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11월 15일 청와대에서 화상회의로 진행된 제4차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정상회의 및 협정 서명식에서 협정문에 서명한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 옆에서 박수를 보내고 있다.│청와대
RCEP 발효 의미와 우리 경제 영향
비교우위론으로 무역의 중요성을 설파한 영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가 살아있었다면 반색을 할 만한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이 2월 1일 국내에 발효됐다.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15개국이 참여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다. 2011년 아세안이 협상을 최초로 제안한 이후 50차례의 협상과 회의를 거쳐 2020년 11월 15일 제4차 정상회의에서 최종적으로 타결됐다. 우리나라보다 일찍 비준 절차를 마친 중국, 일본 등 10개국에서는 1월 1일부터 발효됐다.
대중 무역적자 확대 등을 이유로 2019년 불참을 선언한 인도를 제외하더라도 RCEP의 규모는 메가급이다. 이 지역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뿐 아니라 인구 및 무역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 경제구역이다. 2019년 기준으로 GDP는 25조 8000억 달러(29.5%), 인구는 22억 7000만 명(29.5%), 교역 규모 12조 5000억 달러(30%)에 이른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세계경기가 침체되고 미중 갈등으로 보호무역주의와 자국우선주의가 확대되는 와중에 역내 자유무역을 통한 공동의 번영을 추구하는 아시아식 협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아시아 중심 가치사슬 구축
특히 전통적인 글로벌가치사슬(GVC)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RCEP은 아시아 중심의 가치사슬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주요 2개국(G2)을 넘어 아세안 지역 핵심 국가들을 상대로 교역을 다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됐다.
애초 협상을 주도한 중국이 이 협정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협정 타결 후 영국 <이코노미스트> 등 외신들은 회원국 가운데 가장 큰 이득을 보는 나라로 우리나라와 일본을 지목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마이클 플러머 교수 등의 연구 결과 2030년까지 우리나라와 일본의 실질소득은 이 협정이 없을 때와 비교해 1%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도 2020년 12월 발간한
에서 우리나라의 GDP가 0.51%, 소비자 후생은 55억 달러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RCEP은 우리나라와 일본, 일본과 중국이 서로 시장을 개방하는 효과를 낳는다. 특히 우리나라와 일본은 경제적 측면에서 관계 개선을 꾀할 수 있다. 이 협정에 따라 일본의 대한국 관세 철폐율은 83%에 이르게 된다(대중국은 86%). RCEP은 동아시아 지역 가치사슬 구축을 이끌 수 있는 한중일 FTA의 추진동력이 될 수 있다.
RCEP의 가장 큰 장점은 통일된 원산지 규정이다. 아세안 국가들은 우리나라, 중국, 일본과 각각 무역협정을 맺고 있다. 이들 나라가 수출한 상품은 목적지에 따라 각기 다른 세 가지 관세 규정이 적용된다. 하지만 RCEP이 발효된 이후에는 기업들은 한 가지 규정만 적용받는다. 역내가치포함비율(역내에서 조달한 재료 가치가 상품 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0% 이상이면 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경쟁력 있는 공급망 확보
중국은 그동안 자신을 제외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추진되는 과정을 예의주시했다. TPP는 국영기업을 통제하고 강력한 노동 조건 및 환경 기준을 포함한다. RCEP은 이런 제약이 없어서 중국 중심의 공급망을 강화할 수 있다.
이는 아세안 회원국들에도 이득이다. 아세안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주요 20개국(G20) 국가들의 전면적인 봉쇄 조처로 큰 타격을 받았다. RCEP은 아세안 회원국들이 G20의 갑작스런 수출 제약 등을 견딜 수 있는 경쟁력 있는 공급망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반면 RCEP으로 인해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RCEP 회원국들은 미국이 이 협정에 관심을 갖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미국 중심의 공급망은 아세안에도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내 정치적 상황은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이 지역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지만 중국의 부상을 마냥 지켜만 보고 있을 수도 없다. 미국은 RCEP 타결 이후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과 연대해 미국 주도의 통상 규칙을 만들겠다”고 언급했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의 공급망 경쟁에서 실리를 추구해야 한다.
이춘재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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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