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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를 둘러싼 다양한 이름
누구에게나 지치고 적적할 때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죠. 필자에겐 추위가 매서워진 이맘때면 생태탕이 떠오릅니다. 10여 년 전 한 기사를 보고 찾아간 것을 인연으로 지금도 가끔 들르는 바닷가 근처 식당인데요. 비릿하고 적막하던 항구가 활기를 띠는 아침, 뜨끈한 생태탕 한 그릇은 허기뿐만 아니라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까지 따듯하게 데워주는데요.
“피가 되고 살이 되고/노래 되고 시가 되고/(중략)/내장은 창란젓 알은 명란젓/아가미로 만든 아가미젓/눈알은 구워서 술 안주하고/괴기는 국을 끓여 먹고(후략).” 가수 강산에의 ‘명태’ 노랫말처럼 명태는 살과 뼈는 국이나 찌개를, 알과 내장은 젓갈을 담가서, 꼬리와 지느러미는 볶아서 국물을 내는 데 쓰는 그야말로 ‘버릴 것 하나 없는’ 생선입니다. 그만큼 다양한 이름이 붙는 생선도 없습니다.
명태라는 이름의 기원에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선 후기의 문신 이유원의 <임하필기(林下筆記)>를 보면 “명천(明川)에 사는 어부 중 성이 태씨(太氏)인 사람이 물고기를 낚았는데 이름을 몰라 지명의 명(明) 자와 잡은 사람의 성을 따서 명태라고 이름 붙였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외에도 함경도 등에서는 명태 간에서 짠 기름으로 등불을 밝혀서 ‘밝게 해주는 물고기’라는 의미로 명태로 불렀다는 설이 있고 영양부족으로 눈이 침침해진 산간지방 사람들이 해안으로 나와 명태 간을 먹고 눈이 밝아져 명태라고 부르게 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옵니다.
생태, 북어, 노가리, 코다리…
이 같은 설들은 명태가 우리나라에서 유래한 ‘국민 생선’임을 증명하는데요. 이는 주변 나라들이 사용하는 명태 이름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멘타이’(또는 스케토다라), 중국에서는 ‘밍타이위’(또는 샤쉐), 러시아에서는 ‘민타이’라고 부르는데요. 명태가 ‘원조 한류 K-생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
이러한 명태는 말린 상태나 크기, 보관 상태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다른데요. 우선 갓 잡은 싱싱한 명태는 ‘생태’라고 합니다. 말린 것으로는 ‘북어’ ‘노가리’ ‘코다리’가 있는데요. 먼저 북어는 명태를 바닷바람에 바싹 말린 것으로 건명태라고도 합니다. 이중 어린 명태를 바싹 말리면 노가리라고 하고요. 코다리는 명태의 내장과 아가미를 빼고 코를 꿰서 반건조한 것이어서 코다리로 불립니다.
얼린 것으로는 ‘황태’와 ‘동태’가 있습니다. 황태는 보통 산악지역에서 말린 명태를 말하는데요. 추운 겨울철 일교차가 큰 지역에서 바람을 맞으며 얼리고 녹이는 것을 반복해 식감이 부드러워지고 살도 황색으로 변하는데요. 그래서 이름도 황태라고 합니다. 반면 겨울에 잡자마자 영하 40℃ 이하로 급속하게 얼린 명태는 동태라고 하고요.
이번엔 젓갈을 알아볼까요? 명란젓은 명태 알을 소금에 절인 것이고요. 창난젓은 명태 창자에 소금을 뿌려 삭힌 것, 아감젓은 명태 아가미만 손질해 소금을 뿌린 뒤 삭힌 것입니다.
춘태, 추태, 조태, 망태, 원양태…
명태는 잡는 시기와 방법, 장소에 따라서도 다양하게 불리는데요. 봄에 잡히면 춘태, 가을에 잡히면 추태라고 하고 낚시로 잡는 조태, 그물로 잡는 망태가 있습니다. 또 원양에서 잡히면 원양태, 근해에서 잡히면 지방태, 강원도에서 잡히면 강태라고 부릅니다.
이토록 명태를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고 여러 용도로 활용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명태가 많이 잡혔기 때문인데요. 어찌 된 일인지 요즘 우리 식탁에선 국내산 명태를 쉽게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기후 변화로 명태가 서식지를 옮긴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노가리 같은 어린 명태를 과도하게 잡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의견도 있는데요.
다행히 이런 명태를 살리기 위해 해양수산부가 2014년부터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가운데 2016년 9월 세계 최초로 명태 완전양식 기술개발에 성공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렸습니다. 현재는 이 기술을 바탕으로 양식 산업화를 위한 양식기술 고도화 기술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데요. 최근에 강원도 고성 앞바다에서 어획된 명태가 수만 마리 된다고 하니 아무쪼록 프로젝트가 성공해 어부들은 풍어의 기쁨을, 국민들은 밥상의 기쁨을 느끼기를 바라봅니다.
백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