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김밥 계란지단김밥
▶경주보배김밥
김밥
원래는 소풍을 가는 계절이다. 지난 2년간 학생들은 슬펐다. 감염병 탓에 봄소풍을 못 갔다. 아쉬워 춘래불사춘, 서러워 춘래불사춘이다. 소풍(消風)이란 야외로 나가 볕을 쬐고 바람을 쐬는 일이다. 끼니처럼 때가 되면 가야한다. 그걸 못했다.
기억을 더듬어보자. 소풍날이면 늘 설레었다. 잠 못 이뤘다. 늦게 들어 일찌감치 깼다. 온 집안을 가득 채운 고소한 참기름 향이 선잠을 깨운 까닭이다. 나보다 더 일찍 깬 어머니는 부지런히 김밥을 말고 있다. 소풍날의 풍경이다. 요즘이야 흔하지만 당시 김밥은 곧 나들이를 의미했다.
김밥을 볼이 미어져라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노라면 재료들이 뒤섞이며 새로운 맛을 만들어낸다. 혀를 한쪽으로 밀어붙이면 부드러운 소시지와 밥이 함께 씹히며 달짝지근한 맛을, 또 반대편으로 밥을 넘기면 우엉과 단무지의 아삭하고 짭조름한 맛이 난다.
혀 놀림을 따라 하나하나 모두 다른 맛을 낸다. 이것이 우리나라 사람이 좋아하는 복합미(複合味, Blending taste)다. 그래, 김밥은 비빔밥과 같은 맥락이었다.
참기름 밥 속에 든 아삭하고 짭조름한 단무지, 분홍빛 싸구려 소시지는 분명 찰떡궁합이다. 어묵 조림도 우엉과 천생연분이다. 계란말이는 이를 완충시키고 김은 모든 것을 감싸 모양을 유지한다. 시금치와 당근, 때론 참치까지 각각의 맛을 더한다. 당연히 김이 주인공이다. 너무도 지당한 말이겠지만 좋은 김밥은 무엇보다 김과 밥이 훌륭해야 한다.
사실 김밥은 고귀한 몸이었다. 지금이야 바쁜 일상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우는 ‘구황 식품’ 신세가 됐지만 예전엔 값비싼 별미였다. 손이 많이 가는 탓에 평소에는 하지 못하는, 그래서 소풍쯤은 가야 겨우 해먹는 음식이었다. 몸값도 귀했다. 기사를 검색하면 1980년대 초에는 무려 900∼1500원에 팔렸다. 요즘은 보통 2000~4000원이다. 무려 40년 전에 비해 고작 두세 배 올랐다.
김밥은 어디서 왔을까? 대나무 발로 말아낸 오늘날의 김밥 형태는 일본 노리마키(海苔券)에서 시작된 것이 맞다. 이를 위해 김을 네모나게 뜨는 ‘김발’도 그렇다. 일본식 말이 기법과 도구를 사용하지만 김을 생산하고 밥을 싸먹는 본질적 김밥의 원리는 우리가 자생적으로 시작했다는 의견이 많다. 심지어 김을 양식하고 즐겨 먹은 역사는 문헌상 우리가 더 빠르다.
선조들은 김을 어떻게 먹었을까? 애초 ‘김쌈’이란 음식이 있었다. 1928년 잡지 <별건곤>에는 ‘김에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려 재웠다가 석쇠에 구워 밥 위에 놓아 먹는다’고 적었다. 이를 보면 김밥은 기존에 이미 상식(常食)하던 음식 ‘김쌈’이 일본의 식문화 영향을 받아 말아먹는 형태로 변형된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맛도 좋지만 영양학적으로도 꽤 균형 잡힌 음식이다. 고기와 채소, 짠지를 충분히 넣었고 해조류로 감싼다.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어 좋고 간편하게 섭취하지만 밥의 양에 비해 찬이 많아 섬유소는 높고 열량은 그리 높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의 즐거운 날에 늘 함께한 김밥은 이제 허둥지둥하는 출근길 아침이나 바쁜 작업, 이동 중 끼니를 책임지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학생과 회사원에게 값싸게 한 끼를 책임지는 ‘면학과 노동의 연료봉’으로서 그 충실한 기능도 당당하게 해낸다.
김밥과 함께라면 어떤 상황이라도 좋다. 향긋한 김 속 고소한 참기름밥, 그리고 아삭한 채소와 짭조름한 고기가 함께 어우러지는 김밥을 물고 있는 것만으로도 소풍의 즐거움 절반쯤은 경험하는 셈이다. 바야흐로 김밥 한두 줄 손수 싸서 소풍이라도 다녀왔으면 좋을 눈부신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전국의 김밥요리 맛집
★통영 엄마손김밥
경남 통영시는 1955년부터 1994년까지 충무시였다. 이 지역 유명한 김밥의 이름은 여전히 ‘충무김밥’이다. 여수에서 충무를 거쳐 부산 가는 여객선에서 팔던 것이라 ‘뱃머리 김밥’에서 시작됐다. 김에는 순전히 밥만 말아내 꼬치에 꿰고, 호래기(참꼴뚜기)나 홍합을 조려 섞박지와 함께 먹는 독특한 방식이다. 중간에 소를 넣지 않으니 잘 쉬지 않아 좋다. 강구안에 충무김밥집이 즐비하다. ‘엄마손김밥’은 옛날식으로 홍합과 호래기 등을 조려 판다.
★보배김밥
성수기 하루 400∼500줄 판다는 바로 그 집이다. 경북 경주역 근처 성동시장 내에서 이름을 날리는 집이다. 우엉김밥이 시그니처. 달콤 짭조름하게 조려낸 우엉을 김밥 가운데 듬뿍 넣어주고 아예 따로 수북이 더 얹어준다. 손에 들면 제법 묵직할 정도로 굵고 밥의 양도 상당하지만, 바삭한 김과 향긋한 우엉 향이 밥을 온통 지배하니 상관없다. 경주의 대부분 음식에 빠질 수 없는 고소한 참기름이 김밥의 맛을 완성한다.
★연우김밥
서울 마포구 상수동은 젊은이가 많이 사는 곳. 자취생들이 아침이면 바지런히 들러 김밥을 한 줄씩 챙겨가는 곳이 있다. 연우김밥은 좋은 식재료와 숙달된 솜씨로 다양하고 맛있는 김밥을 금세 쓱쓱 말아 파는 집이다. 피크닉 및 워크숍, 직장인 야구단 등이 단체 주문하는 명소다. 당근과 우엉조림, 단무지, 시금치, 햄, 계란말이 등이 들어간 연우김밥은 시그니처 메뉴다. 멸치김밥, 유부김밥, 명태김밥, 참치김밥, 치즈김밥, 꽃나물김밥 등 다양한 가지 메뉴가 있다.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