는 것이 장을 담그는 주된 목적이었다.
특히 우리 선조들은 콩으로 메주를 쑤며 조그만 콩알 안에 숨어있는 맛을 찾아내려 했다. 메주의 역사는 무척 길다. <삼국사기>에도 나온다. 그 이전에도 고구려의 장이 특히나 맛있다고 기록한 중국 고서(정사 <삼국지>)가 있다.
메주를 담그는 일은 무척 손이 가는 작업이다. 메주콩을 불려 삶은 다음 이를 으깨야 한다. 다시 네모지게 빚어 말리는 시간을 거친다. ‘시간의 맛’이다. 된장을 얻기 위해선 메주를 소금물 독에 띄워 발효시키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때 발효시킨 소금물은 간장이 되고 메주는 꾸덕한 된장으로 바뀐다.(된장 이름의 유래 역시 되다랗다는 뜻이다)
발효를 거친 후 간장과 된장에는 아미노산이 풍부하게 들어 감칠맛을 내는 ‘조미료’와 ‘단백질 공급원’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된장은 궁핍한 농경민족의 식탁에 든든한 밑반찬이 됐다.
봄이면 된장찌개에 냉이를 넣고 여름이면 다슬기와 우렁을, 또 가을엔 미꾸라지를 갈아 넣었다. 부추와 우거지, 시래기 등 밭과 들, 강과 바다에서 나는 온갖 산물을 넣고 끓여도 언제나 맛이 좋았다. 영양가 든든한 찌개로 또는 국으로 거친 밥 한 끼를 넘기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토록 고마운 된장이 지금부터 장독에 들어앉아 세월을 기다린다. 또 독에서 튀어나온 묵은 장은 봄볕 아래 돋아난 봄나물과 만나 찌개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다.
전국의 된장요리 맛집
★또순이네
서울에서 된장찌개하면 이름에 빠지지 않는 곳이 바로 영등포구 양평동 또순이네다. 요즘같은 봄날에는 냉이나 달래를 넣는다. 그 이후론 부추를 넣고 숯불에 보글보글 끓여낸다. 몇 숟가락 떠넣고 밥을 비비면 구수한 장맛에 매료돼 대체 내가 지금 얼마나 많이 먹고 있는지 잊어버린다.
★여다지 회마을
전남 장흥군 안양면 수문해수욕장 인근 여다지 회마을에선 독특한 된장 물회를 맛볼 수 있다. 된장물회는 고추장 물회처럼 맛이 강하지 않다. 깔다구(농어새끼의 방언) 등 제철 잡어에 신 김치와 열무, 된장을 넣고 시원한 물에 말아먹는다. 순하고 구수한 맛이 매력인 된장 물회는 생선회 자체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태백한우골
강원도 태백시 태백한우골은 이 지역에서 ‘실비집’이라 분류되는 고깃집이다. 고기를 먹은 후 된장에 소면을 넣어먹는 된장소면이 마무리로 좋다. 강원도 특유의 진한 된장에 소면을 말아 먹는다. 진한 고소함이 면발 사이에 배 들어 일반 소면보다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