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다리쑥국
▶광양만횟집 도다리쑥국
쑥/국/
“아직 쑥국을 먹지 않았는데 어찌 봄이 왔다고 할까?”
봄은 먹는 것이기도 하다. 매우 성급한 봄은 무정히도 금세 떠나버린다. 꽃바람을 몰고 이제 막 닿은 듯하더니 또 휘리릭 지나간다. 눈과 코, 귀로 즐기는 봄이야 슬쩍 묻었다가 사라진다지만 입으로 삼킨 봄은 몸에 남아 오래 간다.
봄을 가장 닮은 음식은 바로 쑥국이다. 특히 미항(美港)이자 미항(味港)인 통영을 비롯해 거제, 사천 등 경남 남해안 쪽에서 봄철 국으로 끓여 먹던 도다리쑥국은 봄바다를 그대로 빼닮았다. 이름 앞에 도다리가 붙었지만 사실 주인공은 쑥이다. 쑥국에 도다리를 넣은 것이다.
봄은 도다리가 최고로 맛있을 때가 아니다. 가자미목 가자미과에 속하는 도다리는 산란기를 앞둔 가을에 가장 살이 오른다. 사실 쑥만 있으면 도다리 대신 가자미를 써도 상관없다는 얘기다(실제 이렇게 끓이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도다리는 산란을 마친 겨울엔 뼈가 약하고 봄에 부드러운 새 살이 올라 국을 끓이기에는 봄철이 제일 좋다고도 한다. 결론적으로 도다리는 횟감으론 가을, 국거리론 봄에 맛이 가장 좋다는 얘기다. 제철이 두 번이다. ‘봄도다리 가을전어’란 말도 괜히 생겨난 것은 아니다.
좌광우도(머리 쪽에서 볼 때 눈이 왼쪽에 있으면 광어, 오른쪽에 있으면 도다리)란 말이 있다. 원래 옛날에는 값비싼 고급 횟감인 넙치(광어)를 싼 도다리와 구분하기 위해 나온 말이지만 지금은 의미가 없다. 대대적으로 양식하는 광어 값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도다리는 자연산이 많아 이것만 찾아다니는 사람이 많다. 생선의 신세가 바뀌었다.
쑥은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허브다. 단군신화에도 등장하는 나물이다. 번식력이 굉장히 강하지만 ‘한국인’이라는 무시무시한 천적이 있다.
세계 어디나 우리나라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면 쑥이 무성히 우거질 틈이 없다. 봄날에 죄다 캐 버린다. 대표적인 봄나물로 무쳐 먹고 국을 끓인다. 방부작용이 있어 상하기 쉬운 떡에 넣거나 상처에 바르기도 했다. 말리고 태워서 모기를 쫓고 뜸을 뜨는 데도 썼다. 식용이면서 약용이기도 했다.
통영의 수많은 섬에서 자란 해쑥을 쓴다. 차가운 갯바람 속 몇 가닥 안 되는 훈풍을 가려 맞고 돋아난 놈이다. 정월 대보름 전에 캐내서 끓여야 무병장수한다지만 그땐 쑥이 정말 귀하다. 일반적으로 4월까지는 쑥국을 해먹기 좋은 시기다.
생선살과 된장이 우러난 구수한 국물에 싱그러운 쑥을 한 가득 올려 다시 한 번 팔팔 끓여낸다. 특별히 더 들어갈 것도 없다(그래서 ‘쑥국’이다). 한소끔 끓여내고 1인당 한 그릇씩 퍼주면 끝이다. 매운탕처럼 거창하지 않다.
밥을 말기 전에 국물 한 숟가락으로 향과 온도를 음미한다. 그 다음 보드라운 도다리살을 숟가락으로 살살 긁어내 숨죽은 쑥을 함께 떠 입안에 밀어 넣으면 그만이다. 상큼한 봄 향기가 폐부까지 밀려든다. 찬물을 마셔도, 새콤한 볼락 김치를 먹어도 가시지 않을 만큼 진한 향의 여운이 남는다. 그 봄날의 향을 입과 코로 맛보는 음식이다. 나른한 춘곤증을 이겨낼 에너지를 주고 굳었던 미각의 소생을 돕는다.
상머리에 앉으니 숟가락이 저절로 춤을 추며 화창한 봄 소풍이 시작된다. 아직 바람이 찬데 뜨끈한 국물이라 더 좋다. 한 숟가락에 비타민과 단백질까지 모두 들었다. 봄날도 들었다.
전국의 쑥국 맛집
★동해식당
통영시 중심가 항남동에서 지역 특성과 향토색 가득한 밥상을 차려 내는 집이다. 철 따라 제철 재료를 쓰는데 요즘은 도다리쑥국을 준다. 향기가 진한 해쑥과 큼지막한 횟감 도다리 하나를 통째로 넣고 끓여낸 국의 그 진한 녹색에 마음까지 파릇해진다. 볼락 등 생선구이, 멍게비빔밥 등 다양한 통영의 손맛을 즐길 수 있다.
★충무집
서울 노포와 맛집이 몰려 있는 중구 다동에는 통영 토박이 사장이 하는 통영향토음식점 충무집이 있다. 통영까지 가지 않고도 정통 도다리쑥국을 즐길 수 있다. 향긋한 멍게비빔밥과 함께 맛보는 시원한 국물은 잃어버린 봄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해준다. 횟감도 여느 집에서 쉽사리 볼 수 없는 것이다. 곁들여내는 찬도 통영 그대로다. 꼬시래기, 톳, 미역 등 바다 내음 가득한 해조류 나물처럼 맛좋고 영양가 높은 반찬을 상에 깔아준다.
★광양만횟집
전남 광양에도 도다리쑥국을 잘하는 집이 있다. 남해를 끼고 있으니 그렇다. 신시가지인 중동 광양만 횟집은 계절마다 제철 음식을 내는 집이다. 섬진강 하구 망덕포구의 명물인 벚굴도 있지만 요즘은 어른 손바닥보다 두 배쯤 큰 도다리를 넣고 끓여낸 도다리쑥국이 인기다. 특히 도다리를 넣은 미역국도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다.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