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경인면옥 평양냉면
▶태백 평양냉면 수육
냉/면/
“평양 사람이 타향에 가 있을 때 문득문득 평양을 그립게 하는 한 힘이 있으니 이것은 겨울의 냉면 맛이다. (중략) 꽁꽁 어른 김치죽을 뚫고 살얼음이 뜬 김장 김칫국에다 한 저 두 저 풀어 먹고 우르르 떨려서 온돌방 아랫목으로 가는 맛! 평양냉면의 이 맛을 못 본 이요! 상상이 어떻소!”
1929년 잡지 <별건곤(別乾坤)>에 김소저가 쓴 ‘사시명물 평양냉면’ 중 발췌다. 뜨끈한 국물도 모자랄 판에 냉면이라니.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내 유명 면옥(麵屋)들은 여전히 성업 중이란 사실. 붉은 깃발은 사라졌지만 손님들의 파란 입술마다 국수 가락이 드리운다.
냉면은 본시 겨울 음식이다. 물론 시원한 맛에 여름에도 먹는다. 하지만 진정한 맛은 겨울에 더 난다. 가게마다 다르겠지만 냉면을 한번 들여다보자. 크게는 면과 육수, 그리고 꾸미다. 평양냉면 기준이다.
평창을 무대로 한 가산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기억한다면 메밀이란 작물이 어느 계절에 영글고 또 언제쯤 수확하는지 알 수 있다. 여름이 저물면 꽃이 피니 일러야 가을 중순이다. 국내 최대 메밀 재배지인 제주에선 11월 중순이나 돼야 수확한다.
잉여 농산물은 언감생심이던 시절, 가을에 수확한 메밀을 이듬해 여름까지 남겨둔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늦가을에 메밀을 거둬 빻은 메밀가루를 곤궁한 겨울에 두고 먹었다. 여름냉면은 나중에 나온 것이다.
육수 사정은 더하다. 동치미를 담가야 냉면을 말아 먹는 육수가 생긴다. 동침(冬沈)이다. 단맛 든 월동 무를 쓰고 살얼음이 끼어야 제대로 맛이 난다.
간혹 육수에 썼다는 꿩도 마찬가지. 꿩은 보통 겨울철 눈이 한가득 내린 날에 잡으러 간다.
‘증언’도 부지기수다. “냉면은 겨울 계절 음식으로 평양이 으뜸”이라며 “메밀국수에 무김치, 배추김치를 넣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얹어 먹는다”는 글이 문헌에 나온다. 1849년에 펴낸 민속 해설서 <동국세시기>다.
달달하니 감칠맛 나는 육수에 구수한 메밀 면을 말고 냉면 무를 함께 집어 쪼르륵 빨면 정수리 끝까지 죄어드는 차갑고도 ‘쩡’한 맛이 난다. 분명 입으로 삼켰지만 뒤늦게 스멀스멀 올라오는 메밀 향은 코를 위한 것이다.
마지막 한 모금까지 후련히 한 사발을 비우고 나면 그리도 든든하다. 여름이 아니라 손님 대접도 제대로 받으니 더이상 바랄 바 없다. 이름난 냉면집이 곳곳에 생겨나니 오한 들기 전에 당장 찾아가볼 일이다.
전국의 냉면 맛집
★인천 경인면옥
원래는 광복 전인 1944년 서울 종로통에서 창업했다고 한다. 70년이 넘었다. 1946년 현재의 자리에 둥지를 틀고 인천 냉면의 맹주로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집이다. 동치미만 쓰는 본래의 평양냉면과는 달리 고기가 풍족했던 인천에서 진화한 고기 육수 평양냉면이다. 고기 향이 짙다. 여기에다 시원한 맛을 더하는 동치미의 적절한 배합이 맛의 비결이다. 불고기와 녹두전, 만두 등 이북 음식을 함께 맛볼 수 있어 더욱 좋다.
★진미평양냉면
이른바 ‘강남 냉면’의 인기를 견인하고 있는 집이다. 얇지만 씹을수록 메밀 향을 끝까지 뿜어내는 면발이 인상적이다. ‘수돗물’ 육수 속에 진하게 고기 향이 배어 있으니 향이 좋은 집이다. 수육과 달걀, 무, 오이 등을 푸짐히 올린 꾸미까지. 보기만 해도 든든하다. 저녁에는 만두와 어복쟁반 등으로 선주후면(先酒後麵)하겠다는 주객으로 들끓는다.
★부원면옥
값비싼 냉면집들의 열전 속 ‘서민 냉면’의 자리를 지키는 집이다. 서울 남대문시장 내에서 반세기가 넘는 역사를 지녔다. 뽀얀 육수에 굵은 면을 말고 꽤 두툼한 돼지수육을 올려준다. 달달한 동치미와 구수한 육수에 씹는 맛까지 좋은 면발이 들었다. 시장통 냉면답게 꾸미 인심이 좋다. 매콤새콤한 닭무침도 물리칠 재간이 없다.
★태백 평양냉면
평양만큼 추운 태백고원에서 제대로 즐기는 ‘겨울냉면’이다. 거뭇한 면발에 진한 육수와 동치미 국물을 부어 말아낸다. 진하고 구수한 육수지만 섞여 들어간 동치미의 시원한 맛을 숨길 수 없다. 밍밍하지 않고 간이 적당히 들었다. 아삭한 무김치와 탄력 좋은 면발이 제법 잘 어울린다.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