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일이다. 일간신문사로부터 제안 하나를 받았다. 트로트 가수 나태주와 시인 나태주를 묶어서 하나의 기사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모처럼의 제안이고 그래서 해보기로 했는데 일정 조정 과정에서 그만 일이 무산돼버렸다.
문제는 기사를 제안한 쪽에서 트로트 가수의 일정만 고려하고 시 쓰는 사람의 일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데에 있었다.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알고 보니 일을 주선한 기자가 문화부 소속 기자가 아니고 연예부 소속 기자였다. 그러면 그렇겠지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예전엔 연예 담당 기자가 문화부 안에 소속돼 있었는데 이제는 문화부를 나와 새로운 부서를 만들거나 오히려 연예부 속에 문학 담당 기자를 배속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어쨌든 문화부보다는 연예부가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데에 격세지감이 들었다.
누구라도 포털 사이트의 인터넷 인물정보란을 살펴보면 연예인 중심으로 구성돼 있음을 대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연예인과 타 분야 예술인이 동명이인으로 여럿 있다면 여지없이 연예인이 선두에 나오게 돼 있다. 그건 멀리 가서 찾을 일도 아니다.
예전엔 시 쓰는 나태주인 내가 인물정보란에 먼저 나왔는데 이제는 트로트 가수인 나태주가 먼저 나오고 시 쓰는 나태주는 ‘동명이인’이 돼 아래로 내려간다. 굴욕스럽지만 참을 수밖에 없는 일. 뉴스의 생성 빈도수나 무게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거다.
연예인으로 조금만 활동을 하면 대번에 인물정보란에 이름과 사진이 뜬다. 그러나 타 분야 예술인은 어림도 없다. 이것도 우리 집안 얘긴데 우리 딸 나민애는 문학평론가로서 언론에 300회 넘게 시 감상 연재를 하고 전문 저서 네 권을 냈는데도 인물정보란에 감감무소식이다.
가히 우리나라가 연예인 공화국이 아닌가 한다. 너도나도 연예인 쪽만 바라보고 있고 젊은 세대들은 그쪽만을 동경한다. 어떻게 하든 젊고 어린 나이에 뜨려고만 한다. 뜨는 것은 명예가 아니고 명성이라는 것을 모른다. 오히려 어린 나이에 명성을 얻으면 그 인생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걸 또 모른다.
굳이 젊은 나이에 뜨지 말자는 말도 아니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서로 조심하면서 품격을 갖자는 데서 하는 말이다. 연예인을 대접해주지 말자는 편협한 주장은 더구나 아니다. 대접해주고 드러내주더라도 너무 심하게 편파적으로는 하지 말자는 말을 이렇게 하는 것이다.
언젠가 강연을 갔을 때 중학생에게서 들은 얘기다. 나태주란 시인이 와서 시 강연을 하는 걸 들으러 간다는 손자의 말에 언제 노래 부르는 나태주가 시를 써서 시 강연을 하러 오느냐고 할머니가 물었다고 한다. 실소가 절로 나오는 얘기다.
나태주 시인_ 풀꽃 시인. 한국시인협회장. 100여 권의 문학 서적을 발간했으며 충남 공주에서 풀꽃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다.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