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밤 산책을 나가본 적이 있습니까? 그렇죠, 한 번쯤은 밤 산책을 나가봤겠지요.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토요일 밤에 산책을 나간 적이 있나요? 고민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던 어느 토요일 밤, 아마 11시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걸은 길은 공원 정문이 아닌 쪽문과 연결돼 있었고 저는 키 작은 나무들에 어깨를 스치며 공원 안으로 진입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축구장을 지나,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 두 명이 운동하는 철봉 옆을 지나,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치울 엄두조차 나지 않는 길을 걸으니 이윽고 공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벤치가 나왔습니다.
미리 준비해 간 ‘와르르♥’라는 노래를 들으며 벤치에 앉아 있는데 그 밤에도 사람들이 나와 있더군요. 나무와 불이 켜진 아파트만을 보게 될 거라 생각했는데 밤의 공원에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골든 레트리버를 데리고 나와 팽팽하게, 이내 느슨하게 산책을 하거나 연인끼리 팔짱을 끼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거나 자전거를 가지고 나와 뒷바퀴로 서는 등 기술을 연마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자유기고가로 일하고 있어 아침의 공원, 낮의 공원, 저녁의 공원을 모두 봤지만 토요일 한밤의 공원은 지금까지 본 풍경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아침이나 낮에는 ‘시작’이라는 느낌의 활기가, 저녁에는 ‘해방’이라는 느낌의 활기가 가득했는데 토요일 밤의 공원에는 느슨한 여유와 미지근한 행복이 듬성듬성 놓여 있었습니다.
방역 체계 때문에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서로를 의식하며 빠르게 혹은 느리게 걸음을 조절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몸짓에는 분명 여유와 행복이 있었습니다.
드라마와 야식을 즐기는 것이 진리인 이 밤에 산책을 나와 있는 사람들을 보니 마치 외국에 온 듯 낯선 모습에 마음이 두근거렸습니다. 노랗게 익은 잎을 자랑하는 나무, 그 잎을 투명하게 비추는 조명, 그것들의 배경이 돼준 짙은 남색의 하늘까지 완벽했지요.
혹시나 그 그림 같은 광경을 또 볼 수 있을까 해서 다음 날인 일요일 밤 11시에도 공원에 나가봤지만 그날은 저 외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잠시 벤치에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며 토요일에는 밤 산책을 꼭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날 이후 11시쯤 산책을 다시 나간 적은 없습니다. 너무 늦어 위험하기도 하고 역시 주말 밤에는 드라마와 야식의 유혹을 이길 수가 없더라고요. 하지만 그날의 기억은 외국에 나간 것처럼 바쁜 일상 속에서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그리고 외국에서 겪은 기억이 으레 그렇듯 잠깐 그날을 그리워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요.
이 글이 실릴 때쯤에는 벚꽃이 만개했겠군요. 올봄에도 본격적인 꽃구경은 하지 못하겠지만 대신 밤 산책을 나가볼까 합니다.
김은경 출판 기획 에디터 겸 작가_ 12년 차 에디터.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를 썼다. 2022년에는 ‘성장’과 ‘실행’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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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