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봄날>│유튜브
▶버스커버스커 <벚꽃 엔딩>│유튜브
봄은 짧지만 봄노래는 넘쳐난다. 누구나 봄 앞에서 흔들린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에 가슴 뛰지 않는 이가 누가 있으랴?
지난 수년 동안 봄을 지배한 노래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이었다. 2012년 발표된 뒤에 매년 봄마다 ‘역주행’을 거듭하면서 싱어송라이터 장범준에게 ‘벚꽃 연금’을 안겨준다. 지금까지 장범준이 벌어들인 저작권료만 수십억 원에 이른다니 거의 로또 수준이다. 최근에는 그룹 방탄소년단의 ‘봄날’이 강력한 대항마로 등장했다. 2017년 발표된 이후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인기에 힘입어 매년 봄이면 역주행하는 곡으로 떠오르고 있다. ‘벚꽃 엔딩’에 자극받아 잇달아 선보인 봄노래들도 지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볼빨간사춘기의 ‘나만, 봄’, 아이유의 ‘봄 사랑 벚꽃 말고’ 등이 그런 노래다.
▶아이유 <봄 사랑 벚꽃 말고>│유튜브
‘벚꽃 엔딩’ ‘봄비’ ‘진달래꽃’…
원래 봄이 되면 등장하는 스테디송은 따로 있었다. 비라도 흩뿌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박인수의 ‘봄비’가 그것이다.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며/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며/ 나 혼자 쓸쓸히 빗방울 소리에/ 마음을 달래고/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사실 박인수가 불러 유명해졌지만 작사·작곡자인 신중현을 빼고 얘기할 수 없는 노래다. 1969년 그가 이끄는 밴드 덩키스의 앨범에서 이정화가 먼저 불렀다. 그 곡을 박인수가 다시 불러 히트시켰다.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신중현 사단의 가수 김정미가 부른 ‘봄’도 명곡 반열에 드는 곡이다.
“빨갛게 꽃이 피는 곳 봄바람 불어서 오면/ 노랑나비 훨훨 날아서 그곳에 나래 접누나/ 새파란 나뭇가지가 호수에 비추어지면/ 노랑새도 노래 부르며 물가에 놀고 있구나.”
1973년 여고를 갓 졸업한 김정미는 한국형 사이키델릭 로커로 평가받으면서 섹시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와 흐느적거리는 춤으로 단숨에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봄을 이야기하면서 김소월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의 대표 시 ‘진달래꽃’으로 노래를 만들어 히트시킨 건 가수 마야였다. 마야는 가곡이나 발라드에 어울릴 것 같은 시를 록 음악으로 만들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로 조용히 시작된 노래는 “날 떠나 행복한지 이젠 그대 아닌지/ 그대 바라보며 살아온 내가/ 그녀 뒤에 가렸는지…/ 내 영혼으로 빌어줄게요”에 가서 폭발한다.
화창한 봄날이 시작될 무렵이면 빼놓을 수 없는 동요도 있다. 노란색 원복을 입고 줄지어 가는 유치원생들과 마주치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엄마 엄마 이리 와 요것 보셔요/ 병아리떼 뿅뿅뿅뿅 놀고 간 뒤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
‘봄’이라는 동요다. 오수경 작사, 박재훈 작곡의 이 노래는 대략 해방 이후에 만들어졌다. 작곡가인 박재훈 목사는 한양대 음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목사 안수를 받고 캐나다에서 목회 활동을 하다가 2021년 99세의 나이로 작고했다.
해방 직후 평안남도 강서군 문동국민학교 교사였던 박재훈은 일본 군가만 부르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50여 곡의 동요를 만들었다. ‘봄’ 외에도 “산골짝의 다람쥐 아기 다람쥐…”, “펄펄 눈이 옵니다…”, “시냇물은 졸졸졸졸…”, “송이송이 눈꽃 송이…” 등이 그가 만든 동요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으로 시작하는 ‘어머님 은혜’도 그의 곡이다.
▶볼빨간사춘기 <나만, 봄>│유튜브
‘봄나들이’ ‘나의 살던 고향은’ ‘봄날은 간다’…
윤석중 작사, 권태호 작곡의 노래 ‘봄나들이’도 빠질 수 없는 노래다. “나리 나리 개나리 잎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 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라는 가사처럼 따뜻한 봄날이 만져질 듯한 노래로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작곡가 권태호의 고향인 안동에서는 매년 봄마다 ‘봄나들이 동요제’가 열린다. 꽃이 활짝 많이 피어 화려한 봄의 한가운데서 한 번쯤 불러봤을 동요도 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경남 양산이 고향인 이원수가 노랫말을 쓰고 홍난파가 작곡한 노래다. 이원수는 민족 동요의 작사가이자 교육자로 존경을 받았지만 홍난파는 일제에 적극 협조하다가 요절한 뒤에 변절자로 낙인찍혔다.
짧지만 아름다운 봄이 끝나갈 무렵이면 빠질 수 없는 노래가 또 있다. 바로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가 그것이다. 한 시 전문지에서 시인 100명이 뽑은 대중가요 노랫말 부문 1위를 차지한 노래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1953년 전쟁의 폐허 속에서 발표된 이 노래는 손로원이 가사를 쓰고 박시춘이 멜로디를 입혔다. 이 노래는 한영애, 심수봉, 조용필, 장사익 등 수많은 가수가 리메이크했다.
봄은 기다려도 오고 기다리지 않아도 온다. 남도의 끝자락부터 봄이 시작되면 마음이 먼저 남녘으로 달려간다. 해남 땅끝마을부터 강진 땅, 소록도와 통영 앞바다에서 시작된 봄이 온 나라를 뒤흔든다. 이럴 때는 노래라도 있어야 견딜 수 있다.
오광수 대중문화평론가(시인)_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문화 분야에서 기자로 일했다. 저서로는 시집 <이제 와서 사랑을 말하는 건 미친 짓이야>, 에세이집 <낭만광대 전성시대> 등이 있다. 현재는 문화 현장에서 일하면서 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