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병원에 간다. 대개 그간 미뤄둔 치료를 받는데 치료라는 명목으로 신체에 약간 고통을 가하면 업무 때문에 쌓인 정신적 고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몸도 치료하고 괴로움도 잠시 잊는, 현대인으로 살아남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다.
몇 년 전, 왼쪽 귓불을 만지다가 깨알만 한 크기의 멍울을 발견했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그 멍울을 만지작거리다 보니 어느 순간 멍울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럼 그 멍울이 커진 것이 스트레스라 크기를 확인하려고 손을 대고 그러면 그것이 또 붓고 이를 또 확인하고…. 이러한 지옥행 급행열차에 탄 지 몇 년, 드디어 때가 찾아왔다. 업무 때문에 병원에 가야 할 날이.
지식인들이 추천한 의사는 내 귀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더니 국소마취를 할 거고 귓불 앞을 절개하면 시각적으로 신경이 쓰일 수 있으니 뒷면을 절개하겠다고 설명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수술실에 들어와 침대에 모로 누웠다. 곧 의사가 들어와 말했다.
“주사 한 대 놓을게요.”
나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나는 어린 시절 유치도 혼자 뽑았고 주사든 레이저든 못 견딘 것이 없었다. 그뿐인가. 아버지의 쏘나타 차바퀴에 발이 깔렸을 때도 소리 한 번 지르지 않고 견뎠고 친구가 차 문을 잘못 닫아 손가락이 끼었을 때도 침착하게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정신적 고통에 비하면 신체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의사는 내 귀를 접더니 뒷면에 주삿바늘을 찔러 넣었다. 음, 조금 따끔하군. 주사가 뭐 이 정도지 생각하던 찰나 “으악!” 나는 소리를 질렀다. 주삿바늘이 들어왔을 때는 따끔하기만 했는데 엄청난 충격이 시간차를 두고 몰려왔다. 처음에는 애벌로 찌르고 다음에 더 깊이 넣은 건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를 추측하는데 의사가 말했다.
“미안해요.”
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의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실은 주사 두 대 놨어요.”
그는 수술 용구를 달그락거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무서워할까 봐 한 대만 놓겠다고 거짓말했어요.”
그러더니 의사들이 원래 그렇지 않느냐며, 환자가 이해하라며 내 귀를 보며 중얼중얼 말을 흘렸다. 나는 너무 놀라기도 했고 이게 지금 무슨 일인지 파악하려고 열심히 눈동자를 굴렸다. 나… 서른일곱 살인데? 그리고 속으로 너털웃음을 지었다.
의사는 내 귀를 만지며 “환부가 안 보이네요, 아 여기 찾았어요”라며 상황을 중계했다. 그리고 귓불을 봉합하더니 제거한 것을 보고 싶으면 간호사에게 말하라 하고는 수술실을 나갔다. 환자의 호기심마저 시원하게 긁어주는 멘트에 나는 웃고 말았다. 내가 나이를 먹어서도 이런 치료를 받다니.
예전에 어디에선가 이런 글을 보았다. 큰 수술을 앞둔 환자에게 의사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수술을 시작하기 전에 잠시 기도를 하고 싶은데 불편하실까요?”
나는 그 문장을 보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귀를 치료한 지 반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귀를 만지면서 다정함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참고로 말하면 귀 멍울은 그대로다. 그날 의사는 다른 것을 제거했다. 이럴 수가.
김은경 출판 기획 에디터 겸 작가_ 12년 차 에디터.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를 썼다. 2022년에는 ‘성장’과 ‘실행’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