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파급 효과
‘블랙 스완(Black Swan)’은 불가능하다고 인식된 사건이 실제 발생하는 상황을 말한다. 발생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건은 일단 일어나면 예기치 못한 엄청난 충격과 파급 효과를 낳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랬고 최근의 코로나19 대유행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도 또 다른 블랙 스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전쟁이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2월 26일자). 최근 10년 동안 지정학적 위험요인(리스크)은 글로벌 경제와 금융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 남미의 불안정한 정치, 중동의 종교적 갈등 등은 정치적 리스크를 고조시키긴 했어도 글로벌 기업과 투자자들을 위축시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런 흐름을 깰 것으로 보인다. 세계 11위 경제 대국이자 최대 원자재 수출국인 러시아가 글로벌 경제 체제에서 고립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등 금융 및 수출 규제 잇따라 발표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벼르고 있다. 미국 등은 2월 26일(현지시간)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배제하는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SWIFT에서 퇴출되면 러시아는 수출 대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러시아 중앙은행의 국제 보유고 접근도 제한된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철저하게 배제되는 것이다. 앞서 미국 등 서방세계는 러시아의 침공 직후 금융 및 수출 규제 조처를 잇따라 발표했다.
이러한 제재는 단기적으로 세계 경제에 고물가·저성장·금융시장 불안 등을 일으킬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유지됐던 금융시장 질서와 글로벌 공급망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산유국일 뿐 아니라 니켈, 알루미늄 등 주요 광물과 비료의 원료인 칼리의 주요 생산국이다. 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이다. 러시아는 이번 제재에 맞서 에너지 및 원자재 수출 제한과 가격 인상으로 맞대응할 게 뻔하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러시아 정보기술(IT) 기업들에 대해 중국 화웨이 수준의 강도 높은 제재를 예고했다. 러시아 기업들이 반도체 등 첨단 기술에 접근할 수 없게 되면 장기적으로 러시아의 경제 성장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러시아는 이를 피하기 위해 그동안 중국과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협력을 활발하게 추진했다. 또 러시아는 금융 제재에 대비해 독자적인 결제시스템(SPFS)를 개발하는 한편, 중국의 대외은행 간 결제시스템(CIPS)과 연결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미국 등 서방 중심의 국제 대금결제 시스템에 균열을 낼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장기적으로 글로벌 경제를 두 개의 블록으로 나눌 것이다. 미국과 유럽연합 중심의 블록에 중국-러시아 블록이 맞서는 구조다. 이는 1990년대 이전의 냉전 체제를 떠올리게 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지역 동맹뿐 아니라 모든 나라들과 교역을 추구하는 세계화가 과연 지속가능할지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중국은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보면서 자급자족 체제 강화만이 미국의 압박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대러 전략물자 수출 차단… 스위프트 배제도 동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나라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두 나라는 우리나라의 상품무역에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2021년 기준 러시아는 우리나라 상품수출의 1.55%, 수입의 2.82%에 그쳤다. 우크라이나는 더욱 비중(수출 0.09% 및 수입 0.05%)이 적다.
하지만 에너지 및 원자재는 사정이 다르다. 원유와 천연가스, 석탄, 우라늄, 백금, 고철 등은 러시아 수입 비중이 높기 때문에 에너지 및 주요 광물 수급에서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러시아에 생산공장이 있는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기업들은 반도체 등의 수급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에 우리 정부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 전략물자 수출을 차단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 외교부는 2월 28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정부 결정을 발표하고 관련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에 따라 정부의 수출통제 허가 심사가 강화돼 대러 전략물자 수출이 차단된다. 또 전자(반도체), 컴퓨터, 정보통신, 센서·레이저, 항법·항공전자, 해양, 항공우주 등 미국 측이 독자 통제하는 저사양 품목 57종의 비전략물자에 대해서는 관계부처 간 조치 가능한 사항에 대한 검토를 거쳐 조속히 확정할 예정이다.
외교부 정책 담당자는 “수출통제와 관련된 이번 조치에 대해 미국 측에 외교 채널로 통보했다”며 “정부는 SWIFT 배제에도 동참할 것이며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관계부처 간 협의를 통해 결정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어 “국제 에너지 시장의 안정화를 위한 전략 비축유 추가 방출을 추진하고 액화천연가스(LNG) 유럽 재판매 등 여타 방안에 대해서도 추가 검토하기로 했다”며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한 정부의 인도적 지원 또한 국제사회와 공조 속에서 더 증가시킬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블랙 스완의 교훈은 ‘이 세상에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건은 없다’는 게 아닐까? 블랙 스완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미리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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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